가장 핫한 두 남녀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제시 아이젠버그가 로맨틱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카페 소사이어티>는 81세의 거장 우디 앨런 감독의 74번째 영화다.

한동안 파리(미드나잇 인 파리)로, 로마(로마 위드 러브)로, 바르셀로나(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로 외유했던 감독이 그의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와 만든 영화이자 그의 또 다른 정서적 고향인 1930년대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급격하게 발전하던 미국의 1930년대를 배경으로 젊은 두 연인의 사랑을 그려냈다. 노장 감독의 '인생관'이 관조적으로 드러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 포스터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우디 앨런의 영화답게 영화는 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덕분에 관객은 1930년대라는 시간, 공간적 격차에 편안하게 접근해 들어간다. 동시에 이는 '냉소적' 혹은 '블랙 코미디'처럼 전개되는 바비(제시 아이젠버그 분)와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의 사랑 이야기에 타자로서의 시각을 정립하게 만든다.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상경(?)한 청년

할리우드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에이전시 대표 필(스티브 카렐 분)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목소리도 알아차리기 힘든 그 전화의 주인공은 뉴욕의 누이에게 걸려온 것, 조카 바비가 할리우드에 간다면서 이른바 일자리 청탁을 한 것이다. 누이의 전화에 이어 필을 찾아온 바비.

오늘날의 뉴욕이라는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1930년대의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상경(?)한 청년, 그리고 그런 청년을 삼촌은 측근으로 들인다. 이른바 '황금시대'라고 불렸던 1930년대의 할리우드는 아직 그런 '꿈'을 꾸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라고 감독은 바비의 '홀홀단신 상경'을 들어 설명하는 듯하다.

 카페 소사이어티

카페 소사이어티 ⓒ CGV 아트하우스


바비가 살았던 뉴욕은 어떤 곳이었을까? 보석상을 하지만 술독에 빠져살며 어머니에게 무능력의 상징으로 구박받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직업에 전망이 보이지 않자, 큰아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나선다. 당시 뉴욕에서 그가 선택한 일은 동네 투전판, 해결사, 살인 청부 등이다. 그런 아버지나 형의 삶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바비는 당시 떠오르는 꿈의 도시 할리우드로 향한다.

하지만 정작 할리우드에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보니라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한때 영화배우를 꿈꿨다지만, 일찌기 그 허상을 깨닫고 현실에 적응했다는 그녀. 할리우드의 '황금의 문화'가 천박하다며 비판하는 그녀에게 바비는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보니를 좋아했던 사람은 바비만이 아니었다. 삼촌 필이 바로 바비의 연적이었던 것이다. 이미 필과 오랜 시간 만나온 보니, 하지만 여전히 필은 '이혼'에 주저하고, 그런 가운데 바비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어필한다.

할리우드가 천박한 욕망의 도시임을 깨닫고 할리우드에 시들해진 바비는 보니와 함께 고향 뉴욕으로 돌아가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꿈을 알게된 필과, 두 남자 사이에서 갈짓자를 그린 보니의 어긋난 선택이 그를 홀로 뉴욕으로 향하게 한다.

할리우드에서 필을 도왔던 바비는 이번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클럽을 인수하여 뒷골목에서 나온 형을 돕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환멸'을 느꼈던 할리우드의 경험이 클럽을 리뉴얼하는 촉매제가 되어 그와 형의 클럽은 뉴욕 제일의 사교 클럽 '카페 소사이어티'가 되었다. 바비는 베로니카라는 여성과 가정도 꾸리고, 잠시 들른 보니와 못다 이룬 로맨스도 잠시 즐긴다. 비록 형은 사형을 당하지만 날마다 바비의 클럽은 승승장구한다.

꿈은 꿈일뿐

영화는 1930년대를 살아낸 한 청년의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개츠비의 실패한 연애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비는 물론, 그의 인생사 행간에서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마치 일장춘몽같은 삶이다.

바비가 찾아간 필, 그는 할리우드 최고의 에이전시 대표로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정작 사랑과 가정 앞에 소심해서 기회를 놓쳐버린 인생이다. 보니를 아내로 얻었으나 그가 사랑했던 보니는 더는 없다. 바비를 알고 난 이후의 보니는 더이상 예전의 그녀일 수 없었다. 그녀는 사랑 대신, 앞날이 불투명한 사랑꾼 바비와 안정된 부를 이룬 필 사이에서 '황금'을 선택한다. 모처럼 찾아온 바비 앞에서 드러난 그녀의 얼굴이 그걸 증명한다.

그러나 그저 양다리의 나쁜 여인이라기엔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보니의 눈빛이 걸린다. 보니의 눈빛에 담긴 공허함은 인생의 댓가를 처연하게 설명해 낸다.

 카페 소사이어티

카페 소사이어티 ⓒ CGV 아트하우스


바비의 형은 어떤가. 일찌기 청소년 시절 거리에서 불법으로 점철된 삶을 살던 그의 인생은 클럽 소사이어티를 통해 비로소 달라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간 그가 저지른 범죄가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형에 비해 누나는 낫다고? 이웃집의 소음을 견디지 못한 그녀의 편두통이 이웃집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그 장면은, 우디 앨런이 그려낸 미국 중산층의 잔인한 전사다. 그저 꿈을 꾸었던 청년이 그가 혐오해 마지 않았던 방법으로 부를 이루고, 사랑을 잃고, 그럼에도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바로 미국이 살아낸 모습이기도 하다.

번창하는 자본주의 사회 미국, 황금시대의 문화를 구가하는 1930년대의 미국에서 영화 속 그들은 '운이 좋아' 그 번창과 부흥의 파도에 올라타 넘실거린다. 하지만, 공허한 바비와 보니의 눈빛처럼 그들은 가지되 가진 것이 없다. 꿈을 꾸었지만, 꿈은 꿈일뿐이었다. 현실은 휘황하되, 공허하다. 81세 뉴욕으로 돌아온 노장이 짚은 아메리칸 드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카페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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