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힘든 실화를 영화로 옮긴 사례는 참 많다. 그중에서도 감동적인 건 아마 빠짐없이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상만사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법, 어디서 들어 봤음직한 식상한 소재가 줄을 잇곤 한다. 그럼에도 그런 소재를 택해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내놓다는 건, 소재 자체가 갖는 힘이 남다르거니와 연출에도 자신이 있어서일 게다. 그런 영화라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아래 <불량소녀>)는 시놉시스 한 줄만 들어도 전체가 그려지는 그런 영화다. 가히 식상함에 끝이라고 할 만한데,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괜찮네"였다. 소재만 아니었다면 평균 이상의 평가를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도이 노부히로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연출한 이기도 하다. 대대적인 호평 속에 크게 성공한 드라마 <중쇄를 찍자>도 연출한 그다. 이 두 작품 모두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2000년대 초반 한일 합작 드라마를 찍은 경력도 있는 그이기에 특별하다 하겠다.

왕따 소녀의 명문대 진학기


왕따를 당해 전학을 가게 된 사야카, 하지만 그곳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그렇게 중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곳에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 문제는 친구들과 너무 잘 어울리게 되었다는 것. 공부는 뒷전이고 오로지 친구들과 노는 게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담배 핀 사실을 선생님에게 들켜 무기정학에 처해진다.

사야카를 향한 엄마의 믿음은 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이자 사야카 인생의 키워드 중 하나이다. 같이 담배 핀 친구들을 알려주면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교장과 담임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사야카를 자랑스럽다고 당당히 말하는 엄마이다. 그런 엄마의 믿음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정학을 당한 김에 시간이 남으니 입시 학원에 가서 상담 한번 받아보자는 엄마의 말을 듣고 학원에 간다. 첫 만남부터 긍정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츠보타 선생의 제안을 덥석 무는 사야카. 명문 '게이오'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다짐이다.

츠보타 선생의 무한 긍정은 사야카 엄마의 믿음과 더불어 이 영화의 주요 키워드이다. 사야카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라 하겠다. 여기서 잠깐 게이오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한 사야카의 수준을 말하자면, 일본 지도를 그리지 못하고 동서남북을 모르며, 고등학교 2학년생이면서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수학 실력을 가지고 있다. 과연 그녀는 게이오 대학 진학에 성공할 수 있을까.

사야카에겐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는데, 그중에 남동생 류타는 어릴 때부터 아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왔다. 다름 아닌 야구 꿈나무로 프로선수로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아빠는 류타의 의사, 가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류타만이 가족의 희망이라 말하며 일방적인 지지와 관심, 질타와 응원을 보낸다. 다른 두 아이는 안중에도 없다. 특히 그에게 사야카는 '쓰레기'일 뿐이다. 이 가족, 괜찮은 걸까.

전형적이어도 괜찮아


줄거리 자체에서 예상할 수 있듯 사야카는 명문 게이오 대학 진학에 성공한다. 그 과정도 어느 정도, 아니 확실히 눈에 그려진다. 엄마와 선생의 전폭적인 지지, 아빠와 담임의 일방적인 악담 사이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사야카. 계속 성장하지만 그만큼 암초를 만나 때론 부딪히고 때론 피하면서 전진하는 그녀는 결국 꿈을 이룬다. 그녀를 끝까지 믿어준 엄마와 선생, 그리고 그녀를 지지하게 된 이들의 응원과 무엇보다 그녀 자신의 악전고투 덕이다.

이 영화를 감동적이고 재밌게 보려면 현실을 너무 투영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 자체가 갖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들여다보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단기 속성 코스를 이용한 꼴통의 명문 대학 진학기'는 얼핏 전혀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그 길을 달려 나가자는 이야기가 미덕인 현재에 말이다.

조금 더 양보하자. 그냥 지나치기엔 이 영화의 매력이 아깝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따위의 가치는 과감히 지워버리자. 심지어 이 영화가 은연중에 전하는 메시지라도 말이다. 대신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이 주변에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것, 믿음이야 말로 삶에서 매우 중요한 동기이자 가치라는 사실은 챙기자.

영화 <친구>를 보면, 준석이가 상택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학창 시절 양아치 짓을 하겠다고 돌아다닐 때 패서라도 자신을 잡아줄 사람이 있었다면 이리 되진 않았을 거다"라고. 사야카의 엄마와 츠보타 선생은 사야카를 패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믿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녀를 방목하지도 않았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이끌지 않고 뒤에서 받쳐줬다. 준석이가 바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이끌려고 하다 보면 믿음을 갖기 보단 기대를 하게 된다. 사야카의 아빠가 류타에게 기대를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인생에서 반드시 뒷걸음질 치는 날이 올 텐데, 그럴 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그 실망은 고스란히 당사자에게 전이된다. 그 한 번의 뒷걸음질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음에도.

믿음의 문제


반면 믿음은 여전히 믿음으로 존재한다. 다른 무엇으로 바뀌지 않으며 그 하나로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다. 그리하여 해체되는 게 당연해보였던 가족이 다시 뭉쳤다. 그녀가 명문 게이오를 진학해 인생역전이 되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진학'이라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가족이 뭉친 건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는 꼴통 사야카의 명문 대학 진학기이자 인생역전 드라마지만, 믿음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아니, 믿음에 대한 헌사가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다.

아마 같은 소재를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런 식으로 나오진 않았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비상업 독립영화로 나왔을 테고, 가해자도 과거에 피해자였던 그런 식의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았을까. 그건 그것대로 훌륭했을 게 분명하지만 영화적 재미는 확실히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반면, <불량소녀>는 교훈과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일본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이 전형성은 한동안 다른 스타일만 찾다가 단순한 구조가 그리워진 이들에겐 나름 반가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