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는 마치 지옥도를 보는 듯한 영화다.

<아수라>는 마치 지옥도를 보는 듯한 영화다. ⓒ CJ엔터테인먼트


'악의 구렁텅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누구나 쉽게 발을 들이지는 않지만 누구라도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날 수 없는 곳. 돈이든 권력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좇지만 아무리 얻고 또 얻어도 더 갖고 싶어하는 끝없는 탐욕의 세계. 되돌아가야겠단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 악의 본질이란 대충 이런 것이다. 영화 <아수라>는 마치 이 악의 구렁텅이 깊숙이 들어가 그 밑바닥에 돋보기를 들이댄 것만 같은 작품이다.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는 괴물들로 가득해 누구도 구원할 생각이 들지 않는 지옥도(地獄道)처럼.

이야기의 중심은 시장 박성배(황정민 분)의 구린 뒷일을 도맡는 대가로 돈을 받는 부패 형사 한도경(정우성 분)이다. 어느 날 그는 경찰에 뒷덜미가 잡힌 자신의 정보원을 빼내려다 본의 아니게 동료 형사를 죽게 하고, 전전긍긍하던 와중에 검사 김차인(곽도원 분)을 만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범죄를 눈감아 줄 테니 대신 성배의 비리를 증명할 증거를 가져오라'는 것. 이에 도경은 절친한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 분)에게 성배의 수행비서 자리를 주선하고, 자신은 차인 휘하의 수사관 도창학(정만식 분) 등과 비밀리에 접촉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약점을 이용하는 차인과 자신을 의심하는 성배 사이에서 이도저도 못한 채 혼란스러워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큰 위험에 빠진다.

 이들 간의 싸움에는 좀처럼 정의나 선의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이들 간의 싸움에는 좀처럼 정의나 선의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 CJ엔터테인먼트


<아수라>의 세계는 말그대로 아수라장이다. 한쪽은 한 도시의 시장이자 갱스터 보스, 다른 한 쪽은 경찰이자 살인 청부업자다. 범죄자를 어르고 달래고 때려가며 미끼로 이용해 '진짜 큰 놈'을 잡으려는 검사도 있다. 시한부 아내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성배의 개 노릇을 했던 도경. 그리고 역대급 비리 범죄를 뿌리뽑기 위해 성배를 추적하는 차인.

각각 악의 편에 들어서는 둘의 시작은 그저 각자의 신념, 혹은 대의를 위해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화는(성배는 물론이고) 도경과 차인을 포함한 세 줄기의 악에 차이를 두지 않고 내내 차가운 시선으로 대한다. 애정은커녕 연민조차 느껴지질 않고, 이들 간의 싸움에는 좀처럼 정의나 선의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대신 <아수라>가 힘주어 다루는 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로서의 도경 얘기다. 영화 속 도경은 성배와 차인 사이에서 철저하게 이용당한다. 대어(大漁)를 낚을 미끼가 되기도 하고, 쏟아지는 화살을 막기 위한 방패가 되기도 한다. 영화는 오랜 시간을 들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도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렇게 좀처럼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는 그의 무력감과 환멸감을 스크린 너머까지 전달한다. "여기서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도경의 독백은 관객의 뇌리에 깊숙이 박히며 동감을 얻는다.

 돈과 권력을 향한 애초의 욕망이 생존 본능으로 대체된다.

돈과 권력을 향한 애초의 욕망이 생존 본능으로 대체된다. ⓒ CJ엔터테인먼트


도경의 내적 갈등과 더불어 영화 중반 이후 무게를 더하는 액션 장면들도 압도적이다. 소나기가 퍼붓는 밤 도로에서 차 안팎을 넘나드는 카메라 워크로 연출된 도경의 카체이싱(차량 추격전) 장면은 흡인력이 상당하다. 특히 내내 뒤에서 도경을 꼭두각시로 둔 채 신경전을 벌이던 성배와 차인이 장례식장에서 맞딱뜨린 뒤 수십 명이 혈투를 벌이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돈과 권력을 향한 애초의 욕망이 생존 본능으로 대체되고, 이를 통해 한층 더 악해지는 인물들의 변화는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누구나 살아남기 위해 얼마든지 악해질 수 있다는 것. 휘몰아치는 피바람 뒤로 <아수라>가 남기는 우리의 불편한 자화상인지 모른다. 오는 28일 개봉.

 영화 <아수라> 포스터

영화 <아수라>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아수라 정우성 곽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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