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독하게 영화 속의 메시지를 읽고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청년의 통통 튀는 감성을 담아 표현하고 소통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부산행>을 본 사람들에게 퀴즈를 하나 내보려고 한다. 좀비들이 달려드는 KTX 열차 안에서 가장 안전한 좌석은 무엇일까? 정답은 '마동석'이다. 부산행은 좀비를 때려 패고 날려버리는 마동석의 활약만큼 시원하게 한국형 좀비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누적 관객 수 1100만을 달성했다.

연상호 감독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부산행>의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영화 <서울역>을 공개했다. <부산행>이 성공했던 만큼 관객들은 <서울역>에 거는 기대가 컸다. <부산행>이 연상호 감독의 스타일과 다르게 흥행을 노리고 만들어진 것이 보인다는 의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기대와는 달리 <서울역>은 관객들에게 혹평을 많이 받았고 평점도 좋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매력적인 인물이 빠진 <서울역>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고 몰입시키는 특정 인물이 없다보니, 캐릭터들이 좀비들에게 쫓기거나 감염되는 상황이 심각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금방 지나쳐 버리게 된다. 마치 캐릭터들이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무게감이 떨어진다.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고 몰입시키는 특정 인물이 없다보니, 캐릭터들이 좀비들에게 쫓기거나 감염되는 상황이 심각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금방 지나쳐 버리게 된다. 마치 캐릭터들이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무게감이 떨어진다. ⓒ NEW


<서울역>과 <부산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매력적인 인물의 유무다. <부산행>을 하면 많은 사람이 상화(마동석 분), 석우(공유 분), 용석(김의성 분)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상화는 박력 있게 좀비를 내팽개쳤고 석우는 뜨거운 부정을 보여줬다. 용석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이며 관객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서울역>은 어떨까. 주인공인 혜선은 별다른 활약 없이 다른 사람의 보호를 받으며 도망치기 바쁘다. 혜선을 찾아다니는 포주나 기웅 역시 크게 매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단지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차이라고 보기에는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너무 떨어진다.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이 매력이 없다 보니 몰입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부산행>을 보는 관객들이 마동석이 팔을 물려 좀비가 돼가는 과정에서도 저항하며 가족을 지키려는 모습, 공유가 딸과 성경(정유미 분)을 구해내고 스스로 열차 밖으로 뛰어내릴 때의 모습을 보며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면 <서울역>의 관객들은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다.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고 몰입시키는 특정 인물이 없다 보니 캐릭터들이 좀비들에게 쫓기거나 감염되는 상황이 심각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금방 지나쳐 버리게 된다. 마치 캐릭터들이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서울역>의 절망적인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는 부분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상업 영화로서의 만족도는 부족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강렬하다

 국민을 가볍게 여기고, 집회를 방해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정부.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살기 위해 도망치는 시민이 아니라 정부를 위협하는 좀비가 아닐까.

국민을 가볍게 여기고, 집회를 방해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정부.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살기 위해 도망치는 시민이 아니라 정부를 위협하는 좀비가 아닐까. ⓒ NEW


그래도 <서울역>을 칭찬하고 추천하고 싶은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부산행>이 재미에 집중했다면 <서울역>은 메시지에 집중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부산행>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좀비라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용석의 이기심이 많은 사람을 사지로 내몰기는 했지만, 그 역시 좀비들에게 당한다. 좀비들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은 계속 감염되며 그 수가 줄어들지만 결국은 군인들이 지키는 안전한 장소로 가게 된다.

그렇다면 <서울역>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나는 좀비보다는 정부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싶다. 물론 <서울역>의 좀비들도 무섭다. 아무리 때려도 죽지도 않고 달려든다. 느린 것도 아니라 빠른 속도로 달려드니 사람들은 순식간에 감염되고 좀비가 된다.

그래도 <서울역>의 시민들은 <부산행>의 15차 사람들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처음 만난 혜선을 위해 노숙자는 많은 도움을 준다. 집에 가고 싶다며 함께 울기도 하고 죽을 뻔한 혜선을 구해주기도 한다. 또한, 시민들은 뭉쳐서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좀비들에게 단체로 저항한다. 좀비는 누구에게나 무서운 존재이지만 용감한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지켜낸다.

그러나 정부와 국가 기관은 그렇지 못하다. 시민들을 지켜야 할 경찰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좀비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자신이 위험해지자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며 목숨을 위협한다. 또한, 단결하여 저항하고 있는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며 물대포를 쏘고 최루탄을 쏘아댄다.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매번 집회가 일어날 때 정부와 경찰이 폭력 집회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진행하던 진압이 그대로 등장한다. 이번에는 좀비에게 목숨을 뺏길 위험에 처한 시민들이지만 정부가 보이는 모습은 똑같다.

<서울역>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순식간에 좀비가 된다. 이들은 매번 구조 요청을 하지만 구조해주는 국가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캐릭터의 말처럼 국가에 이들의 존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름조차 알 수 없이 쓰러져 간 많은 캐릭터처럼 국가에 대다수 국민은 숫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폭력집회나 폭도 등의 프레임에 의해 저항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메시지는 무시되고 희미해진다. <서울역>에서는 좀비에게 도망치는 사람들이 폭도가 되고 진압당했던 것처럼 현실에서는 정부에게 저항하는 많은 집회가 폭도들이 주동하는 폭력집회로 불리며 진압당하는 풍경에 익숙하다.

<서울역>이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국가는 국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 많은 집회가 허위로 규정되고 의미가 희미해져 버리는 모습은 가볍게 지나치기에 익숙하고 안타까운 것들이다. 국민을 가볍게 여기고, 집회를 방해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정부를 두고 있는 우리.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건 무엇일까. 살기 위해 도망치는 시민이 아니라 정부를 위협하는 좀비가 아닐까.

서울역 부산행 좀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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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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