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를 통합한 공화국. 미래 사회에 인류는 유토피아를 드디어 달성한 것처럼 보였다. 돌연변이까지 예측해 모든 종류의 발생 가능한 병으로부터 예방접종을 받는 사회. 나아가 불행했던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하고, 과도한 욕망을 스스로 해소할 수 있는 장치까지 개발됐다.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정해진 규칙대로 그저 살아간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과거로부터 날아온 주먹이 이 온전해 보이는 미래 사회를 강타한다. 사라진 줄 알았던 페스트가 새로운 형태로 인류를 급습했다. 오랑시 내에 처음으로 발병한 페스트는 급속도로 퍼져 나가며 시민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 앞에 시스템은 무기력하다. 언론은 진실을 감추고, 권력은 그저 권력자 개인의 안위를 지키는 데 사용된다. 그 와중에 분연히 일어선 남자가 있다. 오랑시의 병원장 리유.

"인정하기 싫으니까. 페스트에 걸려 죽든, 운 좋게 걸리지 않든, 그걸 운명에 맡기는 게 싫으니까. 그건 삶을 포기하는 거니까!"

마땅한 백신도, 치료법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매일 무수한 죽음을 목격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 페스트라는 질병과 그리고 이 재난을 방관하는 시스템과.

알베르 카뮈의 원작소설 <페스트>의 이야기에 서태지의 음악을 조합한 창작 뮤지컬 <페스트>. 1940년대를 배경으로 했던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되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 디스토피아 전체와 '패배할 싸움'을 계속하는 병원장 리유를 절실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 박은석. 그를 지난 24일 오후,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리유가 걷는 가시밭길

 뮤지컬 배우 박은석이 24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1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앙상블로 데뷔한 뮤지컬 배우 박은석. 이후 조연, 언더스터디, 주연까지 거치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 이정민


"처음 대본 리딩을 할 때, 리유의 등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마치 예수가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것처럼….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도 묵묵히요. 그런 모습들이 상상이 됐죠. 안쓰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위대해 보이기도 했어요.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의사가 본질적으로 인류에 헌신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가만히 읽다 보면, '정말 많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리유라는 캐릭터는 의사로서의 신념이 강한 사람이에요. 자기의 본분에 대한 신념이 강한 사람."

뮤지컬 배우 박은석은 김다현·손호영과 함께 이번 뮤지컬 <페스트>의 주인공 리유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됐다. 훤칠한 키에 처연한 눈매를 가진 그는 발랄하고 자신감 넘쳤던 <삼총사>의 아토스 때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히려 이전 <드라큘라> 때처럼 그의 목소리에는 잿빛 슬픔이 묻어난다.

tb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리유를 보며, 주변에서 "안쓰럽다"고 평가한다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정말 안쓰럽다. 신념을 갖고 발걸음을 내디딘 가시밭길에 기꺼이 함께 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이 안쓰럽고 외로운 리유와, 배우 박은석 사이에는 어떤 교집합이 있었을까. '두려움'이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저는 겁쟁이예요. 소시민적 두려움을 안고 있죠. <페스트> 속 오랑시민과 다를 게 없었어요. 세월호 사태나 메르스 때도 굉장히 아프고 안타깝기는 하지만 직접 행동한 건 없었죠. 이럴 때일수록 내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죠. 배우로서든, 예술가로서든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신념은 자꾸 약해져요. 그런데 리유라는 캐릭터를 만나서 많이 배웠고, 바뀌었어요.

리유와 저의 교집합이 뭘까 생각했는데, 리유도 겁쟁이더라고요. 카스텔 박사가 '이런 겁쟁이를 수술시킨 게 누군가 했더니'라는 대사를 하잖아요. 리유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강인한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신념가일수록 자꾸 자기 신념을 확고히 하려고 하죠. 불안하니까. 신념이 무너지면 자기 정체성도 흔들리잖아요. 그러니까 흔들릴수록 더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 지켜야 해요."

리유를 연기하며 '아, 나도 그랬었는데' 그리고 '아, 나도 이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는 그. 그저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던 오랑시의 시민들처럼, 소시민적 두려움에 잡혀있던 박은석은 리유를 만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면 지금 시점에서 배우 박은석이 뮤지컬 <페스트> 속 오랑시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고심하던 그는 '저항하는 자' 리유 대신, '사랑하는 자' 그랑을 골랐다.

"그랑처럼 행동했을 것 같아요. 극 속에서는 젊은 남자이지만, 소설에서는 할아버지로 나와요. '영웅'이라고 표현되죠. 이름 자체가 '그랜드(Grand)'에서 따왔을 정도로 큰 사람입니다. 극 중에 같이 나오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설정상 항상 리유 곁을 지키는 인물이 타루와 그랑이예요. 자원보건대 일을 가장 먼저 돕겠다고 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고요. 저도 그랑처럼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흔들리던 오랑시민들은 '라이브 와이어(Live Wire)'를 부르며 거대한 벽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총탄 앞에 쓰러진 뒤에도, 리유 그리고 리유와 함께 분투하는 이들을 보며 함께 하기 위해 나선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오랑시민들이 변한 것처럼, 인간 박은석 역시 리유를 만나 변했다.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누군가의 손을 맞잡는 그랑을 택할 수 있을 만큼.

그것이 비록 패배할 싸움이라고 하더라도

 뮤지컬 배우 박은석이 24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진중한 사람이었다. 질문 하나하나에 즉답하는 일 없이 깊이 있게 고민했다. 때로는 이전에 답변했던 내용을 이후에 첨언하기도 했다. 그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그 고민하는 자세가 아닐까. ⓒ 이정민


"우리는 패배할 겁니다. 하지만, 이 끝없는 싸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절대로요."

극 중 "우리가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라는 박사의 질문에 리유는 슬프게, 하지만 힘 있게 읊조린다. 이어서 "당신에게 페스트란 어떤 존재냐"는 타루의 질문에 리유는 스스로 다짐하듯이 내뱉는다.

"끝도 없는 패배지요. 하지만, 패배한다고 해서 이 싸움을 멈출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죽을힘을 다해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토록 강고한 리유이지만, 투쟁에 앞장선 리유도 겁쟁이였다. 리유가 첫 페스트 환자를 수술할 수 있도록, 그의 곁에서 버팀목처럼 응원하던 타루도 사실은 내면의 상처를 지닌 연약한 사람이다. 다만, 이들은 인간답게 살고자 했을 뿐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주저앉고 절망하면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없잖아요. 해결되든 안 되든 가야 하죠. 처음부터 강하게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연약하지 않나요? 하지만 환경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조금씩 변하죠. 타루도 어렸을 적 경험을 토대로,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했을 거예요. 사랑이, 관계가 주는 것에 대해서 깨달았기 때문에 식물학자가 되고, 리유와 함께 싸워주는 거겠죠."

우리는 때때로 패배가 예정된 싸움에 달려들어야 할 때가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정의하는 것은 승리나 패배와 같은 끝이 아니다. 그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인간을 인간답게 정의한다. 이 사회 내 수많은 투쟁의 공간들도 그런 곳이다. 그들 모두가 승리를 위해 싸우고만 있는 건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싸워야만 나 자신이 인간답게 있을 수 있기에 싸우기도 한다. 처음에는 시스템의 편에 있다가 이후 리유의 싸움에 동참하는 기자 랑베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인간이기를 잊는다면, 페스트는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고.

"이 시대의 주축이 되는 젊은 친구들이 <페스트>를 많이 봤으면 해요. 지금 시대 분위기가 성공하면 모든 게 끝인 것처럼 여겨지잖아요. 내일을 알 수 없고, 수많은 '힘듦'이 있죠. 그 가운데 <페스트>가 우리가 누구인지 생각을,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요. 보면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이어서 던지고, '나는 왜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는 작품.

오랑시를 포함한 <페스트> 속 국가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그냥 살아가고만 있어요. 우리도 어떻게 보면 사회의 흐름과 분위기에 끌려가 틀 속에 갇혀 있고요. 뭐가 중요한 것인지 아무도 잘 모르고, 깨닫지 못하고 있죠. 극화하는 과정에서 카뮈의 <페스트>의 모든 깊이를 뮤지컬에 담아내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페스트>를 여러 번 봐주신 관객분 중 한 분이 리유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더 힘을 내서 살아야겠다는 감동을 받았다고 해주셨죠.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 싸움의 끝에는 뭐가 있었을까. 사랑했던 많은 이들의 생이 끝나고, 5년이 지난 시점까지 공화국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무대의 커튼이 내려가는 순간,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라며 달려왔던 그들의 손에는 뭐가 남았을까.

"승리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질병을 이길 수는 없죠. 하지만 우리는 내면의 승리를 한 겁니다. 그게 가장 큰 승리 아닌가요? 인간으로서 살았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어요.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살았죠. 그렇게 사는 게 승리예요. 정작 살아갈 때는 어떻게 사는 게 진짜 사는 건지 잊는 경우가 많잖아요.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사니까.

우리도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잖아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의 내 모습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앞에도 계속 어려움이 찾아오겠죠. <페스트>도 그렇고 <눈먼 자들의 도시>도 그렇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다움을 포기한 끝에 찾아오는 참사를 고발하죠. 하지만 극단적인 가운데서도 인간다움이라는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 강한 카운터펀치를 맞았지만 끝까지 일어서는 것. 그게 진짜 승리입니다."

카뮈, 서태지 그리고 박은석

 뮤지컬 배우 박은석이 24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학창시절 그의 추억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서태지. 그리고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접한 알베르 카뮈. 두 거인이 남긴 세계의 흔적이, 박은석이라는 배우 안에 잘 융화되어 리유라는 캐릭터로 발현됐다. ⓒ 이정민


뮤지컬 <페스트>는 대극장 창작 뮤지컬로 이번 공연이 초연이다. 카뮈와 서태지의 만남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이 작품은, 뚜껑을 연 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관객과 평단의 피드백을 받아 프리뷰에서 본 공연으로 넘어오면서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고, 이어서 23일을 기준으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1막을 보다 깔끔하게 정리했고, 2막에 'FM비즈니스'와 'T'ik T'ak' 두 곡이 추가됐다.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고생했다. 그리고 그 업그레이드 폭은 훌륭했다.

"관객들의 피드백과 저희가 극을 만들면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접합했던 것 같아요. 그런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수정됐죠. 특히 'T'ik T'ak'이 추가된 장면은 극의 기승전결에서 중요한 장면이잖아요. 절망에 빠졌던 리유 앞에 사람들이 연대하며 다시 한 번 희망을 품는 장면인데, 음악적인 마무리가 약간 덜 시원했죠. 여기에서 확실하게 메시지를 던지며 강렬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그 목마름이 잘 해소된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준비하면서는 분명 힘들었지만, 같이 극복하는 과정이 정말 값졌어요. 오르막길을 올라 그 정점에 선 느낌?"

서태지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의미였던 때가 있었다. 비록 서태지 세대가 아니어도, 서태지의 음악을 즐겨 듣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그가 제시한 세계에 영향을 받았다. <페스트>의 세계에 추가로 들어온 곡이 그 영향력을 여실히 증명하며 관객의 귀를 때렸다. 카뮈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고발하며 비인간적으로 폐허가 된 토양에 다시 인간성의 씨앗을 뿌리려 했다. 그 두 세계가 만났다.

"카뮈는 관념적인 것을 싫어하는 실존주의 작가이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작품에서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해요.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담기 어려운 보다 크고 깊은 사랑이요. 카뮈는 사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요. 우리가 생각하기 싫고, 부딪히기 싫다고 치부해버리는 것들에 대해 카뮈는 계속 환기시키고 보여줘요. '현장을 봐'라고요. 이 작품을 위해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저도 사실 불편했어요. 하지만 2부가 넘어가면서 마음의 준비가 됐죠. 그리고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정말 많이 하게 해줬죠.

뮤지컬 <페스트>를 하게 돼서 감사해요. 덕분에 알베르 카뮈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았어요. 또 이 작품이 관객들로 하여금 알베르 카뮈에 대해서, 소설 <페스트>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해주는 것도 감사하고요. 거기에 오랜만에 서태지의 노래도 마음껏 들을 수 있었죠. 다시 들으니까 정말 반가웠거든요. 한동안 안 들었지만, 학창시절에는 저에게 위로가 되어줬던 음악이었어요. 서태지의 음악으로 위로받았던 제가 관객 누군가에게 <페스트>를 통해 위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고,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다시 한 번,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뮤지컬 <페스트>는 사실 여러 단점을 안은 작품이다. 단점만 열거하며 비판하자면 지적할 게 꽤 많지만, 그렇다고 일부 평론가나 관객의 평가처럼 그렇게까지 나쁜 작품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최소한 이 작품은 패턴화 된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길을 선택했다. 기성 권력을 향한 저항에 초점을 맞춰 카뮈의 작품 세계와 서태지의 음악 세계를 아우르려한 노력도 돋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처럼 진중한 배우 박은석이 연기하는 깊이 있는 리유가 있다.

비인간적 디스토피아를 구축한 시스템, 그 앞에 우리는 얼마나 인간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는 9월 30일까지이다.

"Destroy the world, 네 술책 비호로 집어 쓴 너의 감투로 네가 넘어야 할 문턱. T'ik T'ak, 시간의 속도를 감지 못한 이 걸음. 바쁜 종말에 다른 바람 섞인 이 온도의 차이. T'ik T'ak 뚜렷한 가치를 담지 못한 너의 텅 빈 브레인. A new order for the world why you can't cry." - 뮤지컬 <페스트> 2막 'T'ik T'ak' 중에서

 뮤지컬 배우 박은석이 24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준비할 때면, 항상 이전 작품에서 '아, 그때 이렇게 할 걸'이라는 아쉬움이 떠오른다는 박은석. 그는 자신의 달란트 안에서 주어진 걸 최대한 활용하여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열심히 해왔고, 이전보다 성장해온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 이정민


뮤지컬 배우 박은석과의 자투리 일문일답
무거운 작품과 진중한 배우가 만나다 보니 극과 관련된 인터뷰 분위기도 시종일관 진지했다. 배우 박은석은 자신을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평가했지만, 그렇다고 웃음이 아주 없는 사람도 아니다. 인터뷰 후반부, 그와 두서없이 나누었던 잡다한 웃음 포인트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자신의 별명에 대해 혹시 들어보신 적 있나요? 마음에 드세요?
"주임(직장, 단체 따위에서 어떤 일을 주로 담당함. 또는 그런 사람.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중에서)이요? 다른 배우가 저보고 별명이 생겼다는 거예요. 저를 보고 '주임', '쥠' 그런다고 하길래 '어? 그게 뭐야?'라고 물어봤죠. <노트르담 드 파리> 때 셔츠를 입고 나온 게 회사원 같다고, (김)성민이 형은 부장이고 저는 주임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처음 듣고 너무 웃겨서…. (웃음)

별명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거니까 좋은 거죠. 물론 멋진 별명이 붙는 것도 좋지만, 너무 멋있고 부담스러운 별명이면 오히려 저를 옭아맬 것 같아요. 지금 별명은 재밌잖아요. 친구들끼리도 별명 부를 때도 큰 의미를 담아서 부르지 않잖아요. 가볍게 친근하게, 그런 별명이라 좋아요."

- 커튼콜 때 춤을 추는 영상이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에 업로드되곤 하는데, 혹시 보셨나요? '춤신춤왕'이라는 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한숨) 진짜, 안 추려고 그랬는데…. 주변에서…. 이제 안 하려고요…. 아니, 잘 모르겠어요. 본래 저는 그냥 커튼콜 때 얌전히 잘 인사하고 헤어지는 성격인데, '야, 우리처럼 무거운 작품에서 커튼콜 때 즐겁게 마무리해주는 것도 팬서비스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도 또 맞잖아요.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출 때도 있고 안 출 때도 있는 건데…. 갑자기 '댄싱머신'이라는 별명까지 붙어버려서…. (웃음)"

- 뮤지컬 하는 박은석 하면 떠오르는 사람 중 하나가 동명이인인 연극하는 박은석입니다. 혹시 두 분 서로 아는 사이이신가요?
"제 주변에 아는 배우, 아는 사람과 다 연관이 되어 있어요. 저랑 같이 사는 룸메이트들하고도 공연하셨고, 친한 배우의 공연도 하고, 그래서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어요. 둘이 많이 다르기는 한데…. (웃음) 저는 제 할 일 열심히 하고, 그분은 그 분 할 일 열심히 하고 계시니까요.

언제 한 번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제 연기 스승님이 계세요. 스승님이 연극하는 박은석 배우와 함께 공연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스승님이 이름만 보고 저인 줄 알고 제게 전화가 와서 '아이고 은석아, 드디어 너랑 나랑 같은 무대를 서는구나!'라고 하시는데 제가 '네?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이라고…. (웃음) 선생님이 '아, 나는 네가 한다고 해서 이걸 하게 된 건데,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며…. (웃음)"

- 가면 갈수록 무대에서 잘 생겨 보인다는 후기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잘생겼다가 아니고 잘생겨 보인다라…. (웃음) 정말 듣기 좋은 말인 것 같아요. 제가 극단 '죽도록 달린다'와 공연을 많이 했었거든요. 거기에 한아름 작가께서 '야, 연기 잘하면 잘생겨 보여'라고 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어요. 그 얘기가 실제로 들린다니까 너무 반갑네요. 제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겠죠? 아니면 분장 선생님의 승리인 건지. (웃음)"

-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다면 꼽아주세요.
"엄청 자주 받는 질문인데, 맨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맨 오브 라만차>도 참 해보고 싶기는 한데…. (웃음) 개인적으로는 <몬테크리스토>의 몬테크리스토를 꼭 하고 싶어요. 앙상블로 첫 뮤지컬 데뷔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 작품으로 돌아가 주연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굉장히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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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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