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오후 8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은 중국과 중요한 일전을 치르게 된다. 총 9회이자 연속 8회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지닌 우리 대표팀이 그 기록을 갱신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라운드의 첫 경기를 앞두고 있다.

월드컵 최종예선의 첫 홈경기라는 의미 때문에 평일인 목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지만 응원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으로 티켓을 예매하게 됐다.

▲ 9월 1일 중국전 티켓 붉은악마가 자리하는 레드존 1층 좌석 가격이 5만원으로 표시돼있다.
ⓒ 서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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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매 사이트에서 티켓 가격을 확인하고는 내 눈을 의심했다. 붉은악마가 자리하는 N석 골대 뒤 좌석, 레드존이라 불리는 구역 1층 좌석의 가격이 자그마치 5만원이었다.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팬이 아니라면 선뜻 지불하기 망설여지는 가격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축구에 있어 국가대항전 티켓 값이 비싼 경우 이유가 있다. 아주 오래된 올드팬은 아니지만 1999년에 붉은악마에 가입해 응원을 다닌 경험에 의하면, 2002년 월드컵 조별예선(폴란드전·미국전·포르투갈전)의 골대 뒤쪽 구역 좌석은 6만6000원이었다.

사상 첫 16강 진출을 달성했던 그 날의 티켓 2002 월드컵 조별리그의 티켓은 6만6000원이었다.

▲ 사상 첫 16강 진출을 달성했던 그 날의 티켓 2002 월드컵 조별리그의 티켓은 6만6000원이었다. ⓒ 서준영


국제축구협회(FIFA)에서 주관하는 국제 대회기도 했고 달러화로 책정된 티켓 값이 당시의 비싼 환율의 영향으로 매우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조별리그가 그 정도 수준이었고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티켓 가격은 더 비싸졌다.

직접 경기장에서 관전한 것은 16강전 이탈리아전이었는데 티켓 가격은 미화 100달러였다. 가치 있는 경기임에는 틀림없지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가격은 아니었다.

기적 같은 골든골이 터졌던 날 라운드가 올라갈 수록 가격이 비싸지는 월드컵 티켓. 16강전 티켓은 100달러였다.

▲ 기적 같은 골든골이 터졌던 날 라운드가 올라갈 수록 가격이 비싸지는 월드컵 티켓. 16강전 티켓은 100달러였다. ⓒ 서준영


그렇다면 월드컵이 아닌 경기들의 가격은 어떠했을까?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전국에 10개의 새로운 축구장이 생기기 전까지, A매치는 주로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당시 대표팀 평가전 티켓 가격은 1만원이었다.

대표팀 평가전 티켓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평가전 티켓은 1만원이었다.

▲ 대표팀 평가전 티켓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평가전 티켓은 1만원이었다. ⓒ 서준영


하지만 새로 지어진 월드컵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면서 티켓 가격은 두 배로 뛰었다.

부담스럽긴 했지만 관중석에서 그라운드까지 거리가 10여 미터에 불과한 6만5000석 규모의 새 경기장에서 축구를 보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었고 만족스러웠다. 이후 대표팀 경기의 티켓 가격은 2만~3만원 사이를 오갔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개장 경기의 티켓 티켓 가격이 두 배로 인상됐고, 2만원 시대가 열렸다.

▲ 서울 월드컵경기장 개장 경기의 티켓 티켓 가격이 두 배로 인상됐고, 2만원 시대가 열렸다. ⓒ 서준영


다만 네이마르 등 호화 멤버가 포진한 브라질과의 평가전의 티켓 가격은 5만원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벌어진 강팀과의 평가전이라 큰 불만 없이 지켜봤다. 하지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가격인지는 의문스러웠다.

그리고 이제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인 한중전의 티켓 가격도 5만원이 됐다. 과연 합리적인 가격일까. 다른 나라의 경기 티켓 가격을 검색해 봤다. 결과를 보고 솔직히 화도 났다.

호주와 이라크 경기 예매 안내 북쪽 골대 뒤 좌석의 가격이 56호주달러를 표시하고 있다.

▲ 호주와 이라크 경기 예매 안내 북쪽 골대 뒤 좌석의 가격이 56호주달러를 표시하고 있다. ⓒ 서준영


일본과 UAE 경기의 티켓예매 안내 서포터스 시트라 불리는 골대 뒤 좌석의 가격은 3100엔이다.

▲ 일본과 UAE 경기의 티켓예매 안내 서포터스 시트라 불리는 골대 뒤 좌석의 가격은 3100엔이다. ⓒ 서준영


9월 1일 열리는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는 모두 3경기다. 호주는 가장 빠른 오후 6시30분에 홈에서 이라크를 만난다. 이 경기에서 골대 뒤 홈팀 서포터스들이 앉는 좌석의 티켓 값은 56달러(호주 달러)로 우리 돈 4만7000원 정도였다. 이어지는 일본과 UAE의 경기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리는데 서포터스 시트라 불리는 골대 뒤 좌석의 가격이 3100엔, 우리 돈 3만4000원 정도에 불과했다.

호주 축구계의 사정은 차치하고라도 일본의 경우 2002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지어진 사이타마 경기장에서 같은 대회의 경기를 치르는데 티켓 가격 차는 꽤 컸다. 물론 이는 수요에 따른 가격 책정일 수 있다.

이번 한중전에 중국 축구팬들이 대거 몰려올 예정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미 중국축구협회에 이번 경기 티켓 1만5000장을 배정·판매했다. 또 추가로 국내 거주 중인 중국인들까지 고려할 경우 3만석 정도가 중국 팬들로 채워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수요가 많은 경기의 티켓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시장 원리일 수 있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임의로 가격을 정하면 소비자인 팬들은 그대로 수용해야만 하는 걸까.

고가의 대표팀 경기 티켓, 소탐대실 될 수도

물론 시장 논리에 따라 타당하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축구 대표팀의 의미와 가치는 축구협회가 단독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국 축구의 발전은 축구협회뿐만 아니라 열정을 지는 팬들이 함께 이룬 것이다.

사실상 공공재라고 할 수 있는 결실을 축구팬들이 모두 누릴 수 있도록 축구협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축구협회가 국가대표 경기를 수익사업처럼 운영한다면 팬들을 지속적으로 축구장에 끌어모으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축구팬들도 비싼 가격 때문에 구매가 망설여지는데 주변에 함께 축구를 보러가자고 맘 편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축구협회가 당장의 수익에 눈이 멀어 근시안적인 운영을 했다가는 멀지 않은 미래에 시장의 정체 내지 축소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려스럽게도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 취임 이후, 5만 원대 티켓 가격을 두 번이나 목격했다. 고가의 티켓 가격 정책이 현 회장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아닌가 싶어 우려스럽다.

대한축구협회가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일주일에 4번 축구 보러 다녔던 2001년의 고등학생 팬이 지금도 남아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기적 성과보다는 선수와 팬들, 그리고 산업의 미래까지 바라보는 미래지향적이고 팬 친화적인 정책을 이끌어 나가는 축구협회가 되어주길 희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9월 1일 경기가 승리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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