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4강 신화와 원정 첫 16강이라는 성과를 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이다. 온 국민은 하나가 됐고, '거리 응원'이라는 새로운 문화는 전 세계로 전파됐다. 그만큼 월드컵은 우리에게 수많은 추억을 선물했고, 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과거에 비해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런 월드컵에서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국가가 하나 있다. 바로 일본이다. 2006 독일 월드컵 명경기로 꼽히는 일본과 호주의 경기가 그랬고, 우리와 함께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일궜던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일본 경기는 큰 관심을 받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일본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에서 디디에 드로그바(38, 몬트리올 임팩트)는 큰 박수를 받았고, 일본의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는 안도감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성적만큼이나 일본의 성적은 늘 신경이 쓰인다.

역사, 정치, 사회, 지리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바히드 할릴호지치(63,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은 9월 1일 저녁 7시 35분(이하 한국 시각)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1라운드에서 UAE를 상대한다. 이어 9월 6일 저녁 9시 15분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태국과 일전을 벌인다.

그런데 최근 일본 대표팀을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졌다. 중국과 중동파가 국가대표팀의 핵심으로 자리한 우리와는 달리 다수의 유럽파로 무장한 일본 대표팀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번 대표팀도 일본은 14명의 유럽파와 10명의 J리그 선수들로 꾸려졌다. 주목이 가는 부분은 역시 자국리그 보다 많은 14명의 유럽파다.

일본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유럽파들

먼저, 수비진을 보면 유럽파가 5명이나 포함됐다. 대표적인 선수인 나가토모 유토(29, 인터밀란)와 요시다 마야(28, 사우스햄튼)를 포함해 사카이 고토쿠(25, 함부르크 SV), 오타 고스케(29, SBV 비테세아른험), 사카이 히로키(26,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가 대표팀에 합류했다. 나가토모 유토의 경우 2013·2014시즌 세리아A 34경기에 출전해 5골 6도움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보낸 뒤 힘겨운 주전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지난 시즌 22경기에 출전하면서 팀의 로테이션 멤버로 남아있다.

2012·2013시즌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요시다 마야 역시 마찬가지다. 첫 시즌 32경기에 출전한 그는 이후 힘든 주전 경쟁을 하고 있지만, 로테이션 멤버로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지난 시즌 선발 출전은 10경기에 그쳤지만, 총 20경기에 출전하며 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2011·2012시즌 VSB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해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사카이 고토쿠는 2015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함부르크 SV로 이적하기 전까지 총 96경기를 뛰며 2골 8도움을 기록했다. 함부르크로 이적한 뒤에도 22경기에 나서며 입지를 다졌다. 지난 시즌 네덜란드 리그에 데뷔한 오타 고스케(22경기 출전 2도움), 2012-13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하노버96에서 유럽 무대에 데뷔해 94경기를 뛴 뒤,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이적한 사카이 히로키는 이번 시즌 3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며, 주전 자리를 확보한 상태다.

3명의 유럽파가 포함된 미드필드진은 일본 대표팀의 핵심이다. 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하세베 마코토(32,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2009년 독일 분데스리가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데뷔해 현재까지 180경기에 출전, 5골 16도움을 기록했다. 특히, 2014년 여름 현 소속팀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한 뒤에는 확고한 주전으로 발돋움하면서 지난 시즌 32경기에 출전해 1골 2도움의 기록을 남겼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 중 하나인 카가와 신지(27,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대표팀의 핵심이다. 2012년 여름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맨유로 이적해 큰 실패를 맛본 그는 2014년 여름 친정팀으로 돌아와 현재까지 71경기에 나서 14골 15도움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2012년부터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기요타케 히로시(26, 세비야 FC)는 FC 뉘른베르크와 하노버 96을 거치며 총 117경기 출전, 17골 28도움을 기록했다. 올 여름 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세비야로 이적한 그는 데뷔전에서부터 강렬한 득점과 도움을 기록하면서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유럽파의 비중이 더 큰 일본의 공격진

 일본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인 혼다 게이스케(가운데)

일본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인 혼다 게이스케(가운데) ⓒ AC밀란 공식 홈페이지


공격진을 보면 유럽파의 비중은 더 커진다. 일본 대표팀 공격진에 선발된 7명의 선수 중 6명이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아사노 타쿠마(21, VFB 슈투트가르트)는 2013년 18세의 어린 나이로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 데뷔했다. 2015년에는 J리그 올해의 영플레이어상을 받으면서 팀의 우승을 이끌며 큰 주목을 받았다. 잠재성을 인정받은 그는 올여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로 이적한 뒤, 워크퍼밋(고용허가서)을 받지 못해 독일 무대로 임대를 떠났다. 아직 유럽에서의 경험은 없지만,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아스널에서 인정을 받은 만큼 대표팀에서도 큰 기대를 받고 있다.

2014년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으로 이적해 54경기에 출전 3골 3도움을 기록하고 있는 하라구치 겐키(25), 지난 여름 같은 리그의 마인츠 05로 이적해 20경기 출전 7골 2도움을 기록하며, 맨유 이적설에 휘말렸던 무토 요시노리(24)도 자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11년 세계 최고의 클럽인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하며 큰 기대를 모은 우사미 다카시(24) 역시 최근 우리나라의 구자철(27)과 지동원(25)이 속한 아우크스부르크에 입단하면서 다시 한 번 유럽 무대 도전을 선언했다. 2012·2013시즌 호펜하임 소속으로 20경기에 출전해 2골로 부진하면서 J리그(감바 오사카)로 돌아와야 했던 그였지만, 다시 유럽 무대로 도전을 선언하면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일본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라 할 수 있는 혼다 케이스케(30, AC 밀란)와 오카자키 신지(30, 레스터 시티)는 힘겨운 주전 경쟁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4번째 시즌을 맞는 혼다는 지난 시즌까지 73경기에 출전해 8골 9도움을 기록했다. 오카자키는 분데스리가 137경기에 출전, 39골 5개의 도움을 기록하면서 2015년 여름 프리미어리그 레스터 시티로의 이적에 성공했다.

지난 시즌 36경기 출전 5골을 기록하며 팀 우승에 공헌한 그는 팀이 올 시즌 치른 3경기에 모두 출전하면서 일본 대표팀 핵심 공격수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유럽파 숫자가 아니라 그들의 도전이 부럽다

일본 대표팀이 부러운 것은 단순히 해외파의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자국 리그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중국이나 중동으로 향한다면 더 많은 연봉을 거머쥘 수 있겠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게 부럽다.

사실 실력만을 놓고 평가했을 때, 우리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부분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대표팀에도 손흥민(24, 토트넘 홋스퍼), 구자철(27, 아우크스부르크), 기성용(27, 스완지시티) 등 일본 대표팀 선수들보다 훌륭한 이들이 많다. 다만, 충분히 유럽 리그에 도전할 만한 능력을 겸비했음에도 많은 선수가 중국과 중동으로 향하고 있는 점은 굉장히 아쉽다.

10대 시절 프랑스 리그에 데뷔하며 큰 기대를 받았던 남태희(25, 레퀴야 SC), K리그 최고의 유망주였던 이명주(26, 알아인 FC)와 김승대(25, 옌볜 푸더), 최근까지 유럽에서 활약했던 홍정호(27, 장쑤 쑤닝)까지 도전보다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이들이 많다.

물론 이들을 비판할 수는 없다. 축구 선수라는 직업의 특성과 자기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을 존중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발전을 바라는 팬들로서는 중국과 중동으로 향하는 선수들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기 힘들다. 실제로 중국과 중동으로 향한 대표팀 선수 중에서 기량 향상까지 이룬 선수를 착지 어렵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에 몸담은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10대 시절부터 유럽에서의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석현준(25, 트라브존스포르)을 보면, 꾸준한 기량 발전이 눈에 띈다.

최근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며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하고 있는 중국 슈퍼리그(CSL)가 돈으로 선수를 끌어들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리그 수준과 선수 개인의 발전까지 장담하지는 못한다. 1993년 출범한 J리그도 초창기에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통해 지쿠와 리네커, 스킬라치, 둥가, 스토이코비치, 베베토, 조르징요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영입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번 우리 대표팀을 보면 K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는 단 3명에 불과하지만, 중국과 중동에서 활약하는 선수는 6명이나 된다. 현재 자신의 미래를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 한국 축구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지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성적으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또 일본 대표팀을 보며 느낀 부러움만큼 한국 축구가 일본에 뒤쳐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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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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