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 초월적인 존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 초월적인 존재를 찾을 수밖에 없다. ⓒ 시네마 서비스


지난달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계를 떠나겠다는 입장을 남겼다. 미국인으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불교계에 귀의한 그의 행적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25년간 수행에 매진하던 그가 돌연 결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한국의 불교가 기복 종교로 전락했다는 것을 큰 이유로 꼽았다. 그야말로 현실에서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절을 찾는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불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능을 앞둔 시기면 교회나 절이나 가릴 것 없이 붐비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전도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나의 경우를 들자면, 어린 시절 나는 친구의 손을 잡고 교회를 찾았고, 바라는 것을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에 돈이 갖고 싶다고 기도했다. 이를 본 누군가가 다음에도 교회에 나오라며 나에게 만원을 쥐어주었다. 그 뒤로 나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이 한 일이지 신이 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복 종교에 냉소적으로 대해도,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없는 때가 있다. 바로 큰 비극을 겪은 사람들을 마주한 때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을 찾는다. 어이없는 사고로 주변인을 잃은 사람들, 자기 잘못도 아닌 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신을 찾고 안정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벌어진 일은 도무지 인과로 설명할 수 없고, 닥친 일은 이미 내 힘으로 다룰 수준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 비극이 만들어 내는 고통이 떠나질 않는다. 내가, 그리고 사람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에 압도되었을 때, 그 때는 초월적인 존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용서를 통해 얻고자 한 평화와 안정

영화 <밀양>의 주인공 신애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영화 속 그녀의 삶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고난과 시련이다. 어처구니없게 남편을 잃은 그녀는 도시를 떠나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밀양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정말 황망하게도,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내려온 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들도 잃게 된다.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고 돌아오던 그녀는 우연히 한 교회에서 통곡을 하고, 그 길로 기독교 신자가 된다. 아마 그 순간에 느꼈던 카타르시스와 공동체가 주는 위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겠다고 나선다.

어쩌면 영화 속 그녀의 선택이 다소 성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관객의 예감처럼, 막상 찾은 교도소에서 가해자는 신의 용서로 평온을 얻었다고 말하고 신애는 큰 충격에 빠진다. 사실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용서하는 욕망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런 상황은 종종 벌어지곤 한다. 이는 그 사람들이 복수 환상을 품는 기제와 유사하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의 삶을 뒤흔든 상황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끼친 막강한 영향력은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상처 그 자체다. 복수 환상을 통해 피해자는 가해자와 위치를 전환하고, 자신이 그 힘을 행사하고자 소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고통과 공포를 제거하고자 한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죄자를 신애는 용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죄자를 신애는 용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 시네마 서비스


용서 환상은 이 같은 복수 환상의 거울상 같은 것이다. 용서 환상에서 중요한 것은 이 '용서'가 가능한 조건이다. 이 환상에서 용서란 내려다보는 용서에 가깝다. 가해자는 죄를 지었고 이 때문에 무력하고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존재가 된다. 초라해진 가해자와 그 사람을 바라보는 피해자의 위치는 뒤바뀌게 된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하는 행위를 통해 이 구도를 재확인하고, 사랑과 관대함을 표함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한다. 말하자면 이 환상 속에서 용서란 빼앗긴 힘을 되찾는 행위다. 물론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용서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신애의 경우는 이러한 사례에 가깝다.

모든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필요는 없다

결국 신애에게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녀가 가해자를 용서할 기회를, 다름 아닌 그녀를 그 길로 이끈 신이 빼앗아버렸다. 때문에 이 상황에서, 그녀는 신에게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고 자신의 신앙을 향해 칼을 휘두르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분노를 쏟아내도, 그 어떤 응답이 돌아올 리 만무하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의 제목이 무엇인가. <벌레 이야기>가 아닌가. 결국 방황하던 그녀의 분노는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결국 그녀는 칼로 자신의 팔을 긋는다. 나는 그녀가 죽음을 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살을 가르는 아픔을 통해서 만으로라도, 자신의 고통을 덮어보고 싶었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신애의 이 같은 분투는 패배가 예견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성경에서 예수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용서해줄 것을 기도한다. 그는 자신의 피와 살이 찢기는 와중에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스스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으니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그나마 원망도 어찌하여 자신을 버리느냐는, 그의 아버지를 향한 것뿐이다. 이렇게 예수는 자신의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관철시킨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이를 통해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예수의 숭고함이지 그 이후의 부활이나 구원이 아니다. 성경의 용서는 내려놓음에 관한 이야기지 무언가를 얻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용서는 성경에서 그리는 것처럼 살이 찢긴 채 가시밭길을 걷는 고통과 고난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신애가 그토록 바라던 안정과 평화? 나는 예수는 결코 그것을 얻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그가 지금의 지옥도와 같은 세상을 바라본다고 생각해보라. 문자 그대로 '죽을 맛'이지 않을까. 나는 모든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애의 선택도 납득은 간다. 용서를 통한 구원, 이를 통한 평화와 안정, 이 얼마나 고통 받는 사람에게 달콤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나는 이런 것을 약속하는 것이 종교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 받는 사람 앞에서, 종교가 해야 할 일

 영화 <밀양>은 어쩌면 장면을 통해 '종교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밀양>은 어쩌면 장면을 통해 '종교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시네마 서비스


언젠가 마음이 혼란하여 절을 찾았을 때, 못 보던 얼굴을 발견한 스님이 나에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로 왔냐고. 나는 그에게 혼란한 마음에 평온을 얻고자 절에 왔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그렇다면 잘못된 곳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란 단어의 한자처럼, 높은 경지와 근원(宗)을 가르치는 것(敎)이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종교는 우리가 어떻게 될지, 무엇을 얻게 될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경전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고 곧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란 어떤 존재인지,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움을 받을 뿐이다.

<밀양>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나는 그 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용실에 들른 신애는 가해자의 딸을 만난다.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과거를 마주하다, 미용실을 박차고 나온 그녀는 자기 집 마당에 앉아 스스로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애의 앞에, 그녀를 따라 교회에 갔다 그곳에 남기로 했던 종찬이 서서 거울을 든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끊어내듯 신애는 머리를 자르고, 종찬은 조용히 거울을 들어 그런 그녀를 비출 뿐이다. 그리고 잘려진 머리카락 위로, 영화의 제목처럼 비밀스레 햇볕이 내리쬔다.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이 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지, 종교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한 답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밀양 종교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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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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