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블리자드의 <오버워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보자. 최근 주간난투(본 게임에 어느 정도의 변형을 가해 즐기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매주 새로운 규칙과 제약이 적용되는 형식)의 제목이 'No boys allowed'였는데 직역하자면 '소년(혹은 남자)은 허락되지 않음'쯤 되겠다. 실제로 여성 캐릭터만 골라서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게 짜여 있다. 그런데 이것이 게임 내에서 '미안해요 오빠들'로 의역이 되었고 논란이 일었다.

당장 의역의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원문에 '미안함'의 뉘앙스를 담은 단어는 어디 있으며 'boys'를 오빠들로 해석할 근거는 어디 있단 말인가? 맥락 상 남자 캐릭터로 플레이 할 수 없으니 '오빠들'에게 미안해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소름끼치는 권력관계를 두고 많은 유저들이 비판을 가했다. 여성들은 왜 남성에게 항상 공손해야 하며 왜 남성들은 '오빠'라고 불리길 원하는가. 동등한 주체로 존중할 수는 없는 걸까?

JTBC <아는 형님>의 이상한 콘셉트

 JTBC의 <아는형님>은 학교를 무대로 여성 게스트들과 남자 출연진들이 서로 반말을 하며 노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비록 반말을 통해 '우리는 동등한 관계다'라는 말을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남자 출연진들이 여성 게스트들을 대하는 방식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고 존중의 마인드도 결여되어 있다.

JTBC의 <아는형님>은 학교를 무대로 여성 게스트들과 남자 출연진들이 서로 반말을 하며 노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비록 반말을 통해 '우리는 동등한 관계다'라는 말을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남자 출연진들이 여성 게스트들을 대하는 방식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고 존중의 마인드도 결여되어 있다. ⓒ JTBC


JTBC에서 토요일 밤에 방송 중인 <아는 형님>은 남자 출연진과 여자 게스트들로 꾸려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학교라는 형식을 빌려 게스트들과 출연진이 퀴즈를 맞히거나 아이돌과 함께 춤을 따라 춰보는, 사실 그렇게 특별한 예능프로그램은 아니고 언제나 있어왔던 예능 토크쇼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아는 형님>이 독특한 점은 '반말'에 있다. 강호동, 이수근, 서장훈 등 적지 않은 나이에 긴 활동 경력을 가진 연예인들과 어린 여자 아이돌 (가끔 게스트로 남자가 끼어 나오기도 한다)이 꾸려나가는 예능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반말을 한다. 아이돌들이 아빠 뻘 되는 연예인에게  '호동이', '수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이 아닐까.

억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반말 콘셉트를 유지하는 이유는 아마 친근감 형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친해지는 데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일단은 나이 차부터 없는 것인양 하고 서로를 대해보자는 것일 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머지 여러 가지 제약'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아는 형님>의 콘셉트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를 동등한 주체로 존중하자는 듯 반말(사실 그게 아니라면 왜 아빠뻘 되는 연예인에게 굳이 반말을 해야 하는가) 콘셉트는 유지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권력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제약은 무시된다.

가장 흔한 권력 차이는 여자 게스트들이 남자 출연진에게 부리는 '애교'에서 나타난다. 물론 여자 아이돌은 어디서나 애교를 부릴 수 있어야 사랑받는 '극한직업'이라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 콘셉트로, 동등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반말'까지 하는 상황에서 맥락도 없는 애교를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상황은 이상하기 그지없다.

 반말을 통해 동등한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듯 하지만 으레 여성 연예인들에게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애교 또한 <아는형님>의 필수 요소다.

반말을 통해 동등한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듯 하지만 으레 여성 연예인들에게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애교 또한 <아는형님>의 필수 요소다. ⓒ JTBC


<아는 형님>은 여성이 동등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 결과적으로는 주간난투의 어처구니 없는 제목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남성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인식 그대로다.

아재스러움의 폭력성을 미화시키는 공간

권력관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아는 형님>의 게으름은 남성 출연진들의 '아재스러움'을 제작진이 어떻게 소비하는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가령 강호동의 경우를 살펴보자. 아내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대목에서 전까지 희희덕거리던 표정을 갑자기 험악하게 구기면서 "뭘 봐? 설거지나 해!"라며 윽박지른다거나, 여자 아이돌과의 상황극에서 '상남자'라며 소리를 지르고 때리는 시늉을 하는 등의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누구를 향한 것이든 폭력적인 뉘앙스의 행동을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더구나 다른 성별, 그것도 남자가 여자를 향해 하는 행동이 예능의 웃음거리로 소비되는 현상은 결코 웃음으로만 넘기기 힘들다. 여성을 향한 남성의 가해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닌데 이런 폭력성을 희화화하는 것은 유희를 넘어 범죄다.

여성 게스트를 향한 존중의 부재, 더 나아가서 폭력성 표출을 보이는 것은 서장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 운동선수 서장훈이 예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삼촌 콘셉트'다. 나긋나긋하지만 화내야 할 때는 화를 내는 그런 이미지. 그는 <아는 형님>에서도 그런 콘셉트를 유지한다. 그가 어느 예능을 가든 보여주는 '팔짱 끼고 쳐다보기'는 언제나 그에게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심판자', '평가자'의 스탠스를 취하게 만드는데, 급조해서 만들어낸 평등한 관계 속에서 서장훈의 몸짓 하나하나는 여자 아이돌에게 삿대질을 하거나 명령조의 말을 하고 '현모양처' 운운하면서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언행으로 표출된다.

 서장훈의 까칠한 이미지는 여기서도 일관적이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폭력적이고 명령조의 언행들은 자꾸만 과연 이 관계가 동등한 것인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서장훈의 까칠한 이미지는 여기서도 일관적이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폭력적이고 명령조의 언행들은 자꾸만 과연 이 관계가 동등한 것인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 JTBC


그렇다고 이수근이나 민경훈, 김희철 같은 출연진들이 문제가 없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강호동과 서장훈이 물리적인 힘의 균형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이용해 폭력성을 내비친다면 나머지 출연진들은 막말과 외모 품평, 아재개그를 주무기(?)로 <아는형님>의 아재스러움을 극대화하는 데에 일조한다.

이수근과 이상민은 '흑역사'를 들춰내는 자학개그를 지속적으로 던져댄다.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이혼 경력과 도박 이야기가 왜 프로그램 곳곳마다 희화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걸 무리수로 던져대는 본인들이야 예능이라는 형태를 빌려서 죄의식을 덜어내고 싶을지는 몰라도 여자 게스트들은 그런 자학개그에 자지러지듯이 웃어야만 한다. 중년의 남성들끼리 희희덕거리면서 소비할 수 있는 주제를 성별과 나이 신경쓰지 않고 아무대서나 뱉어내는 아재스러움은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다.

<아는 형님>의 출연진, 현실의 개저씨와 다를 게 뭔가
이 외에도 <아는 형님>에는 외모 품평과 여성혐오적인 발언이 수도 없이 나온다. 다 나열하기도 어렵다. 여성을 향한 서슴없는 외모 평가와 편견이야 한국 예능이 매번 저지르는 잘못이고 논란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하필이면 반말 콘셉트로 평등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려 노력하는 예능에서 여성 연예인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결코 유머코드가 될 수 없다.

이런 비판이 있을 때마다 이제는 언급할 필요도 못 느낄 정도지만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는 반론이 뒤따라온다. 하지만 어쩌겠나. <아는 형님> 속 아재 혹은 '개저씨'는 당장 TV를 끄고 현실로 돌아와도 마주칠 수 있는 존재들이고 그들의 먹잇감은 브라운관이 아닌 현실을 걸어다니는 여자들인 것을.

<아는 형님>의 출연자들이 자기 내면의 아재스러움을 당당히 표출하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는지 상관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고 아무 행동이나 거리낌없이 해대는 현실의 '개저씨'들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서로를 '제대로' 존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예능을 보고 싶다.

아는형님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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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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