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을 보러 찾아간 날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도심 한복판 극장가에서 세 명 남짓 영화관을 채웠다. 지난 25일 개봉한 <범죄의 여왕>은 29일 기준으로 가까스로 3만 명의 관객을 넘었다. (3만2329명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영화 <범죄의 여왕> 포스터

영화 <범죄의 여왕> 포스터. <범죄의 여왕>은 한 번쯤 꼭 볼 만한, 근래 보기 드문 '괜찮은' 영화이다. ⓒ ㈜콘텐츠판다


이 초라한 성적표의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우선은 대부분 사람이 이 영화가 상영되는지도 모르는 듯하다. '광화문시네마' 제작, (주)콘텐츠판다의 배급이라는 배급과 제작의 불리함을 들 수밖에 없다. 한국 영화 제작의 독점이 심화하고, 이제 그 독점의 해법을 또 다른 외국 독점 자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수평적 무브먼트'를 지향하는 영화 창작 집단 '광화문시네마'의 시도는 건강하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또한, NEW가 설립한 콘텐츠 유통 전문 회사로, 독립 영화 배급에 뛰어든 (주)콘텐츠판다의 배급도 역시나 한계적이다.

거기에 아직 대중적이지 않은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는 '신선한(?)' 장르도 제한적이다. 스타는커녕 '엄마'가 주인공으로 범죄자를 잡는다니, 애초에 젊은 층들은 외면하고, 나이든 층들은 낯설어할 내용이기 십상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범죄의 여왕>이 흥행하기 힘든 이유를 대자면 손가락으로 줄줄이 접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조금은 색다른 한국 영화를 선택하고 싶다면 <범죄의 여왕>를 권하고 싶다.

독특한 분위기의 고시촌 스릴러

고시생 아들을 둔 지방 미용실 아줌마. 미용실이라지만 동네 장사의 한계성을 돌파하기 위해 아줌마가 요즘 주업으로 삼고 있는 건 '야매 보톡스'다. '야매' 장사까지 해서 돈을 버는 아줌마에게 고시생 아들의 전갈이 온다. 수도요금이 120만 원이 나왔으니 돈을 부치라는 것! 아들은 엄마의 '돈'이 필요해서 보낸 전갈이지만, 동네 아줌마들 상대로 '입'이 부르트도록 '보톡스'를 팔아 돈을 버는 엄마는 그 돈 120만 원을 호락호락 보내줄 수 없다. 아들의 수도요금을 해결하기 위해 상경한 엄마,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위층의 소음에 참다못해 뛰쳐 올라간 고시생의 비명으로부터 사건은 이미 예고된다. 하지만, 저마다 문을 닫아걸고 괴괴한 정적만이 맴도는 고시원, 그 철저한 '개인주의'의 무덤 속 사람들은 그 사건마저 불통의 관례로 접어 넘긴다. 하지만, 이미 미용실에서부터 동네 오지랖으로 한 '껀'을 했던 엄마는 예의 그 오지랖으로 아들의 수도요금을 '사건화' 시킨다.

 이 좁은 '을'들의 집합소에서는 거짓과 사기가 교차된다.

이 좁은 '을'들의 집합소에서는 거짓과 사기가 교차된다. ⓒ (주)콘텐츠판다


영화의 서사는 막상 다 보고 뒤돌아서서 생각해 보면 전형적이다. 굳이 영화화할 것도 없이, 드라마 스페셜의 한 편 정도로도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렇지 않다. 뻔히 다음이 어떻게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영화가 마무리되는 지점까지 흥미를 놓치지 않게 된다.

그 흥미를 추동하는 첫 번째 요인을 든다면 <범죄의 여왕>이 가지는 독특한 '미장센'을 들 수 있다. 이형곤 감독의 <구미호 가족(2006)> 같은 기괴함은 아니지만, 박찬욱 감독의 화려한 퇴폐미도 아니지만, 절망의 늪 같은 분위기를 흠씬 자아내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스릴러'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시원'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범죄의 여왕>의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분명 흑백 화면이 아닌데도, 흑백보다 더 암울한 분위기의 고시원에 한껏 화려한 색채의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엄마 양미경씨,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이미, 고시원이란 공간에 파열음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색채의 대비만큼, 엄마는 지금까지 '고시원'이 암묵적으로 지녀왔던 '개인주의'적 규율에 파열음을 일으킨다.

오지랖 엄마, 소통으로 사건을 해결하다 

고시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돈이나 내고 내려가라는 아들의 말에, '엄마가~'를 연발하며 며칠의 말미를 얻은 엄마는 고시원 관리실을 시작으로 과잉 부과된 것이 분명한 수도 요금의 조사를 시작한다. 엄마의 야심 찬 수사에도 불구하고 수도 요금 과적은 매번 장애를 만나게 되고, 야무지게 현장을 급습한 창고에서는 엉뚱하게도 합격탕의 실체만 만나게 된 채, 경찰행이 되고 만다.

엄마의 수사, 그 과정의 포인트는 바로 오랜 미용실 경영으로 단련된, 만나는 사람 그 누구라도 대번에 '아는 사람'으로 만들고 보는 '오지랖'이다. 관리실 형님들에게는 맞고 쑤셔박히는 신세지만, 고시생들에게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나운 들짐승' 같은 '개태'를 '엄마 해줄까'라며 구워삶는가 하면, 동네 바보 취급당하는 만년 고시생을 '덕구야~'라며 부르며 사람 취급해주는 것도 히키코모리 게이머 진숙과 소통하는 것도 엄마 특유의 너스레이다.

그리고 바로 <범죄의 여왕> 속 엄마가 '여왕'인 이유는, 고시촌 그 저마다의 섬 속에서, 각자 자신의 입신양명만을 향해 질주를 벌이는 무리 속에서, 튕겨 나온 '루저'들의 집합체 같은 고시원이라는 연옥에서, 엄마 특유의 너스레와 붙임성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점으로 이어 그 '네트워크'로 사건 해결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루저들의 집합소 고시촌. 그 가운데 '네트워크'를 활용한 문제 해결이 돋보인다.

루저들의 집합소 고시촌. 그 가운데 '네트워크'를 활용한 문제 해결이 돋보인다. ⓒ (주)콘텐츠판다


또한, 영화는 '입신양명'의 극한값인 '고시'라는 블랙홀에 휘말린 인간 군상과 그 '고시'를 위해 영업정지를 당하며 보톡스 시술을 해가며 그것을 지탱하는 엄마를 통해 부도덕한 '성공' 사회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그런 '부도덕' 혹은 '성공'의 늪 같은 고시촌이란 배경을 통해 한국 사회를 '냉소'하면서도,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엄마 양미경을 통해 '인간적인'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엄마의 고생을 신파조로 읊조리지도 않고, 그 삶의 노동성을 배경으로 터득된 '오지랖'으로 사건을 해결해 가는 엄마 양미경은 근자에 보기 드문 건강한 모성이다. 이 모성성의 건강함 덕분에, 한껏 기괴했던 고시촌 스릴러의 칙칙함은 쾌활한 블랙 코미디로 전화된다. 물론 거기에는 박지영이라는 배우의 독보적 매력이 전제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는 엄마의 조력자로 양아치 개태에, 동네 바보 취급당하는 만년 고시생 덕구와, 히키코모리 진숙을 배열하며, 인간의 가치를 반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범죄의 영화>는 2016년 '인간관계'가 사라진 도시 속에 시골 엄마가 재건해낸 저마다의 자리와 몫이 있는 '인간 네트워크'와도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범죄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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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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