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와이프> 속 서명희는 어느 한 단어로 정의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로펌 대표, 사이가 틀어진 아버지와 동생 중원(윤계상 분) 사이에서 선 큰딸이자 누나, 현실적이지만 기본을 잃지 않는 멋있고 당당한 법조인…. 서명희는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배우 김서형(39)은 그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는 서명희 역을 제안받고 "처음엔 거절했었다"고 했다. <자이언트> <어셈블리> 등에서 보여준 김서형의 연기를 떠올려본다면, 그녀만큼 서명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은데 말이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솔직했다.

"전도연 역 욕심났다" 

 tvN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서명희 역의 배우 김서형이 29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원작을 본 여배우라면 누구든 김혜경 역 욕심 냈을 것"이라는 김서형. 현장에서 전도연의 연기는 '팬'으로서 지켜봤다고 한다. ⓒ 이정민


- 원작과 싱크로율이 가장 높다는 평이 많았다. 배우 중 원작을 많이 본 거의 유일한 배우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여배우로서 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한정적이지 않나. 그래서 미드를 보면서 멋진 여성상을 찾아보는 편이다. <굿와이프>를 볼 때는 사실 다이앤(한국판 서명희)보다 알리시아(한국판 전도연)을 집중해서 봤지."

- 원작을 봤으면 아무래도 알리시아, 김혜경 역이 욕심났을 것 같다.
"원작을 본 여배우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우리 드라마에서는 여성이 메인이 되는 장르물이 드물고, 원작에서 알리시아의 성장기도 매력적이니까. 원작 팬으로서 누가 혜경을 연기했더라도 기대하고 봤을 거다. 근데 전도연씨가 한다는 거다. '와우' 싶었지. 현장에서 원작 팬으로서,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팬으로서 지켜봤던 것 같다."

- 전도연과의 호흡은 어땠나
"톱배우 아닌가. 처음에는 내가 연기할 때 리액션 제대로 해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자기 분량만 마치고 가버리면 어쩌지 했는데, 어떤 배우와 함께라도 정확하게 열심히 해주더라. 나는 주로 강한 캐릭터를 맡다 보니 힘을 주면서 연기했는데, 전도연씨는 특유의 내추럴한 연기가 있지 않나. 연기인 듯 아닌 듯 하는.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내 연기를 대입해보기도 했다. 확실히 좋은 배우, 잘하는 배우와 연기하면 배우는 게 많은 것 같다."

그녀가 서명희를 거절한 이유 

  tvN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서명희 역의 배우 김서형이 29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이지만, '악역 전문'이라는 꼬리표 아닌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이번 <굿와이프>에서, 그녀는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이 악역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 이정민


- 처음 서명희 역을 제안받고 거절했었다고 들었다. 
"늘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나더러 '악역 전문 배우', '카리스마 전문 배우'라고 하던데, 난 배우에게 '전문'이라는 표현만큼 웃긴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다 잘해야 한다. 어떤 배역이 와도 잘 해내야 배우지. 나도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까. 찍어내듯이 비슷한 연기만 하는 느낌이라 지칠 때가 있다."

- 캐릭터들의 성격이나 직업 등만 두고 본다면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김서형이 늘 같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작품 속에서 내 이야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이 담긴 캐릭터를 해본 게 언제였나 싶다. 대부분 주인공의 성장과 변화를 돕는 역할이었거든. 주인공은 주변 캐릭터들이 무수히 부딪치며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그 인물의 이야기나 감정이 시청자에게 전해지는 거다."

- 서명희는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굿와이프> 속 인물들은 모두 주체적이다. 혜경은 말할 것도 없고, 이태준(유지태 분)도 중원도 목표하는 바가 뚜렷하고 각자의 포지션이 있다. 하지만 서명희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없다. 순간의 감정과 대사만 있을 뿐 기승전결이 없는 거다. 만약 이태준이 나를 괴롭혔다면 나만의 스토리가 생겼겠지. 하지만 명희는 중원의 누나, 로펌 대표 말고 다른 이야기가 없다. 같은 감정이라도 스토리가 있는 인물과 없는 인물은 전달되는 울림이 다르다. 순전히 내가 상상으로 설정한 내용만으로 연기해야했다. 명희는 왜 아버지 앞에서 사과를 깎고 있을까? 중원이를 대하는 명희의 모습은 로펌 대표일까, 누나일까? 초반에는 어떤 감정 어떤 톤으로 대사를 해야 할지 몰라 고민도 많았다."

-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원작에서 친구로 설정됐던 윤계상과의 관계가 오누이로 변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겠다. 원작의 긴 이야기를 압축하다 보니 불필요한 러브라인은 아예 차단해버린 느낌도 있었다. 
"출연을 망설인 이유 중 하나였다. 오누이가 아니더라도 러브라인이 등장하진 않았겠지만, 아예 긴장감 자체를 없애 버린 거니까. 배우로서 원작에서 표현된 다이앤의 멋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누나라고 하니 아무래도 풀어지는 게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누나라는 설정이 있더라도 로펌 대표로서 역할이 더 클 거라 생각했는데, 초반에는 너무 누나인 거다. 아버지 병실에서 사과를 깎고 있는 명희의 모습이 맞는 건가 싶었다. 한 신 한 신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초반에 마음고생도 좀 했고."

주변 인물에 머물기 싫었다

  tvN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서명희 역의 배우 김서형이 29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선택받는 배우, 선택하는 제작사. 자신의 역할이 고정되는 데 지쳐갔던 그녀는 이번 <굿와이프>에서 그 목마름을 해갈했다. ⓒ 이정민


- 주인공의 주변인물이 아닌, 서명희만의 스토리에 목말랐던 것 같다. 
"맞다. 그래서 일회성이었지만 썸남 에피소드가 고마웠고 재밌었다. 짧지만 명희의 평상시 모습을 보여 준거지 않나. 동생도, 로펌 사람들도 모르는 명희만의 편안한 모습. 전체 스토리에서 보면 갑작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약간 풀어진 명희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 그래도 이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건 대단한 일 아닌가. 
"그 덕에 내가 배우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지. 하지만 욕심을 부려보자면 하는 얘기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연기를 다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는 거니까. 'XX 전문배우'라는 말이 배우라는 직업을 굉장히 좁게 만든다.

사실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이고, 제작진은 이 역할을 잘 소화할 것 같은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나. 그러니 늘 비슷한 캐릭터만 주어지는 거다. 이건 배우의 의지랑 상관없는 일인데 '김서형은 늘 같은 연기만 하네', '변신 좀 하지 지겹다'라는 댓글을 보면 속상하다. 이미지 변신은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닌데."

- 요즘은 예능으로 이미지 변신하는 배우들도 많다. 혹시 예능 출연 생각은 없나.

"꾸준하게 연락 오는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일회성은 몰라도 고정은 자신이 없다. 토크쇼도 재미있게 사는 인생이 아니라서 할 이야기도 없고. 무엇보다 새로운 이미지를 예능으로 먼저 보여주고 싶진 않다. 본업인 연기로 보여드린 다음 한다면 모를까."

<아내의 유혹> <자이언트>, 그리고 <굿와이프> 

  tvN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서명희 역의 배우 김서형이 29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김서형에게 서명희라는 인물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어 보였다. <굿와이프> 시즌2가 제작된다면 "당연히 해야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 이정민


- 1994년 데뷔해 <아내의 유혹>으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14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8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처음 이름을 알리고 꿨던 미래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에 많은 차이가 있나.
"<아내의 유혹> 전에도 나는 꾸준히 연기하고 있었지만, 사람들 기억에 남지 못했다. <파리의 연인>에도 출연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서형'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전처'로 불렸으니까. 그때 욕심은 지금까지는 내가 뭘 해도 사람들이 몰라줬으니, 뇌리에 남는 작품을 하는 게 어딘가 생각했다. 내 존재를 알렸으니 더 많은 기회가 올 거라 생각했고. 하지만 센 역할로 이름을 알리고 나니 점점 더 센 역할만 들어왔다. 그렇게 1년 넘게 공백을 가져야 했다."

- <자이언트>를 선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자이언트>는 <아내의 유혹> 오세강 감독님의 추천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나보다 1살 어린 박진희씨 엄마 역할이라는 게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오 감독님이 '엄마인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연기 평생 할 거 아니냐'고 하시더라. '연기를 보여주면 된다'는 감독님 말씀에 결정했는데, 그때 거절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 그러고 보니 <아내의 유혹>으로 주목받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김서형이 가진 이미지나 캐릭터는 <아내의 유혹>보다 <자이언트>에서 시작된 것 같다.
"유명세는 <아내의 유혹>으로 얻었지만, 연기에 대해 알게 해준 작품은 <자이언트>다. 연기를 풍요롭게 만들어 줬달까. 무엇보다 유경옥은 작부로 시작해 이덕화 선생님과 결혼하고 그 이후까지, 나름의 자기 인생사가 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그때도 조연이었지만 그녀만의 (지금 김서형이 그리도 목말라 있는) 기승전결이 있었던 거지."

- <자이언트>는 60부작이었지 않나. 아무래도 미니시리즈는 길이가 짧다 보니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줘야 하고, 그 외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스토리는 쳐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굿와이프>도 시즌7로 완결된 이야기를 16부작으로 압축하다 보니 이런저런 얘기가 빠질 수밖에 없었을 테고.
"맞다. 처음 미팅할 때부터 멜로, 정치 얘기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시즌제 드라마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굿와이프> 시즌2? 제작된다면 당연히 해야지."

- 새로운 모습에 대한 갈망이 컸다. 다음 작품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
"마음 같아선 뭔들 못하겠나 싶다. 더 늙기 전에 액션도 하고 싶고, 청승도 그런 청승 없는 슬픈 멜로도 해보고 싶다. 다음 작품이 뭐가 됐든 끝나고 할 얘기가 많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와는 다른, 얼토당토않은 역할을 맡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당장 기회가 오진 않을 테니 주어진 캐릭터 안에서 제작진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 배우는 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나를 믿고 캐스팅해준 이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도 없고. 김서형은 어떤 캐릭터를 줘도 잘한다는 평가를 들으면 언젠가 새로운 기회가 오겠지?"

  tvN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서명희 역의 배우 김서형이 29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로운 기회를 붙잡고 싶다는 그녀. 배우 김서형에게 어떤 작품, 어떤 배역이 들어오든 그녀는 완벽하게 그 인물이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 이정민



김서형 굿와이프 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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