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메신저를 통해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바쁜 업무로 인해 관람을 계속해서 미루던 영화 <터널>을 드디어 오늘 밤에는 볼 수 있다는 내용. 그러자 아내가 의외의 대답을 했다.

"<터널>, 재미없다는데?"
"응? 누가 그래? 하정우도 나오고, 영화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런데 재미없대. 오늘 점심에 카페에 가서 일하고 있는데 옆에 앉았던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재미없다고."
"에이 설마. 그래도 기본은 하겠지. 설마 <인천상륙작전>이나 <수어사이드 스쿼드>만 할라고."

 영화 <터널>의 포스터.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 호소하는 기획은 좋았지만, 상업 영화에 기대할 만한 쾌감은 부족한 영화였다.

<터널>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 쇼박스


말은 그리했지만 아내의 말을 듣고 나니 다시 불안해졌다. 아내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영화 <터널>이 생각보다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은 탓이었다. 안 그래도 요 근래 <제이슨 본>과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연달아 보면서 나의 영화 보는 안목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었는데, <터널>까지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기분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왕 결심한 거, 아내와 함께 극장으로 향했다.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도 등장하고, 영화가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를 삼았다고 하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봐야만 하지 않겠는가.

너무 가벼운 재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 쇼박스


영화는 생각보다 전개가 빨랐다. 주인공이 무너진 터널에 갇혀 갖은 고생을 하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된다는 내용은 어차피 알고 있었기에 그 긴 상영시간을 그것만으로 채우느냐가 영화의 관건이었는데, 터널은 생각보다 일찍 무너졌고 정수 역의 하정우는 처음부터 거의 상대 배우 없이 홀로 스크린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정우가 모든 분량을 책임지지는 않았다. 영화는 터널에 갇힌 주인공과 함께 밖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싣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세월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온갖 부정, 부패로 얼룩진 대한민국과 그로 인해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고. 재난을 대하는데 있어서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사회 시스템과 오로지 특종에만 정신 팔린 기자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결국 분열하는 여론과 그에 맞춰 또 한 번 좌절할 수밖에 없는 유가족의 모습들. 과연 이후 한국의 재난 영화는 세월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러나 영화는 처참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어둡지만은 않았다. 터널이 무너지고 사람이 그 안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종종 웃음을 터트렸다. 관객들이 그 끔찍한 상황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했다기보다는 감독이 그만큼 쉬어갈 타이밍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무너진 터널에 매몰됐지만 포기하지 않은 채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나 위안을 느끼고, 기적적으로 들리는 라디오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금은 망설이지만 다른 생존자에게 얼마 남지 않은 물을 선뜻 넘기는 주인공. 하정우의 연기는 감독에 의도에 맞게 시종일관 심각하기 보다는 조금 가벼운 모습으로 관객들의 심적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한심한 작태들은 또 어떤가.

한심한 작태들은 또 어떤가. ⓒ 쇼박스


어디 그 뿐인가. 터널 밖의 모습 역시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현실에서도 정부의 허둥대던 모습은 블랙코미디를 능가했는데, 영화는 그런 현실을 더욱 극화시켜 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노란점퍼를 입고 와서 사람을 구하기보다는 사진 찍는데 연연하는 공무원들(하필 장관이 여성이다!)과 실컷 땅을 파고 난 뒤 '여기가 아닌가벼'라며 당황해하는 구조대의 모습. 예전 같았으면 그냥 영화 속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상황도 이제는 충분히 현실성을 담보한 장면이 되어 관객들의 쓴웃음을 이끌어냈다. 현실로 닥치면 너무도 끔찍하고 처참할 상황이지만 그나마 영화니까 볼 수 있는 재난의 민낯이라고나 할까.

다만 문제는 그런 재난에 대한 감독의 접근이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아직도 세월호 참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재난에 관련된 영화를 만들면서 굳이 세월호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든 상징을 버무려 이렇게 가볍게 만들면 되겠느냐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지 2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는 세월호. 정부는 사태의 해결은커녕 오히려 세월호진상위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막아서며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고, 그 와중에 오직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던 어떤 의인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영화 <터널>을 이렇게 가볍게 만들면 되겠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의 만듦새를 지지한다. 비록 재난을 현실보다 한없이 가볍고 경쾌하게 그렸지만, 그렇기 때문에 <터널>은 확장성을 얻게 되었고 그만큼 가치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영화는 평소에 세월호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의 시금석 세월호

 앞길이 꽉 막혀 있는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앞길이 꽉 막혀 있는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 쇼박스


영화 중반, 주인공을 구하기 위한 시추공의 위치가 잘못 되었음이 밝혀진 뒤 영화 속 여론은 급격하게 변한다. 주인공의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고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국민들이 설문조사에서 매몰자 구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근 터널 공사 강행에 더 많은 찬성 의견을 던진 것이다.

무려 찬성 65%. 정부는 그 수치를 들고 주인공의 아내를 설득, 아니 협박한다. 이제 국민들도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 더 이상 구조를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한다.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하루에 15억씩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당연한 결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국민 65%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일까? 아니다. 그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6개월 이후 국민의 65%가 실종자 수색을 그만두고 선체인향을 해야 한다고 답했고, 세월호 1주기 당시에는 60대 이상의 65%가 세월호를 지겹다고 대답했다. 국민의 65%는 결코 우리가 버리고 가면 안 되는, 다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 설득의 대상인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영화 <터널>은 어쩌면 그 65%에게 대화를 걸기 위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세월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서 본다면 영화가 현실에 대한 터무니없이 가벼운 터치일지 몰라도, 혹자들에게는 영화가 그 수위와 상관없이 감히 세월호를 떠올리게 만드는 불쾌한 영화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모두와 함께 가슴 아팠지만 시간이 흐른 뒤, 애써 망각했던 그 세월호에 대한 기억들.

 남겨진 가족들의 눈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남겨진 가족들의 눈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쇼박스


사실 세월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시금석 같은 존재이다. 현재 많은 언론들은 청와대 우병우 수석의 비리 등에 대해 천착하고 있지만 그것은 대중의 흥미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는 뉴스일 뿐, 사회 시스템의 본질과는 크게 상관없다. 그것은 권력이 바뀌면 또 다시 등장할 수 있는 표피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혹여 우병우 수석이 물러나고 청와대가 사과한다고 사회가 변할까? 물론 절대 아니다.

반면 세월호는 다르다. 처음에는 단순히 허술한 해양구조시스템과 아직 밝혀지지 않는 원인의 문제일 수도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시스템의 거의 모든 모순이 켜켜이 축적되어버렸다. 아직까지도 세월호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언론을 통해 왜곡되고 있는 것은 결국 그 모든 모순의 무게 때문이다.

혹자들은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지만, 이는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인 일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최고 명령기관의 부재라는 시스템적인 문제이며, 동시에 국가가 별다른 이유 없이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절차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의 문제도 낱낱이 까발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국회의장 주재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세월호 특조위 문제를 집중 거론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우병우 수석비리나 사드배치 등 여타 뜨거운 쟁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월호를 콕 집고 넘어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해결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변할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구요."

그는 말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구요." ⓒ 쇼박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아내는 카페에서 영화 <터널>이 재미없다고 한 아저씨의 이야기를 더 전해 주었다.

"영화가 재미없다고 했던 아저씨는 왜 그렇대?"
"터널이 무너지는 게 말이 되냐고. 말도 안 되는데 그렇게 찍으니까 재미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 큰 배가 가라앉는데 사람을 그렇게 못 구한 건 말이 되나? 어쨌든 그렇게라도 영화를 한 명 더 보면 다행이지 뭐. 세월호를 잠깐이나마 떠올렸을 거니까."

영화 <터널>은 결코 잘 만들어진 수작이 아니다. 그러나 꼭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할 영화이다. 혹여 <터널>에 대한 불만들을 쏟고자 한다면, 그 시간에 <터널>을 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영화 보여주기를. 영화 <터널>은 그대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니까.

터널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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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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