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은 기발한 상상력과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어린이 소설과, 짙은 블랙 유머가 깔린 미스터리 단편들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국내에도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있지요.

'상상력의 제왕' 답게 그의 어린이 소설들은 이미 여러 편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1971년과 2005년에 두 차례나 영화화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일 것입니다. 그 밖에도 <판타스틱 Mr. 폭스>(2009), <마틸다>(1996),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1996) 등이 있습니다.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포스터. 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유려한 연출이 행복하게 만난 수작이다.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포스터. 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유려한 연출이 행복하게 만난 수작이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로알드 달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만남

이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The BFG, 국내 출간 제목 <내 친구 꼬마 거인>) 역시 그가 쓴 동화가 원작입니다. 고아원에 살고 있는 소녀 소피는 어느 날 새벽 우연히 거인을 목격하는 바람에 거인 나라로 납치 당합니다. 처음에는 자기를 납치한 거인이 몹시 두려웠지만, 엉터리 영어로 말하는 그와 얘기를 나누게 되면서 조금씩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알고 보니 그는 거인 나라에 사는 다른 거인들과는 달리 사람을 잡아 먹지 않는, 사려 깊고 친절한 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Big Friendly Giant(=BFG)라고 부르죠.) 보기에도 맛없어 보이는 킁킁오이(snozzcumber)만 먹고 살면서, 예민한 귀로 풀꽃과 벌레들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고, 꿈을 채집하고 그것을 섞어 새로운 꿈을 제조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스티븐 스필버그는 원작 동화를 환상적인 시각 효과와 유려한 카메라 워킹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재창조했습니다. 원작에서 단순하게 처리되었거나, 소피와 BFG의 대화로만 이어졌던 부분들을 시각화하기 위해 미술, 의상, 분장을 아우르는 전체 프로덕션 디자인을 잘 활용합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서로 숨바꼭질하듯 교차되는 인물의 동선을 통해 서스펜스를 극대화하기도 하죠.

특히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영국 여왕과의 엉망진창 조찬 장면은 로알드 달 특유의 유머 감각이 빛납니다. 엄격한 예절과 격식을 완전히 뒤집어 버림으로써 통쾌한 해방감을 선사하니까요.

그러나 초반부의 템포가 다소 느리고, 소피와 BFG가 주고 받는 대사의 리듬감이 원작만큼 잘 살아 있지 않은 것, 그리고 주인공 소피 역할을 맡은 아역 배우 루비 반힐의 부자연스러운 연기가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점들 때문에 생각보다 북미 흥행 성적이 부진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노력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한 장면. 거인(마크 라일런스)은 소피(루비 반힐)와 함께 꿈을 채집하러 가서 환상적인 한 때를 보낸다. 영화의 뛰어난 시각 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이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다.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한 장면. 거인(마크 라일런스)은 소피(루비 반힐)와 함께 꿈을 채집하러 가서 환상적인 한 때를 보낸다. 영화의 뛰어난 시각 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이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가끔 곤혹스러운 것이,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생각에만 빠져 있을 때입니다. 앞뒤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불쑥불쑥 자기 머릿속 생각을 읊어대거나. 손꼽아 기다리는 어떤 것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열망을 가감없이 표출하며,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말이나 행동을 반복하곤 하죠.

많은 부모들이 이럴 때 아이를 야단치거나, 아니면 완전히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식으로 자신의 기준에 맞출 것을 강요합니다. 이런 행동의 밑바탕에는 아이들의 허황된 생각쯤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희망사항이 꺾이거나 무시당하는 것은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말이죠.

하지만 아이들의 꿈과 그들만의 생각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불과 몇 십년 전의 우리 모습을요. 어른들의 무관심 앞에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고, 행복했던 상상의 세계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빛을 잃고 말았을 때 얼마나 속상했던가요.

이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아이들이 얼마나 자기 모습 그대로 존중받길 원하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 뒤에 깔려 있는 진짜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바라는지 잘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꿈을 만들 줄 아는 BFG는 그런 열망이 반영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어른들의 삶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미 잊힌 꿈들을 다시 꾸게 되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계기가 될 테니까요. 어쩌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거인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BFG가, 소피의 도움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울 용기를 얻고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된 것처럼요.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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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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