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의 한 장면.

<청춘시대>의 한 장면. ⓒ jtbc


아버지의 사고 등을 조사한 보험조사원을 만나기 하루 전, 확인되지 않은 자신의 책임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한 유은재(박혜수 분)는 불안함 마음에 느닷없는 외박을 감행한다. 그리고 들어 온 아침, 막내를 걱정했던 셰어 하우스 '벨 에포크'의 언니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죽고 싶지 않았다"는 이 막내를 이렇게 다독인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미리 걱정 하지마. 그때 일은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니까." (윤진명, 한예리 분)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니 편 들어 줄 테니까." (정예은, 한승연 분)
"나두. 세상사람 다 니 욕해도 내가 니 편 들어 줄 테니까." (강이나, 류화영 분)

27일 종영한 드라마 <청춘시대>의 박연선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여기에 담겨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지극히 '꼰대'스러운 해결책이 아닌, "니가 왜 죽어"라거나 "그래, 살어! 죽지마"라는 단편적인 이해를 넘어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통한 '함께 살아가기'의 모색.

강이나의 에피소드 역시 궤를 같이 한다. 명백히 '세월호 참사'를 은유하는 선박사고의 생존자 강이나. 그를 쫓아다니던 또 다른 사고 희생자의 아버지 오종규(최덕문 분)도 오해를 풀고 강이나와 작별을 고하면서 "살아라"는 말을 건넨 바 있다.

그건 강이나가 가진 사고의 트라우마를 걱정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죽음의 그림자가 개개인에게 가깝게 드리워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의 우울을 이겨내자는 작가의 다독임에 가깝다 할 수 있다.

12회 내내 반짝반짝 '윤기'를 냈던 <청춘시대>는 그런 식이었다. 이들의 성장과 사랑에는 내내 죽음과 비밀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지만, 결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줄 몰랐다. 우리네 삶이 그렇다는 듯,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까지 모두 이 다섯 청춘들의 희로애락을 넘침도, 모자람도이 그려냈다. 거두절미, '올해의 드라마'로 꼽을 만한 수확이었다. 

'함께 살아가기'에 대한 '따뜻한 말 한마디'들 

 <청춘시대>의 포스터.

<청춘시대>의 포스터. ⓒ jtbc


마지막 회, 장례식 장면도 상징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안락사로 죽음을 맞이한 윤진명의 남동생 장례식. 장례식 참석은 대부분이 처음인지라, 예절을 몰라 주춤하던 동생들과 한바탕 웃음을 짓는 윤진명의 미소와 동생들의 다독임.

그리고는 "이런데도 자주 오면 익숙해지겠지"라거나 "아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많이 생길 테고, 언젠가 우리도 죽을 테고"라며 그 나이에 가질 법한 감상을 털어 놓는 식이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인생을 배워나가기. 다만, 그 성장이 어느 일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 다는 지극히 당연하는 듯하면서도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그 삶의 진리.

<청춘시대>는 그 진실을 20대 '여성' 청춘들의 각기 다른 양상을 통해 확인시켰다. 빚에 허덕이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윤진명은 식물인간이 된 남동생을 6년째 보살피는데 정신이 팔린 어머니가 있었고, 흔한 대학생이 그렇듯 자신보다 남과의 관계에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는 정예은은 소위 '한남충'과 같은 남자친구와의 이별로 인해 납치극까지 겪어야 했고, "왜 굳이 어렵게 살아야 하느냐"며 스폰서 '남친'에게 용돈을 받았던 강이나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선박 사고의 생존자였다.

또 대학생활의 혼란스러움과 첫연애의 설렘을 동시에 겪었던 유은재는 연이은 가족의 사망사고로 보험금을 탔던 어머니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청춘시대>의 일종의 맥거핀인 벽장 귀신을 소환했던 송지원(박은빈 분)은 '모솔'이자 학보사 기자로 유은재의 비밀을 제일 먼저 공유한 일종의 목격자였다.

박연선 작가는 스페인영화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에서 따온 것 같은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에서의 '여대생 동거기'라는 외피 안에 이렇게 쉽사리 꺼낼 수 없는 상처와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 보편의 얼굴과 고민을 담아냈다. 일종의 성장기고 당연히 열릴 결말이었지만, 흔한 성장담은 또 아니었다. 그건 유연하게 간결한, 그리고 보편성 안에 동시대성을 녹여 놓은 형식과 감각이 동시에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단언컨대, 2016년의 드라마 <청춘시대>

 <청춘시대>의 한 장면.

<청춘시대>의 한 장면. ⓒ jtbc


극 초반, 한 캐릭터가 메인 주인공이 되는 형식은 당연해 보였다. 이와 더불어 개별 캐릭터의 이야기가 서브플롯이 되고 또 한 공간에서 연결되는 이야기로 캐릭터의 성격을 잡아 나가는 형식은 유효했고 또 자연스러웠다. 더구나 1회에 던져준 이른바 '귀신 떡밥'은 캐릭터들의 전사와 직접적으로 맞물리거나(유은재의 아버지와 동생, 윤진명의 동생, 강이나의 사고) 발언자(송지원), 관중(정예은)으로 어색함 없이 연결됐다.

캐릭터들의 현재와 단단히 결부되는 로맨스 역시 유기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춘시대>는 큰 서사가 없어 한국 대중의 눈으로 보기에 심심해 보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개별 로맨스는 극을 지탱하는 흥미요소인 동시에 개별 캐릭터의 성격과 일상을 드러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로맨스 없는 20대라니, 상상할 수 없지 않은가.

여기서 <청춘시대>는 한 발 더 나아간다. 더욱이 내내 속을 썩였던 정예은의 '남친'을 처단(?)하는 15회의 소동극을 보라. 장례식과 함께 몇 달을 함께 지낸 이들이 단단히 엮여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인 동시에 감정을 단단히 연결시키는 연대의 골을 강화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다른 캐릭터들의 관계를 확인하는 보너스와 함께.

박연선 작가가 일본 소설을 드라마한 <연애시대>로 호평을 받은 것이 무려 10여년 전. 당시만 해도 '작가주의' 드라마의 가능성과 기대가 부풀어 오르던 시기였다. 하지만 <네 멋대로 해라>의 인정옥 작가는 집필을 잠정 중단했고, 노희경 작가는 <디어 마이 프렌즈>로 복귀하기까지 장르와 대중성에 함몰돼 있었으며, 김수현 작가는 너무 노쇠했다.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의 정성주 작가만이 안판석 감독과 짝일 이뤄 날카로운 필력을 뽐내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박연선 작가의 성공적인 귀환은 귀감이 될 만하다. 절치부심한 흔적이 역력한 <청춘시대>는 나이브한 지상파 드라마와 장르성에 치중한 케이블 드라마와는 다른 일상성과 형식미를 통해 '작가주의' 드라마의 필요성을 견지한 수작으로 남을 전망이다. 좋은 드라마가 으레 그렇듯, 한예리를 비롯해 류화영·한승연·박은빈·박혜수 등 젊은 배우들의 신선한 연기를 발견하는 재미 역시 확인시켜 줬다. 단언컨대, <청춘시대>는 '2016년의 드라마'로 손꼽힐 자격이 있다.

청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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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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