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작 <청춘시대>가 마무리되었다. 처음 '벨 에포크'에 들어와 낯설고 살갑지 않은 하우스메이트들 땜에 마음 고생을 하던 유은재(박혜수 분), 하지만 이제 그녀를 힘들게 했던 그 낯선 하우스 메이크들은 하룻밤을 들어오지 않은 그녀때문에 저녁도 거르고 그녀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리고 돌아온 그녀를 부등켜 안는다.

 이 시대 '청춘'들의 고뇌를 <청춘 시대>는 벨 에포크 다섯 하우스메이트들의 사연으로 담았다.

이 시대 '청춘'들의 고뇌를 <청춘 시대>는 벨 에포크 다섯 하우스메이트들의 사연으로 담았다. ⓒ jtbc


12부를 이끌었던 저마다의 사연이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들의 삶에는 '답'이 없다. 강이나(류화영 분)는 사춘기같은 장래 고민에 골똘하고, 윤진명(한예리 분)은 조금 더 노력하는 대신 방을 뺀 170만원을 가지고 정처없이 떠났다. 한량없이 가벼웠던 송지원(박은빈 분)의 삶은 타인의 무게로 인해 묵직해 졌으며, 정예은(한승연 분)은 아직 자신을 들여다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유은재를 짖눌렸던 가족사는 잠시 그녀를 떠났지만, 그건 언제라도 다시 치솟을 '휴화산'같은 것이다. 깔끔한 해피엔딩도, 처절한 비극적 결말도 아닌, 언제나 <청춘시대>를 마감했던 매리 홉킨스의 목소리처럼, 낭랑하게 맑아 처연해서 눈물이 날 것처럼, 굿바이를 전한다.

인생을 무겁지 않게 지고 갈, 용기랄까, 여유랄까

은재의 입소식처럼 시작된 벨 에포크 다섯 하우스 메이트들과의 엇물렸던 관계, 은재에 대한 '왕따'는 결국 서로서로에 대한 '오해'로 풀렸지만, 그 오해가 풀렸던 그 시간, 결국은 지원의 거짓말로 마무리된 '귀신' 소동은 저마다가 짊어진 사연의 시작이다. 술 자리 뒤 가벼운 우스개로 시작된 '귀신'에 대한 거짓말에 흔한 여자들의 호들갑대신, 천연덕스럽게 '귀신'을 들여다본 그녀들, 그리고 '죽음'과 그리 멀지 않았던 그녀들의 사연은 이 시대 젊은이들이 짊어진 사연의 상징이다.

그냥 수학여행 가다 배에 불이나서 물에 빠졌다던 이나의 사연에서, 이젠 자연스레 세월호가 연상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가진 이 시대, 그리고 88만원 세대를 넘어, 시간이 흐를 수록 숫자가 늘어만 가는 3포, 4포, 5포, 이젠 8포, 9포까지 치달은 '포기'가 당연한 것이 되어가는 젊은이들의 시대, 그 모든 사회적 부담을 방기하는 사회와 국가대신, 온전히 그 책무를 다하는 기본적 단위가 된, 하지만 그러기에 질곡이 되어가는 가족, 그리고 평범한 사랑마저 쉽지 않은 이 시대 '청춘'들의 고뇌를 <청춘 시대>는 벨 에포크 다섯 하우스메이트들의 사연으로 담았다.

길지 않은 12회를 완주하는 동안, 고등학교 시절 물에 빠져 살기 위해 가방을 가지고 다투다 물로 빠져 들어간 이나의 죄책감은 그 죽은 친구의 아버지를 통해 사하여졌고, 가족조차 외면한 채 홀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진명은 그녀를 달리게 했던 동생과 취업의 질주에서 튕겨져 나왔다. 이기적인 남친으로 인해 결국 데이트 폭력까지 겪게 된 예은은 '평범'했지만, 이제는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삶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내 아버지와의 꿈과 현실을 오가는 '악몽'에 시달렸던 은재는 비록 그것이 '거짓'일 지언정 그녀를 짖눌렀던 '가족사의 비극'에서 놓여난다.

 서로의 '사연'을 들여다 보는 '인간적 공감',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연대'를 그린다.

서로의 '사연'을 들여다 보는 '인간적 공감',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연대'를 그린다. ⓒ jtbc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드라마는 쉬이 해피엔딩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나는 열심히 살아보려 하지만, 아직 방향도 모르겠고, 열심히 사는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만 하루하루 절감할 뿐이다. 진명을 짖눌렸던 것들은 한결 헐거워졌지만, 진명은 질주하던 기차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처럼 현실감이 없다. 괜찮다던 예은은 거리의 작은 소동에도 '공포'를 복기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기꺼이 '청춘 찬가' 대신, 한 고비를 넘긴 그들에게 삶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것들임을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어쩐지 그래도 이젠 '굿바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한 고비를 넘기는 동안, 귀신과의 동거에 저마다 자신의 사연이라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그녀들은, 그 한고비를 넘기며 조금은 단단해 졌으니까.

그래서 아쉬움을 가지고 <청춘시대>를 보내는 시청자들은 비록 그녀들의 앞길이 희망찬 푸른 미래는 아닐지라도 기꺼이 그녀들을 보낼 수 있다. 아마도 어디서든 그녀들은 지난 12부에서 그랬듯이, 그렇게 자신의 삶을 무겁지 않게 짊어져 낼 것이란 믿음으로. 아마도 <청춘 시대>가 남긴 위로는 바로, 진명의 새로 돋아난 손톱이나, 은재의 손바닥에 남겨진 흉터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말간 새살이 아니라, 굳은 살같은.

송지원의 거짓말같은 '친구'들

아마도 그녀들의 앞길이 여전히 만만하거나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다섯 명의 청춘들을 보낼 수 있는 이유에는 바로 그녀들의 한결 든든해진 우정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한껏 까칠했던 그녀들, 이나는 진명을 부러워했고, 진명은 그런 이나를 이해할 수 없었고, 예은은 이나가 미웠고, 서로서로가 이해할 수 없고, 질시의 대상이었던 서로들, 심지어 은재가 자신을 '왕따'로 받아들였던 시간들, 그 시간의 커튼을 열어제친 것은 뒤늦게 나타난 송지원이다.

<청춘시대>에서 송지원은 유일하게 심각한 사연을 갖지않은, 그저 소망이라고는 거추장스러운 솔로 딱지를 떼는 것이 전부인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정작 숨겨야 할 비밀이 있었으니, 예은의 친구들이 찾아온 그날 어이없이 밝혀져 버린, 정작 그동안 송지원을 고민케 했던 바로, 그 송구라라는 실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송구라'의 거짓말은 나중에 진명이 '고맙다'고 할 만큼, 그녀를 제외한 메이트들이 자신의 삶을 '직시'하게 될 계기를 만들어 준다. '송지원의 거짓말로 인해, 자신의 삶을 불러내 고통받고, 그래서 결국 마주하게 되고, 해결할 수 밖에 없이 몰린 그녀들. 마지막 회, 아직 미흡한 부검의 과학적 성취로 인해 은재 아버지의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송지원은 결국 또 한번 거짓말을 하고만다. 부검으로 밝혀내지 않은 독극물은 없다고.

 <청춘시대>는 '환타지'나 '동화'가 아닌 청춘의 삶과 우정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청춘시대>는 '환타지'나 '동화'가 아닌 청춘의 삶과 우정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 jtbc


송지원의 거짓말처럼 '우정'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거짓말이 귀신을 불러내듯, 때론 원치 않는 것들을 상기시키고, 들먹이고 괴롭히다가도, 결국은 거짓말처럼 자신을 위로해 주는, 다섯 하우스 메이트들은 지난 12회동안 그렇게 때론 서로에게 질시하고, 심지어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웠지만, 언제나 결정적 순간에는 '편'이 되어주었다. 늘 접착제처럼 누군가와 연결되었던 송지원을 매개로 하여, 결국은 다섯이 '한 편'이 되는 시간, 그래서 결국은 함께 싸우는 그 '우정이 청춘 시대가 진짜 소망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박연선 작가가 이 다섯 명의 '편먹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저 '우정'이었을까? 그 모호한 '정'보다는, 여전히 삭막한 세상에서, 가차없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우리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서로에게 눈을 돌리고, 서로의 '사연'을 들여다 보는 '인간적 공감',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연대'가 아니겠냐고 묻는다. 서로 으르렁거리던 그녀들은 서로의 사연을 알게 되며 '인지상정'으로 서로에게 곁을 주고, 어깨를 빌려주고, 이제 함께 싸우기까지 하게 되었다. 여전히 '동상이몽'의 남자들과의 세상에서, 여성적 연대의 든든함이 <청춘 시대>의 이상향이다.

'환타지'나 '동화'가 아닌 청춘의 삶과 우정을 진솔하게 그려낸 <청춘시대>는 반가운 하지만, 역시나 좋은 드라마는 외로운 전례를 피해가지 못했다. 반응은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이 숫자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흐트러지지 않은 박연선의 귀환은 반가웠고, 박연성월드 를 청춘의 정서로 맛깔나게 살려낸 이태곤 감독이 고맙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가 막히게 수미일관했던 절묘한 음악이다. 그리고, 그녀들 다섯을 때론 미워하며 결국은 사랑하도록 만든 주연 다섯 명의 연기, 그리고 그들과 호흡했던 배우진들의 호연이 청춘시대를 오래도록 청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길 것이다.

청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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