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우완투수 송은범이 프로 데뷔 이래 최악의 경기를 치렀다. 25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한 송은범은 3.2이닝 13피안타(1피홈런) 1볼넷 4탈삼진 12실점으로 무너졌다.

12실점은 송은범의 개인 통산 최다 실점 기록이기도 했다. KBO리그 역대를 통틀어 최다 실점 공동 4위에 해당한다. 한화는 이날 NC에 1-13으로 대패했고 송은범은 시즌 8패(2승)째를 안으며 평균자책점이 종전 5.64에서 6.58로 치솟았다.

출발부터 험난했다. 송은범은 1사 1·2루에서 에릭 테임즈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은 것을 시작으로, 박석민에게 중전 적시타, 이호준의 희생플라이, 지석훈의 3점홈런을 연달아 맞고 1회에만 6실점했다. 2~3회에는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겨우 조금씩 안정감을 찾는가 싶었지만 4회들어 2사 1·2루에서 테임즈의 빗맞은 타구가 1타점 2루타로 이어지며 다시 급격히 흔들렸다. 박석민의 2타점 적시타와 이종욱의 적시타로 기어코 두자릿수 실점을 채웠다.

하지만 송은범의 투구수가 이미 100개를 향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화 벤치는 웬일인지 반응이 없었다. 결국 송은범은 지석훈에게 볼넷을 허용하고 다시 김태군에게 2타점 적시타를 추가로 내준 뒤에야 악몽 같은 마운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날 송은범의 투구수는 114개로 올 시즌 자신의 1경기 최다 투구수를 기록했다.

12실점하는 동안 움직이지 않은 한화 벤치

역투하는 송은범 지난 6월 21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한화전. 한화 선발투수 송은범이 역투하고 있다.

▲ 역투하는 송은범 지난 6월 21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한화전. 한화 선발투수 송은범이 역투하고 있다.(자료 사진) ⓒ 연합뉴스


사실 송은범은 김성근표 '퀵후크'의 대명사였다. 송은범은 올 시즌 한화 투수 중 가장 많은 22경기에서 선발로 나섰지만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된 것만 무려 15회에 이른다. 이중 투구수에 아직 여유가 있거나 점수 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도 강판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승리 투수 요건 달성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교체된 경우도 여러 차례였다. 이날 선발투수가 걷잡을 수 없이 난타당하고 경기가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사실상 송은범을 방치한 것은 김성근 감독에게는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잦은 퀵후크와 투수 혹사 논란 등으로 비판을 받았던 김성근 감독의 심경에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이날 송은범의 모습은 지난 4월 14일 두산전에서 발생했던 한화 팀 동료 송창식의 벌투 논란과 매우 흡사하다. 송창식은 당시 1회 무사 1.2루에서 선발 김민우를 대신하여 구원 등판했으나 4.1이닝 9피안타 12실점으로 난타를 당했다. 불펜투수가 5회까지 무려 90구를 던지는 동안 계속된 난타에도 불구하고 교체되지 않아 너무 가혹한 운용이 아니냐는 여론의 비난이 김성근 감독을 향했다.

더구나 김 감독이 당시 건강 이상을 이유로 경기 중간에 자리를 떠나 병원으로 간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더 커졌다.

김성근 감독은 이튿날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하여 "투수가 일찍 무너졌다고 바로 바꿨다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라며 "많이 던지면서 투구 감각을 찾으라는 의도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김성근 감독은 투수가 초반에 조금만 흔들려도 퀵후크를 남발하면서 상황에 따라 이중잣대를 적용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부상에서 돌아온 송은범을 둘러싼 '벌투 논란'

이날 송은범의 투구를 놓고 또 다시 '벌투 논란'이 벌어진 것은 그의 부상 전력 때문이다. 송은범은 지난 7월 어깨 근육 손상으로 약 한 달간의 재활을 거쳐 최근에야 복귀한 선수다. 부상전에도 올 시즌 100구 이상을 던진 것이 단 2번뿐이었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어깨는 투수 생명과 바로 직결된 부분이기에 더욱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다. 4월 벌투 논란에 휘말린 송창식 역시 부상으로 한때 야구인생이 끝날 뻔한 위기를 겪었던 선수였다.

송은범은 한 달간의 재활 이후 복귀전이었던 지난 16일 두산전에서 아웃카운트 없이 2안타 1홈런 2실점, 20일 kt전에서는 2이닝 5피안타 사사구 4개 5실점(3자책)을 기록하면서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님을 드러낸 바 있다.

투수에게 민감한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컨디션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선발 투입을 강행한 것도 모자라 난타당하는데도 100구 이상을 던지도록 방치한 것은 상식적 투수 운용과 거리가 멀다.

벌투라는 말은 사실 정식야구 용어가 아니다. 프로의 세계에서 벌투라는 개념 자체가 모욕에 가깝다. 프로 선수의 경력과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이기도 하다. 김성근 감독은 이런 방식을 투수 본인을 위해서라고 합리화할지 모르지만 1군 경기는 투수 연습용이 아니다. 경기가 넘어갔다고 판단했다면 더 일찍 젊은 투수들을 마운드에 올려 경험이라도 쌓게 해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송은범이나 송창식처럼 프로 경력이 10년을 넘고 나이도 30대를 넘긴 베테랑 투수가 과연 그런 식의 투구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엄연히 성인이고 기록으로 남는 성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 프로 선수들을 '아이'처럼 취급하는 것을 정상적인 감독의 권한 행사라고 할 수는 없다.

변하지 않을 김성근 감독, 어찌해야 하나

김성근 감독은 가뜩이나 최근 연이은 혹사 논란에 성적 부진까지 겹쳐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유망주 김민우와 필승조 권혁 등 한화 투수들의 줄부상 소식까지 이어지면서 김 감독은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

계속되는 비판 여론에 잔뜩 뿔이 난 김 감독은 "혹사의 기준이 뭐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 한화 투수들의 연이은 부상에 대해서는 자신의 무리한 기용법에 대한 책임은 쏙 빼놓고, 선수의 투구폼과 자기관리의 문제를 거론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등 여전히 혹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이 이날 송은범의 기용 방식에 대하여 앞으로 어떻게 변명할지는 이미 송창식의 전례를 통해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NC전 패배 직후 한화는 보란듯이 야간 특타를 진행하는 등 여전히 쉴 틈 없이 선수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김성근 감독이 건재한 이상 한화에서 이런 풍경은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한화는 올 시즌도 8월 들어 힘이 부쩍 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5강권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선수들은 하나둘씩 지쳐가고 부상에 쓰러지며 팀은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한화를 바라보는 팬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김성근 감독은 여전히 세상의 상식에 반하는 자신만의 야구를 고집하는 고독한 싸움을 펼치고 있다.

한화와 프로야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런 소모적인 싸움과 논란을 중단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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