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과 이수지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가만히 있어도 손수건 하나는 거뜬히 적실 땀이 나던 8월 17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개콘>의 차세대 주자 이상훈과 이수지를 만났다. ⓒ 이정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쇠퇴기일까. 20% 후반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곧 30%까지 넘보던 KBS <개그콘서트>(아래 <개콘>)는 근 2년 사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후발 주자이자 차세대 공개 코미디를 이끌 것으로 보이던 tvN <코미디 빅리그>도 마찬가지다. 최고 4%까지 올랐던 게 2% 안팎으로 낮아져 있다. 

과거의 영광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 무대는 개그 꿈나무들에겐 말 그대로 꿈의 무대다.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방송인 유재석, 박명수, 그 위로는 남희석, 신동엽 등이 대부분 공개 코미디 무대를 거치며 성장했다. 그리고 현재도 이 무대에서 차세대 개그 주자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가만히 있어도 손수건 하나는 거뜬히 적실 땀이 나던 8월 17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개콘>의 차세대 주자 이상훈(KBS 공채 26기, 1982년생)과 이수지(KBS 공채 27기, 1985년생)를 만났다. <오마이스타> 마음대로 정한 개그 유망주 2인이다. 만나자마자 일단 이 선견지명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이수지 "(진지한 표정으로)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상훈 "수지는 동의하고, (더 진지한 표정으로) 나는 과대평가 된 거다."
이수지 "그, 그럼 저도 과대평가 된 걸로…."

이상훈의 교과서적인 답변에 당황한 이수지가 손까지 내저으며 "어? 저도, 저도 과대평가로 해주세요!"라고 외쳤다. "저 진짜 과대평가로 해주셔야 해요"라며 안절부절못하는 이수지의 모습에 시작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상훈 "사실 난 운대가 좀 있었다. 코너를 잘 만난 덕이다."
이수지 "선배님들이 넣어주신 코너들이 잘 됐다. 선배님들 덕분이다."
이상훈 "네가 잘 살리니까…."

<개콘> 화제 코너들? 이렇게 탄생합니다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무비리틀텔레비전'를 공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 송왕호, 송영길.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무비리틀텔레비전'를 공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 송왕호, 송영길. ⓒ KBS


두 사람 모두 대중들에게 각인된 대표 코너가 있다. 이상훈은 동료 송영길과 함께 한 '니글니글', '감사합니다', '핵존심'. '1대1' 등이고, 이수지는 '스톡홀름 신드롬', '황해', '가족 같은' 등이다. 서로 성격과 장르가 다르지만 이들은 저마다 유행어를 만들며 프로그램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 공개 코미디하면 코너를 짤 때가 가장 궁금하다. 다들 선수들이지 않나. 이거 되겠다! 하는 느낌이 오나.
이상훈 "하하하! 그런 거 없다. 개그맨들 사이에서 '대박'이라고 난리 났던 게 오히려 무대에서 반응이 별로였던 것도 있고, 우리 사이에선 '저게 되겠어?' 했던 게 대박 나는 경우도 있다. '감사합니다'는 우리끼린 유치하다는 평을 받았는데 막상 무대에 올리자 반응이 너무 좋더라. 판단은 시청자분들만 할 수 있다. 그 결과를 보기 전엔 장담할 수 없다."

이수지 "한 달쯤 전에 박휘순, 손병철 선배랑 '오페라 가족'이라는 코너를 했었다. 가족이 오페라를 하는 콘셉트의 코너였는데, 신선하고 잘 될 거라 생각했다. 근데 첫 녹화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 방송도 안 된 채로 없어졌다(주눅)."

이상훈 "그렇게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남는 코너들도 많다. 뭐 그러면 마음에 간직하고 새 코너를 짜고 하는 거지."

- 그렇게 방송이 나가기 전에 코너가 사라지면 출연료는 어떻게 되나.
이수지 "녹화 후 통편집 되면 통상 출연료의 60~70%를 받는다. 일단 코너가 방송에 나가면 내 부분이 편집돼도 100% 출연료를 받을 수 있다. 전에는 편집되면 못 받았는데. 굉장히 좋아졌다."

이상훈 "그렇게 편집되면 쉬는 거나 마찬가지다. <개콘>을 시작하면서 한 주도 쉬지 말자가 목표였는데 6년 동안 한 달 정도 방송에 못 나갔던 거 같다."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과 이수지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과 이수지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개그맨들도 저마다 장기가 다를 텐데 아이디어에 강한 이가 있고, 그걸 잘 살리는 이가 있다고 들었다. 둘은 어느 쪽인가?
이상훈 "새 코너를 많이 짜긴 하는데, 최근 통과율이 높진 않았다. 그런 걸 보면 난 아이디어 형 인간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소재가 나왔다고 치면 100명 중 60명이 웃을 것 같다고 예상하잖나. 그러면 그거 80명이 웃는 수준으로 올리는 게 우리 몫이지."

이수지 "새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짜인 내용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보태서 연기하는 편이다. 그래서 죄인이 된 적도 많다. 선배나 동기들이 다 짜준 코너에 들어가 내 캐릭터만 방송에 나오면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보상하려고 노력한다!"

이상훈 "개그도 연기니까, 그런 분야에 강점이 있으면 좋지. 하지만 살리는 쪽이 아무래도 겉으로 노출이 많이 되니까 아이디어파 개그맨들이 빛을 못 보는 경우가 있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시청자들은 누가 아이디어를 냈고 누가 그 코너를 짰는지 모르지 않나. 사실 우리(연기파 개그맨들)는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 코너를 짜든 연기를 하든 뭔가 영감을 얻는 지점이 있을 거 같다.
이수지 "주로 누군가를 따라하는 편이다. '황해' 때는 지하철에서 어떤 분이 통화 하시는 모습을 보고 혼자 연습하다가 나오게 된 캐릭터다. '가족 같은'은 엄마와 외삼촌이 다투는 모습을 따온 거고. 관찰이 중요한 것 같다. 근데 최근에 10개 넘게 시도했는데 다 방송도 안 되고 사라져버렸네?(웃음)"

이상훈 난 (수지를 가리키며) 얘처럼 개인 캐릭터로 생각하진 않고 코너의 틀을 찾는 편이다. 주로 예능 프로나 영화, 드라마를 많이 참고한다."

- 오늘(17일) 이상훈씨 새 코너 첫 녹화라고 들었다. 방송될 자신 있는지.
이상훈 "아직 가제인데 '무비제이'라고 '무비'와 '비제이'(BJ)를 합친 말이다. 영화배우들이 개인 방송을 하는 거다. 요즘 소통하는 콘텐츠가 대세이지 않나. 시청자들의 댓글에 따라 각본이 바뀌고 달풍선을 받으면 좋아하는 구성이다. 나만의 추억으로 남지 않게 잘 해봐야지! (이날 첫 녹화한 코너는 '무비리틀텔레비전'이라는 이름으로 8월 21일 전파를 탔다.- 기자 주)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무비리틀텔레비전'를 공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 송왕호, 송영길.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무비리틀텔레비전'를 공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 송왕호, 송영길. ⓒ KBS


- 수지씨는 새 코너 '꽃쌤주의'에서 까까머리에 유도복을 입었더라. 까까머리로 무대에 서는 게 로망이었다고 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수지 "어릴 때 강호동 선배의 '소나기'나 김신영 선배의 '행님아'를 너무 재밌게 봤다. 너무 귀엽고 웃기지 않나. 개그맨이 되면 꼭 하고 싶었다. '꽃쌤주의'에서 일본 여자 역할을 맡았는데 까까머리 가발이 무서워 보이면서도 청순미 있는 캐릭터에 어울릴 것 같았다. 사실 주변에서는 말렸는데 내가 고집을 피워봤다."

이상훈 "근데 그거 내가 '트러블메이커' 할 때 썼던 가발 아냐?

이수지 "정말? 몰랐다. 어쩐지 내 머리에 딱 맞더라! (웃음)"

개그맨도 못 살렸던 코너들, 개그맨을 날게 한 코너들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훈은 그동안 맡아왔던 캐릭터 중에 '핵존심'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자신감 넘쳐하는 캐릭터. 그걸 극대화한 게 '니글니글'이었다고. ⓒ 이정민


- 두 사람 모두 그동안 여러 캐릭터를 맡아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 소화하기 어려웠던 캐릭터가 있다면.
이상훈 "'핵존심'이 내게 제일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자신감 넘쳐하는 캐릭터. 그걸 극대화한 게 '니글니글'이었다. 어려웠던 건 음 풍자? 풍자는 준비하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이수지 "'가족 같은'의 아줌마 역할이 제일 편하다.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고. 어려웠던 건 (방송도 타지 못하고 폐지된) '뮤지컬 가족'? 어떻게 웃겨야 할지 몰랐다…."

이상훈 "더러운 거, 귀여운 거, 이것저것 해보면서 경험을 쌓는 중인 것 같다. 뭔가 하나를 특출 나게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 새 코너를 하게 된 것도 '1대1'에서 풍자를 했으니 다시 정극 콩트를 하고 싶었다. 음… 여러 캐릭터를 해봤지만 아직 멋있어 보이는, 잘생긴 역할은 안 해봤다. 아마 난 안 될 거다(웃음)."

이수지 "맞다. (멋있는 역할은) 안 된다."

- 지금까지 했던 코너들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코너는?
이상훈 "내 코너들은 그냥 다 내 자식이다. 내 노력의 산물이니까. 개그에는 저작권이 없지만, 하나같이 애착이 가고 사랑스럽다. 그 중에서도 '인생 코너'라고 생각되는 건 있다. '시청률의 제왕'이다. 그 코너에서 매주 다양한 역할을 했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반대로 '왕입니다요'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애기 호위무사를 맡았는데 너무 일찍 없어졌다. 주변 반응은 참 좋았는데. 다른 코너에라도 다시 써보고 싶은 캐릭터다."

이수지 "나는 '황해'! 원래부터 목소리 연기는 자신 있었다. 내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캐릭터였다. 시청자분들이 좋아해주시니 재미도 있었고. 그때 당시는 힘들기도 했다. 조선족 분들이 항의하기도 했고. 또 '알포인트' 라는 코너는 홈쇼핑 콘셉트였는데 아쉽게 조기 종영됐다."

공개 코미디의 현 주소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과 이수지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어려운 과정을 거쳐 개그맨이 됐다.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개그맨이 되기 위해 이상훈은 공채 시험 6수를 했고, 이수지 역시 SBS 개그맨에 붙었다가 해당 프로가 폐지되면서 다시 KBS 공채 시험에 응시한 경우다. ⓒ 이정민


여기서부터는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다. 남을 웃기는 개그맨이기 이전에 이들 역시 자신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기도 하다. 두 사람 모두 어려운 과정을 거쳐 개그맨이 됐다.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개그맨이 되기 위해 이상훈은 공채 시험 6수를 했고, 이수지 역시 SBS 개그맨에 붙었다가 해당 프로가 폐지되면서 다시 KBS 공채 시험에 응시한 경우다. 게다가 최근 이상훈은 정치 풍자를 했다는 이유로 어버이연합의 고소를 당했다가 무혐의로 결론 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상훈은 조심스럽게 그간의 심경을 고백했다. 이래저래 개그맨이 설 땅이 좁아 보이는 건 분명하다.

- 사실 공개코미디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건 사실이다. 나름 불안함도 느낄 거 같다.
이상훈 "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개인방송 콘텐츠가 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찌개라면 공개코미디는 맑은 무국 같다. 아무래도 심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예능 프로그램들도 CG나 자막으로 웃음을 배가시키는데, 우리는 그냥 무대 위 연기로만 승부를 봐야하는 시스템이다.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맑은 무국을 사랑해 주시는 시청자분들도 계시니까! 물론 시청자분들이 변화를 원하시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건 개그맨 역량이라기 보단 PD님이나 더 높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분들의 청사진을 우린 믿고 가는 거다."

이수지 "뒷부분 동의한다! 멋있는 말 오빠가 다했네? 다음엔 내가 먼저 말하게 해 달라!" (웃음)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우먼 이수지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수지가 가장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는 '가족 같은'의 아줌마 역할이다.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고. 본인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캐릭터라는 점에서다. ⓒ 이정민


- 두 사람 모두 개그를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만약 개그맨이 안 됐다면 무얼 하고 있을까. 다른 일을 하는 두 분 모습이 상상이 안 간다.
이수지 "우와. 어제 회의하면서 휘순 선배가 '너희 개그맨 안 됐으면 뭐 하고 있을 것 같냐' 물어봤었는데! 내 장기를 살릴 수 있는 직업이 뭘지 생각해봤다. 음… 콜센터 직원? 얼굴이 예뻤다면 백화점에서 안내해주시는 분? 근데 차분히 앉아 종일 고객 응대하는 거 진짜 못 할 것 같더라. SBS <웃찾사>가 없어졌을 때 동네 근처에서 백화점을 짓고 있었다. 엄마가 '백화점 생기면 일자리가 있을 테니 거기 취직이나 하라'고 해서 정말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다. 근데 매년 3월이던 KBS 개그맨 공채가 그 해에만 12월로 당겨졌었다. 백화점 완공 전에 합격해 개그맨이 됐지! 천만다행이었다."

이상훈 "난 원래 물리치료사였으니 계속 그걸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근데 평생 후회했을 것 같다. 내 인생 가장 큰 전환점이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고 개그맨 시험을 준비한 거다. 가끔 그때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데 아찔하다. 개그맨 시험에 합격 못했다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환자분들을 치료하면서 웃겨드리고 있었겠지."

이수지 "나도 뭐가 됐든 웃음을 드리는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망가져서 웃음을 주는 일 자체가 좋다. 분위기가 진지하고 가라앉으면 못 참겠더라. 내가 너무 소극적 성격이라 오히려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망가진다. 난 사실 정말 낯가리는 천상 여자다."

이상훈 "(정색하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개그맨에게 재갈 물리는 사회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훈은 정치 풍자를 했다는 이유로 어버이연합의 고소를 당했다가 최근 무혐의로 결론 났다. 이상훈은 고소를 겪으면서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무대 공포증이 생겨 엔지도 수없이 냈단다. ⓒ 이정민


-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1대1'에서 어버이연합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다. 이에 대한 질문을 안 할 수는 없을 거 같다. '1대1' 폐지 후 외압논란도 있었고.
이상훈 "내가 생각보다 여리다. 멘탈도 약하고. '1대1'을 총 5개월 정도 했는데, 두 달 째에 고소당했다. 이후에 무대에서 실수를 너무 많이 하는 날 발견했다. 멘탈을 못 잡은 거다. 6년 간 개그 하면서 이제 막 무대에서 놀 줄 안다고 자부하던 때였다. 그런데 실수를 계속 하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수 백 번 외우고 간 대사도 리허설 땐 안 틀리다가 무대에만 오르면 생각이 안 나더라. 시사 분야 공부가 어려운 건 둘째였다. 프로 개그맨이 엔지를 연발하다니 나를 위해서라도 코너를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것만큼 어떤 압박(?) 그런 건 없었다. 내가 그냥 무대 위에서 떨고 있더라. 그래서 시사 풍자하시는 분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비하면 난…. 부족한 사람이었다.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 그렇게까지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 외압 논란은 전혀 사실이 아닌 건가.
이상훈 "사실 고소당하고 얼마 안 지났을 때, 제작진에게 내가 먼저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리고 몇 달을 더 한 거다. 아이디어를 내기는커녕 무대에서 대사조차 안 되는데 힘들더라. 경찰서도 가야했고, 재판 준비도 해야 했다. 그 코너를 좋아해주신 분들이 많았지만 내가 그 정도 그릇밖에 안 됐던 거지."

이상훈이 담담하게 심경을 전하는 동안, 옆에서 듣고 있던 이수지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니(이상훈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며 이수지는 "오빠가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 개그맨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두 사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상훈 "노인 복지에 관심이 많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랑 많이 받고 자랐거든. 돌아가시고 나서 거리에서 할머니만 보면 눈물 나고 짠하고 그랬다. 물리치료사 할 때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치료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 아내도 물리치료사인데, 자리 잡으면 함께 치료복지 노인복지 이런 거 하고 싶다. 더 유명해지면 내 유명세를 이용해서 더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겠지. 이런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니는데 자꾸 말 하는 이유는 이래야 내 말에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수지 "진짜 멋있는 것 같다. 나는 좋은 고기집이나 하나 낼까? 내가 다 먹겠네. 하하하."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과 이수지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과 이수지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이상훈 명예훼손 '무혐의' 결론
두 사람은 <개콘> 리허설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23일. 드디어 오래도록 그를 힘들게 했던, 어버이연합 명예훼손 고소건이 무혐의로 결론 났다. 이상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좋은 소식 들었다. 인터뷰 때 그간의 마음고생이 느껴져 걱정 많이 했다.
이상훈 "인터뷰 전에 검찰에서 무혐의 판결이 나왔다는데 내용이 우편으로 발송돼 늦게 확인했다. 인터뷰 당시 이미 무혐의 판결이 난 상황이었는데 몰랐다."

- 인터뷰 때 수지씨 울기까지 했다. 수지씨 외에도 고마운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이상훈 "그러게. 걔는 왜 울었을까. 하하. 가족들, 특히 아내가 너무 힘들어했었는데 한시름 놨다. 제작진분들도 걱정 많이 해주셨는데 정말 감사하고 동료들에게도 고마운 마음뿐이다."


이상훈 이수지 개그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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