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화 마운드에 비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4일 대전 넥센전을 앞두고 불펜투수 권혁이 1군에서 말소됐다. 권혁은 최근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전 고졸 2년차 투수 김민우의 어깨 부상이 뒤늦게 알려지며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또 한 번의 충격이다.

한화 투수들의 연이은 부상 소식은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사령탑 김성근 감독의 팀운영을 둘러싼 '혹사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한화는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권혁, 김민우, 안영명, 배영수, 장민재, 송은범, 윤규진, 미치 탈보트, 에스밀 로저스 등 토종과 외국인 투수들을 막론하고 많은 투수들이 돌아가며 끊임없이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김 감독의 무리한 마운드 운영과 혹사가 부상을 초래하거나 악화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권혁의 부상은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권혁은 2015년 한화 유니폼을 입은 이후 김성근식 벌떼야구의 핵심인 동시에, 혹사 논란의 중심에 항상 서 있던 선수였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에 부임한 이후, 팀은 물론이고 리그를 통틀어도 권혁보다 더 많은 이닝과 투구수를 소화한 불펜투수는 없다. 권혁은 혹사와 투혼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겉으로 드러나는 기록 이상의 활약으로 지난 일 년 반 동안 한화 마운드를 지탱한 든든한 수호신이었다.

우려했던 권혁의 부상, 현실이 됐다

 리그 불펜투수 중 경기수, 이닝 1위 권혁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한화 투수 권혁.(자료 사진) ⓒ 한화 이글스


물론 많은 야구인과 팬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권혁의 이러한 무리한 기용법이 언젠가 큰 탈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과 그의 야구를 옹호하던 이들은 권혁의 투혼을 오히려 '김성근식 혹사'를 정당화하는 방패막이로 악용했다. 삼성 시절 주전 경쟁에 밀려났던 권혁이 한화에서 많은 경기에 나서는 것은 '어차피 본인도 원했던 일'이라거나, '누구보다 많은 이닝을 던진 권혁도 지금껏 멀쩡한데 혹사 논란은 허구'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권혁의 부상으로 '투수의 팔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다시 한 번 증명됐다. 냉정히 말해 한화 이적 이후 권혁의 등판 기록만 보면 이제서야 탈이 난 게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권혁은 한화 이적 이후 2시즌 동안 총 144경기에서 207.1이닝을 소화하며 3752구를 던졌다. 이는 순수하게 불펜 출장만으로 달성한 기록이며 선발을 포함한 모든 한화 투수들을 통틀어도 가장 많은 출전 기록이다. 또한 같은 기간 KBO 리그 전체 모든 불펜투수 중에서 독보적인 1위다. 리그 전체 최다 이닝으로는 27위인데 이 부문 상위 30위 중 선발 등판이 없는 순수 불펜투수는 오로지 권혁 뿐이다.

권혁은 프로통산 16시즌에 걸쳐 총 787.1이닝을 소화했다. 이 중 26.3%에 해당하는 엄청난 이닝을 한화 입단 이후 단 2시즌도 안되어 몰아치기한 셈이다. 권혁은 삼성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4년 38경기 34.2이닝, 투구수 554개를 기록했고, 2011년부터 4년간은 한 번도 총 50이닝, 투구수 1000개 이상을 넘기지 않았다. 투수 분업화가 확실하던 삼성 시절만 해도 권혁은 철저한 원포인트 혹은 1이닝 전문 중간계투 요원이었다.

그런데 한화 입단 이후 보직 구분없이 전천후 역할을 소화하며 첫 해부터 이닝 소화와 투구량이 단숨에 3~4배로 폭증했다. 권혁은 입단 첫해인 2015년에만 112이닝을 소화했고 올해도 부상 전까지 무려 95.1이닝을 소화하며 송창식(97.2이닝)에 이어 한화 투수 중 최다이닝 2위다. 한화는 권혁-송창식 등 불펜투수가 선발을 제치고 올 시즌 팀내 최다이닝 1·2위를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구단이기도 하다.

여기에 권혁은 3연투 이상의 빈번한 연투를 하거나 한 번 마운드에 올라 2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필승조·추격조 구분 없이 지고 있는 상황이나 큰 점수 차에서도 마운드에 오르는 경우가 유독 빈번했다. 30대를 넘긴 고참급이 아닌, 젊은 투수라도 해도 이런 식의 투수 운용을 반복하면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유독 잦은 한화 투수들의 부상 릴레이

 김민우는 수술과 재활사이에서 고민을 하고있어 복귀 날이 불투명한 상태다.

어깨 부상으로 이탈한 한화 투수 김민우. ⓒ 한화이글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권혁의 혹사는 현재의 한화 마운드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올 시즌 한화에서 부상으로 퇴출된 외국인 투수 에스밀 로저스를 보자. 그는 한국무대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주로 불펜에서 짧은 이닝을 던지던 투수였다. 그런데 지난 시즌 후반 이후 한화에 입단한 이후 선발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며 올 시즌까지 불과 16경기 만에 1731개(경기당 평균 108.1개)의 공을 던졌다. 같은 기간만 놓고 봤을 때 로저스보다 더 많은 공을 던진 선발 투수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올 시즌에는 봄 추위가 강타한 고치 스프링캠프에서부터 팔꿈치 부상으로 장기간의 재활을 거쳐야했음에도 복귀하자마자 4경기 연속 100구 이상을 던졌다. 4일 휴식 이후 등판한 것만 3회였고, 다시 부상이 악화되기 직전 마지막 등판이던 5월 29일 롯데전에서는 9이닝을 완투하며 무려 127구를 던지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로저스의 자기관리와 태업 의혹 등을 제기하며 선수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입단 때부터 선수의 특성이나 부상 전력을 감안한 신중한 관리와는 전혀 거리가 먼 막무가내 기용 방식부터 문제가 있었다.

또한 최근 어깨부상을 당한 김민우는 지난해  36경기에서 70이닝을 던지며 1승 3패 방어율 5.14를 기록했다. 하지만 2군 등판까지 합치면 김민우의 총 투구이닝은 88.1이닝으로 늘어난다. 올 시즌에는 5경기에서 9.2이닝 동안 승리 없이 3패, 자책점 15.83만을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 않은 불펜에서의 불규칙한 연습투구량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전에서는 상황에 따라 선발로 투입되거나 다시 불펜에서 등판하는 등 보직이 오락가락했고 수시로 1·2군을 오르내리는 일도 잦았다. 체계적으로 관리·육성해야할 어린 투수의 기용법에 대한 원칙이나 기준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이밖에도 지난해 불펜에서 선발로 전업하여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안영명은 1주에 3회 선발등판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스윙맨 심수창은 지난 17일부터 5일 연속 연투를 하기도 했다. 한화는 올 시즌 60이닝 이상을 소화한 불펜 투수만 6명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다.

선발투수의 휴식일 당겨쓰기 등판이나, 불펜 겸업, 보직 파괴 등은 김성근 부임 이후 한화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또한 선수를 점검하거나 훈련시킬 때 한계투구수에 대한 고려 없이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김성근 감독의 투수조련 방식도 투수들의 팔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과거 김 감독이 이끌었던 SK나 쌍방울, 고양 원더스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KBO는 물론이고 현대 야구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든, 오직 김성근의 팀에서만 존재하는 기형적인 야구이고 이게 바로 혹사다.

합리적인 비판에 귀 닫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김성근 감독

김성근 "오늘도 안되네"  지난 10일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와 한화 경기. 3회말 동점을 내준 한화 김성근 감독이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한화 이글스를 이끌고 있는 김성근 감독.(자료 사진) ⓒ 연합뉴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팬들과 언론의 합리적인 비판에도 끊임 없는 변명과 책임 회피로 자기 합리화에만 열중하고 있는 김 감독의 태도다.

그는 최근 팬들과 언론의 연이은 비판에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며 "혹사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다른 팀의 사례를 걸고 넘어지며 "시즌을 치르다 보면 부상을 당하는 투수도 있다. 다른 팀도 선발로 나섰던 선수가 불펜으로 나서거나, 며칠간 연투하는 일이 있다. 근데 우리만 혹사 논란이 나온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과거에도 외부의 정당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해명 없이 항상 '경기수가 늘어난 한국야구 구조적 문제'라거나 '그 정도가 힘들다는 선수는 프로도 아니다', 혹은 '혹사는 우리만 하나'와 같은 교묘한 물타기와 책임회피로 일관했다.

물론 다른 팀도 일정 부분 투수들의 무리한 기용이나 부상은 존재한다. 하지만 김 감독과는 혹사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 인식에서부터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지난해 한현희·조상우의 혹사로 인한 부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스스로도 문제점을 인정하고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는 젊은 투수들로 세대교체를 단행했음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선수관리에 있어서도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치열한 가을야구 경쟁을 펼치고 있는 LG 양상문 감독이나 하위권 추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삼성 류중일 감독 등도 1승이 아쉬운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투수 분업화나 휴식일 보장에 있어서만큼은 최대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선발투수의 당겨쓰기나 불펜 투입 등이 다른 구단에는 1년에 어쩌다 몇 번 정도라면, 한화에서는 그야말로 일상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식의 투수운영을 김성근 감독처럼 '상습적'이거나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야구와 자신의 팀을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승리하더라도 이런 식의 선수기용을 용납하지 않는다.

선수의 부상이나 혹사 논란을 대하는 김성근 감독의 인식과 태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감독의 고유권한이나 조직의 성과라는 대의를 방패삼아 장기판의 말처럼 구성원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발상은, 과거 개발독재 시대 혹은 후진국에서나 통할 법한 시대착오적인 리더십이다.

설사 이런 방식으로 성과를 낸다고 할지라도 문제인데 한화의 성적도 밑바닥 수준이다. 김성근 리더십의 '어두운 민낯'이 한화의 추락과 더불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야구철학과 화석화된 신념을 지키는 데 집착하는 김성근 개인의 '정신 승리'를 위하여 한화 야구와 선수들이 과연 어디까지 소모당해야 하는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또 감독의 전횡을 제대로 제어하거나 관리하지도 못하는 한화 구단의 무능함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성근 감독이 아직도 혹사의 기준을 모르겠다면 바로 거울을 보면 된다. 김성근의 야구 자체가 바로 혹사의 기준이자 교과서다. 선수 보호나 관리에 대한 원칙도 기준도 없이 야구인생을 담보로 선수들을 소모품처럼 내몰고, 그것을 팀을 위한 선택이라고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혹사다. 한화,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를 위해서라도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자신의 야구를 성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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