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을 마친 한국 스포츠가 '성장통'을 앓고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9개를 획득하며 종합 8위에 올랐다. 하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다시 한 자릿수 금메달로 떨어졌다며 구기 종목과 기초 종목에 대한 과감한 혁신과 투자가 절실하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특정 선수에게 집중된 과도한 조롱과 비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더 나아가 금메달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선진국들처럼 소수의 엘리트 체육에서 벗어나 생활 체육 확대에 집중하자는 호소도 있다. 리우 올림픽에서 중국을 제치고 종합 2위에 오른 영국, 금메달 12개를 따내며 종합 6위에 오른 일본의 돌풍은 생활 체육의 저력이며, 엘리트 체육의 시대는 저물었다는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분석이다.

일본·영국은 왜 엘리트 체육으로 돌아갔나?

 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800미터 계영에 출전한 일본 나이토 이하라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800미터 계영에 출전한 일본 나이토 이하라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은 50~60년대 패전의 아픔을 달래고 국가 부흥을 선전하기 위해 엘리트 체육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고, 이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종합순위 3위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경제호황을 누리면서 '직접 뛰고 즐기는' 생활 체육 확대가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떠올랐고, 엘리트 체육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 일본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한국과 중국에 뒤쳐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 유치에 나서면서 다시 본격적인 엘리트 체육 육성에 나섰다.

일본은 2003년 유망주 선수의 체계적인 훈련과 특별 관리를 위해 한국의 태릉선수촌과 같은 역할을 할 대규모의 국립훈련센터를 세웠다. 또한 국가의 체육정책을 별도로 총괄하는 정부 조직인 스포츠청(廳)을 신설해 엘리트 체육을 주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종목에서는 유망주의 해외 유학도 지원하고 있다. 

영국도 생활 체육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국가였다. 올림픽에 나선 국가대표도 다른 본업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로 종합 36위에 그치는 충격을 받고 엘리트 체육 강화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스포츠 복권 기금으로 막대한 재원을 마련해 유망주 육성에 쏟아부었고, 사이클과 조정 등 메달 획득을 위한 전략 종목을 골라냈다. 

영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4위, 2012년 런던 올림픽 3위로 종합순위가 급상승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자신감을 얻은 영국은 리우 올림픽을 위해 3억5000만 파운드(약 5000억 원)를 투자했다. 특히 가장 적극적으로 육성한 사이클에서 6개의 금메달을 휩쓰는 등 마침내 중국을 제치고 종합순위 2위에 오르자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물론 평가는 엇갈린다. 일본 언론이 스포츠청이 아니라 '금메달청'을 만들었다고 우려하며, 영국에서도 엘리트 체육에 대한 집중 투자가 생활 체육의 소외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또한 이들의 뿌리 깊은 생활 체육이 있었기에 엘리트 체육 투자가 더욱 큰 성과를 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엘리트 체육,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21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마라톤에서 심종섭이 결승선을 통과한 뒤 체온을 식히고 있다. 이날 심종섭은 2시간42분42초를 기록하며 138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1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마라톤에서 심종섭이 결승선을 통과한 뒤 체온을 식히고 있다. 이날 심종섭은 2시간42분42초를 기록하며 138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엘리트 체육의 문제는 엘리트 체육 그 자체가 아니다. 독재나 군부 정권이 체제의 우수성과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메달에 집착한다는 것도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고, 대부분 냉전 시대의 추억이 되었다. 리우 올림픽에서 영국이 중국을 제쳤다고 국력이 더 강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형 엘리트 체육의 문제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중고생 시절부터 사실상 공부를 포기한 채 운동에만 몰두하며 모든 퇴로를 닫은 탓에 은퇴 후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부지기수다. 또한 아무리 좋은 활약과 성적을 내고 명문대에 진학해도 '운동부는 무식하다'는 편견에 시달리는 것이 그들이다.

여기에 선수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스포츠 권력 사유화에만 몰두하는 일부 협회, 어린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멍들게 하는 파벌주의와 서열주의로 인한 폭력은 또 다른 안현수를 만들 뿐이다.

또한 생활 체육도 단순히 투자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잔디 구장과 수영장을 많이 만들어도 중고생들이 밤늦도록 입시 교육에 시달리고, 직장인들이 늦은 밤은 물론 주말도 가리지 않고 일하며 OECD 최고 수준의 근로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과연 생활 체육이 뿌리내릴 수 있을까.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태권도 남자 -68kg급 8강전에서 한국 이대훈이 요르단 아흐마드 아부가우시를 상대로 패하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태권도 남자 -68kg급 8강전에서 한국 이대훈이 요르단 아흐마드 아부가우시를 상대로 패하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결론은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조화다.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즐겨야 하는 스포츠의 또 다른 본질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미국이다. 학원 중심의 스포츠를 클럽 시스템으로 전환해서 저변을 확대하고, 학업 관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또한 생활 체육에서 두각을 나타낸 우수 선수들을 철저한 관리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세계 수준으로 성장시킨다.

선수층이 워낙 두꺼워 전 종목에서 고르게 메달을 휩쓸며 국제대회를 장악하고, 선수들은 은퇴 후 의사나 변호사도 할 수 있다. 또한 학교나 직장을 마치고 친구들이나 가족과 함께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미국이다.

일본과 영국은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공존을 위한 과도기에 있으며, 우리도 가야 할 길이다. 누구나 가까운 잔디 구장에서 공을 차면서, 태극전사의 월드컵 4강에도 환호하고 싶다. 주말이면 저렴하게 골프를 즐기며, 박인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감동도 느끼고 싶다.

과도한 성적 지상주의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금메달은 박수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패자를 죄인 취급하지도 말아야 한다. 묵묵히 땀 흘린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 못 땄다고 스스로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야겠는가.

시상대에서 승자를 목말 태운 네덜란드 스케이팅 선수 밥 데용, 패배 후 상대에게 박수 쳐주며 엄지를 치켜든 태권도 이대훈처럼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엘리트 선수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감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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