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2007년 6월이었을 것이다. 무겁고 축축했던 클럽 공기는 금세 달아올랐다. 본선을 거쳐 최종 선발 과정만 남은 밴드들이 저마다 준비한 곡을 후회 없이 선보였고, 이들과 함께 땀을 흘리던 관객들은 숨은 고수 선정 스티커를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밴드 국카스텐과의 첫 만남이었다.

친구 보러 온 공연이었다. 지금은 김기범씨로 바뀐 베이스 주자가 바로 그 친구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렁이' 등 총 세 곡을 공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객들은 크게 환호했다. 지금은 빛이 바랬지만, 당시엔 인디 밴드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던 쌈지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고수'로 국카스텐이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넌 내게 말하네. 이 길이 구원이라고. 그의 마술에 모두 눈이 멀었네!" - '더 컴'(The C.O.M)의 노래 '나침반' 중에서

첫 전국투어를 마치고 그 대미를 장식하는 21일 오후 '전국 투어 스콜 서울 앙코르' 공연, 8년이 지나 다시 만난 국카스텐은 자신들의 역사 보다 오래된 2003년의 기억을 꺼냈다. 국카스텐의 전신 '더 컴' 활동 때 부르던 노래 중 하나를 말미에 스치듯 소환했다.

하현우의 고백, "음악 하길 정말 잘했다"

  밴드 국카스텐이 21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전국투어 스콜 서울 앙코르' 공연을 가졌다. 지난 6월 부터 진행한 전국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연이었다.

음악 하길 정말 잘했다는 보컬 하현우의 고백이 울림처럼 다가왔다. 그의 말에 지난 8년을 함께 한 팬들이 열광했다. ⓒ 인터파크


단독으로 처음 진행한 전국투어였고, 그 마지막 공연이었기에 국카스텐은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을 채운 8000명의 관객을 유명 곡으로 휘어잡을 기세였다. MBC <복면가왕>에서 청중을 사로잡은 '라젠카, 세이브 어스(Lazenca, Save Us)'를 첫 곡으로 정한 것도, '봄비'와 '하여가' 등 대중에게 이미 친근한 노래를 중간중간 선보인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정작 유독 강하게 남은 건 이들의 초창기 노래들이었다. 복잡하고 장황한 말 중 진심이 스치듯 드러나듯 말이다. 강한 사운드와 박자감으로 자칫 국카스텐을 직설적 밴드라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정작 이들의 가사는 대부분 은유적이었다. 이번 공연은 정확히 국카스텐의 화법과 닮아있었다.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국카스텐을 처음 결성했을 때 마치 우린 세상에 적응 못 한 불량품 같았다, 패배주의·염세주의가 강했다"고 고백한 하현우가 본 공연에서 '파우스트'를 부른 직후 이를 다시 언급했다. 음악에 대한 이들의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음악 하길 정말 잘한 거 같습니다! 음악 하기 전에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현실에서 갖지 못하는 슬픔이 엄청났거든요. 왜 우리 집은 가난한 걸까. 왜 내 몸은 허약할까. 그리고 왜 사람을 만나도 (국카스텐 멤버들을 가리키며) 이런 사람들만 만날까. (웃음) 어쨌든 음악을 하게 됐는데요. 처음엔 마치 우린 완벽하지 않은 불량품이 된 듯했습니다. 그런데 음악만 하면 그걸 잊게 되더라고요.

우리 모두 가진 게 없어요! 그중 탑은 전규호! (웃음) 놀 것이 마땅치 않아 기타 가지고 놀고 그랬는데 이제 와선 감사해요. 그런 어려움이 없었다면 더 절실하게 음악에 뛰어들지 못했을 거니까요. 차비를 꿔서 공연하러 다니고 건설 현장서 일 마치고 클럽에 공연하러 가면 아무도 없고…. 정말 신이 있다면 남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려고 그렇게 고생을 시키신 게 아닌지. 물론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기에는, 솔직히 아직 저희 부족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사랑을 안 받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일동 웃음)"

몸에 익어버린 초심... "절대 잃을 수 없다"

 밴드 국카스텐이 21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전국투어 스콜 서울 앙코르' 공연을 가졌다. 지난 6월 부터 진행한 전국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연이었다.

국카스텐이 이날 공연에서 선보인 곡은 20곡. 장장 세 시간 동안 이들은 팬과 함께 무대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 인터파크


그간 활동에 대한 중간점검의 시간 같았다. "어려웠던 시기를 보상받는 거 같아 감사하고 그 증거가 바로 여러분"이라며 한껏 하현우가 목청을 높였다. "모두가 우리를 잊었다고 생각했을 때도 지지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국카스텐은 지난 6월 발표한 신곡 '펄스' 등을 이어갔다.

공연은 이런 방식이었다. 국카스텐은 자신들의 현재와 과거를 한 번씩 오가며 지금의 팬과 과거의 팬을 하나로 묶었다. 공연 중후반에 하현우가 언급한 "강원도 합숙 경험"은 초창기 팬들이라면 기억하는 국카스텐의 흑역사 중 하나다. 결성 초기 기타리스트 전규호의 고향인 강원도 횡성 부근에서 이들은 함께 살았다. 밤에는 실내포차를 운영하며 돈을 벌고, 낮에는 음악을 만드는 식이었다.

흑역사라 썼지만 사실 이들이 지금의 음악적 깊이를 지닐 수 있었던 게 바로 당시의 경험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뚝딱뚝딱 음악이 하나둘 완성되면 이들은 서울 홍익대 인근 클럽으로 올라와 신나게 연주하곤 했다. 공연이 끝나면 팬들과 함께 인근 호프집이나 닭갈비집에서 술잔을 기울일 만큼 소통 또한 꾸준했다.

지근거리에서 봤던 8년 전 무대 위 하현우의 표정을 기억한다. 21일 공연에선 비록 스탠딩 석이 아닌 2층 지정석의 먼 발 치였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무대 화면에 클로즈업된 하현우의 얼굴 표정이 8년 전 그때와 전혀 다름없었다고. "과거 앨범에 실린 노래를 들어보면 참 끔찍하다"고 반 농담으로 고백 아닌 고백을 했지만, 행복할 때 나오는 특유의 미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또한, 기억한다. 홍대 산울림 소극장 맞은편 중국집에서 함께 짬뽕에 소주를 마시며 음악에 대해 나눴던 설익은 대화들을. 드러머 이정길은 "의미 없어 보이지만 의미 있는 이런 먼지 같은 대화를 우리끼리 많이 나눈다"며 한창 장단을 맞추고, 말 수가 유독 적었던 전규호는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지긋이 이들을 바라보곤 했다.

  밴드 국카스텐이 21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전국투어 스콜 서울 앙코르' 공연을 가졌다. 지난 6월 부터 진행한 전국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연이었다.

2개월 간 이어진 콘서트 공연에 순간순간 지친 모습이 나오기도 했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하현우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마치 매 곡이 첫 곡인 것처럼 그는 혼신을 다했다. ⓒ 인터파크


여기까지 언급한 것들이 내가 기억하는 국카스텐 초창기 모습의 극히 일부다. 그 이후 이들이 소속사 분쟁을 겪었을 때, 활동이 잠시 뜸했을 때, 최근 들어 TV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주목받을 때까지도 특별히 애써 찾으려 하진 않았다. 어떻게든 이들은 음악을 할 사람들이었고, 그사이 난 음악과는 조금 멀어진 삶을 살고 있었으니.

다시 접한 국카스텐이 변치 않아 두근거렸다. 그리고 음악적으로 한발 더 나아가서 기뻤다. "너무나 고생했기에 초심을 잃을 수가 없다"던 하현우 특유의 익살도 반가웠다.

"건강하게 우리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지켜봅시다!"

하현우의 외침 직후 국카스텐이 들려준 곡은 바로 '만드레이크'였다. 습하고 어두워 마치 터널 속 같았던 그 클럽에서 종종 마지막으로 혹은 중간 순서로 선보이곤 했던 노래다. 그리고 이어진 <나는 가수다> '한잔의 추억'. 신구 팬들 마음 모두 훔치겠다는 이 욕심쟁이 밴드를 다시금 열렬히 응원하기로 했다. 이날 국카스텐이 부른 곡은 앙코르 세 곡까지 포함해 총 20곡. 3시간에 육박하는 공연 시간이었다.

불량품은 무슨, 이들은 애초부터 완제품이었다.

  밴드 국카스텐이 21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전국투어 스콜 서울 앙코르' 공연을 가졌다. 지난 6월 부터 진행한 전국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연이었다.

20대엔 마치 세상에 적응못한 불량품 같았다던 국카스텐은 음악에 헌신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자리에 왔다. "여전히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던 하현우의 말에서 이들의 다음 모습을 상상하게 됐다. 지금처럼 이들은 땀에 젖은 채 자신들의 노래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 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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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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