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누구나 가슴에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내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사랑했던 감독,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그런가 하면 노래 한 곡, 또는 드라마(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첫사랑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줄리는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봅니다. 사진은 영화 <플립> (2010)의 한 장면.

줄리는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봅니다. 사진은 영화 <플립> (2010)의 한 장면. ⓒ 워너 브로스 픽쳐스


소녀와 소년의 사랑이 시작됐다

그리스 신화에서 에로스는 사랑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 신화에서는 에로스를 큐피드로 부르죠. 에로스의 황금 화살을 맞으면 누구든 상대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납 화살을 맞으면 상대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지요.

제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물은 대부분 에로스의 화살에서 시작됩니다. 황금이나 납 화살에 속절없이 당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요. 누군가는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난 한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고, 누군가는 어떤 이유로 사랑에 눈을 감아버리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이 둘은 비슷한 이야기를 써 내려 가게 되곤 하는데요.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나, 사랑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이나, 어차피 둘의 이야기는 사랑을 기준으로 펼쳐질 테니까요.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을 보는 것도,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을 보는 것도, 같은 사랑 이야기라는 면에서 전 다 좋아합니다. 사랑을 극단적으로 상품화한 작품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의 본능을 자연스레 자극하죠.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거리껴지지 않으며, 비슷한 이야기를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발명된 이래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인류에게 버림받지 않은 것일 테죠.

물론 로맨틱 코미디물이라고 해서 다 가슴을 두드리는 건 아닙니다. 대개는 영화를 보는 동안에만 팝콘처럼 달콤하게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일 뿐이죠. 그리고는 영화가 끝나면 사라진 팝콘과 함께 우리의 기억에서도 조용히 지워집니다. 그러다 아주 가끔, 조금은 다른 영화를 만나게 됩니다. 사라진 팝콘과는 달리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영화. 잊은 줄 알았는데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화. 그래서 다시 또 보게 되는 영화. <플립>은 제게 그런 영화입니다.

에리 데 루카의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에서 열 살 소년은 '사랑하다'라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말하는데요. 어른들이 그 단어를 너무 과장되게 사용한다는 겁니다. 소년은 '사랑하다'란 단어 대신 '지속하다(mantenere)'란 단어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소년에게 이 단어는 "손을 잡는다는 약속, 지킨다는 약속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바로 이 영화 <플립>은 제게 어떻게 하면 사랑을 약속처럼 지속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영화였습니다.

수채화 같은 사랑의 과정 

영화 주인공은 줄리과 브라이스입니다. 둘은 일곱 살인 2학년 때 브라이스가 줄리의 맞은편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처음 만납니다. 첫 만남에서 줄리는 에로스의 황금 화살을 맞게 되고, 첫눈에 브라이스에게 눈이 휙 뒤집혀 버리고 말죠. 원작 소설과 영화의 제목이 모두 <플립>(Flipped)인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줄리의 뒤집힌 눈은 브라이스가 앞으로 오랜 시간 도망치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걸 의미하는데요. 첫 만남 때 줄리가 브라이스의 손을 콱 잡자 에로스의 납 화살이 브라이스 가슴을 뚫습니다. 이 순간 줄리를 향한 브라이스의 마음은 꼭꼭 닫혀 버립니다. 하지만 착하고 단정한 성격의 브라이스는 줄리를 과감히 내치지 못하고, 둘의 어정쩡한 관계는 8학년이 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사실 신화 속 에로스의 화살이 야속한 건 화살을 맞으면 상대를 영원히 사랑하거나 미워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반면, 현실 속 에로스의 화살은 다른 면 때문에 야속합니다. 화살을 맞은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상대의 드러난 면 중 극히 작은 일부분만을 보고 그 사람을 사랑하거나 미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놈의 화살 때문에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물은 에로스의 화살이 현실에 불러온 이런 불가결한 오해, 즉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거나 미워하게 되는 상황에서 아찔하게 시작하곤 하는데요. 이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물의 작품성은 이러한 오해가 풀리는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리고 신선하고 공감 어리게 그려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점에서 <플립>은 제게는 성공한 영화가 되는데요. 영화는 이 과정을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장면과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현명하고 따뜻한 대화를 통해 사랑스럽게 풀어냅니다.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사랑 

 브라이스에게 눈이 뒤집힌 줄리와 그런 줄리가 영 신경쓰이는 브라이스.

브라이스에게 눈이 뒤집힌 줄리와 그런 줄리가 영 신경쓰이는 브라이스. ⓒ 워너 브로스 픽쳐스




8학년이 되자 둘의 관계는 조금씩 변화합니다. 둘의 변화는 둘의 성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어느 날 소녀는 아빠와의 대화를 통해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배우게 됩니다. 브라이스의 예쁜 눈과 미소에 대해 말하는 줄리에게 아빠는 '브라이스 자체'에 대해 물으며, '전체'를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브라이스 눈과 브라이스 자체. 줄리는 처음엔 그 둘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줄리는 동네 어귀에 높이 솟아 있던 플라타너스에 우연히 오릅니다. 그리고 줄리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땅에서 보던 세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뒤로 나무 위는 줄리 차지가 되죠. 줄리는 나무 위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산들바람을 맞고, 세상의 다양한 색을 헤아리고, 구름이 수평선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부분보다 전체가 더 위대하다던 아빠의 말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제 줄리는 사람을 볼 때도 부분보다 전체를 보게 돼요. 부분은 아름다울지 모르나 전체는 부분보다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다는 걸 알게 되죠. 줄리의 눈은 브라이스에게도 향합니다. 브라이스는 부분보다 전체가 더 나은 사람일까. 브라이스 눈과 브라이스 자체. 줄리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이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줄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브라이스에게 줄리는 그저 자기를 귀찮게 하는 이웃집 아이일 뿐이었습니다. 가끔 괴짜 같은 행동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이상한 아이라고도 생각했죠. 그런 줄리를 피해 다니기만 하다 보니 그간 브라이스는 줄리의 본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부터 브라이스는 알게 됩니다. 괴짜 같아 보이기만 하던 줄리의 행동들이 실은 줄리의 비상함과 줄리만의 고유한 시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요.

브라이스의 이런 변화에는 브라이스 할아버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요. 일찍이 줄리의 특별함을 알아본 할아버지는 브라이스에게 편견을 버리고 줄리를 바라보라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죠. 누구나 살다 보면 평범한 사람이나 화려한 사람, 빛이 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 마련이라고요. 그러다가 일생에 한 번쯤,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고요. 이런 사람을 만나면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요.

할아버지의 이 말은 물론 줄리를 떠올리며 한 말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이 말은 브라이스에게 보낸 당부이기도 합니다.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을 지닌 사람은 세상 곳곳에 존재하고 있을 테지만, 아무나 이런 이들을 발견하게 되는 건 아니겠죠. 줄리가 플라타너스 위에서 세상의 다양한 면을 바라봤듯, 사람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이런 이들을 알아보고, 또 사랑하게 될 겁니다. 할아버지는 브라이스가 이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사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던 것이겠죠.

 영화에서 큰 역할을 하는 '플라타너스', 이 나무를 함께 심는 아이들.

영화에서 큰 역할을 하는 '플라타너스', 이 나무를 함께 심는 아이들. ⓒ 워너 브로스 픽쳐스


에로스의 화살은 줄리에겐 사랑을, 브라이스에겐 미움을 심어 줬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과 미움은 상대의 일부분에서 비롯되었죠. 하지만 인간이 늘 그렇듯 두 아이도 신이 정해준 운명에 쉽게 순응하진 않았습니다. 화살이 정해준 운명에 맞서 스스로 깨달은 두 아이는 일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눈을 키워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두 아이는 잠시 에로스에 장난에 걸려들었다가 비로소 이제야 처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영화 중반부 이후 줄리와 브라이스는 얄궂게도 처음과 반대의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부분보다 더 나은 전체를 이해한 줄리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을 지닌 특별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 브라이스. 우리가 지닌 작은 것들이 모이면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전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 이렇듯 처음과는 달리 조금 더 성장한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저는 사랑이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배웁니다. 사랑은, 에로스의 장난을 넘어, 나의 일부분을 넘어, 나라는 전체, 그러니까 나라는 한 개인을 오롯이 통과해야만 비로소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영화 <플립>
플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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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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