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누구나 가슴에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내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사랑했던 감독,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그런가 하면 노래 한 곡, 또는 드라마(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첫사랑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영화 <우드잡>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인생 영화를 하나 꼽아보라면, 저는 주저 없이 <우드잡>이라는 영화를 선택합니다. ⓒ 엔케이컨텐츠


'내 인생의 영화'라. 저런 거창한 타이틀을 붙일만한 영화의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평소에 좋은 영화란, 보고 난 후 그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영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 <우드잡>입니다.

영화는 <스윙 걸스> <워터 보이즈> 같은 흐뭇한 청춘 영화를 많이 만든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작품입니다.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이 원작입니다. 기생수의 주인공으로도 열연한 일본의 청춘스타 소메타니 쇼타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는 특유의 긍정성을 내뿜으며 이 영화를 빛내고 있습니다.

영화는 대학 진학에 실패한 고등학교 졸업생 히라노 유키(소메타니 쇼타 역)의 절망과 함께 시작합니다. 인생에 목표도 없이 그저 술이나 먹으며 지내던 그에게 느닷없이 '목표'라는 것이 생깁니다. 그 목표란 바로 여자. 우연히 보게 된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 전단. 그 전단의 표지모델에 반해 그는 자신의 길을 정합니다. 산림 연수원에 들어가 저 여자를 만나겠다고! 연수를 마친 후, 마침내 핸드폰도 안 터지는 가무사리 마을에서 먹고 자며 진정한 '산 사나이'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인생의 루저들을 위한 영화

 영화 <우드잡>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영화 <우드잡>의 주인공이 이 숲에 오게 된 계기는 참으로 황당하다. ⓒ 엔케이컨텐츠


저는 대학을 졸업하며 목표가 뭐냐고, 계획은 있냐고. 이런 물음이 제일 난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내년이면 서른 한살인 제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우습게 느껴지나요? 하지만 솔직한 심정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답을 못 찾았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그저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 하고, 부모가 원하니까 결혼도 하는 뭐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는 거.

그런데 최근에는 이게 맞는 생각인가 싶기도 합니다. 슬슬 친구들의 결혼소식이 들려오는 요즘엔 더 깊은 생각에 빠집니다. 나는 저러한 삶을 거부한 게 아니라, 두려워한 건 아닐지. 평범하다며 개성 없다며 삿대질했던 그 삶들조차도 감당해 낼 자신이 없는 철없는 어린아이는 아니었는지. 그런 것 같아 나 자신이 너무 싫고 원망스러워 방 속으로 숨었습니다.

2015년, 29살의 자칭 '인생 패배자'였던 저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술에 취해 방구석에서 VOD 사이트를 뒤적거렸고, 우연히 <우드잡>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계약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것에 지친 저는, 다 그만두고 무작정 서점을 서성이거나,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며 지냈습니다. 아마도 그것들이 무언가 나에게 답을 주지 않을까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목표 없이 살던 청년이 시골에서 노동의 가치를 배우며 성장해간다는 뻔하지만 재미있는 수작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긍정성이 충만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저 영화 속의 어설퍼 보이지만 활기찬 청년은 너무 멋진 삶을 살고 있는데, 현실 속의 나는 그러지 못해 보여서입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다시 세상으로 나가보자고. 저 영화도, 원작인 소설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허구라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지금 어딘가에는 저런 청춘들이 반드시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현실이지만, 집에 있기만 해서는 변하는 게 않는다는 걸 알기에, 무모한 도전을 매일 펼치고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영화 <우드잡>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처음부터 인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엔케이컨텐츠


당장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을 찾았습니다. 가구 시공기사를 찾는 공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채용조건은 간단했습니다. '건강한 신체'. 가진 건 몸뚱이 하나뿐인 저질스펙인 저에게 안성맞춤인 일이었습니다. 운동신경 제로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또 다른 한 작품의 대사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당시 재밌게 시청하던 JTBC의 <라스트>(서울역에 사는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라는 드라마였습니다. 노숙자들의 대장 격인 인물이 세상을 피해 숨어만 있는 노숙자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기비하에 빠진 노숙자들을 향해) "늬들은 세상 사람들이 다 너희를 깔본다고 생각하지? 내가 볼 때 너를 제일 깔보는 건 바로 너 자신이야!"

(건설현장 노동부터 다시 도전하는 노숙자들을 향해) "그래, 그렇게 시작하면 돼. 땀 흘려 얻은 밥 한 공기의 소중함. 그것부터 알아가면 돼."

"나중에 늙으면 일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와."

이 대사들을 만든 작가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수 있겠지만, 저는 정말 뜨끔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주인공이 다그치는 '세상과 등진 노숙자'는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대사가 저에게 하는 말 같았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용기를 내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편하게 살아온 '요즘 것들'인 저에게는 그동안 겪지 못한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의 세계였습니다. 초보자를 살살 달래며 가르치는 자비 따위는 없는, '빨리빨리'가 법칙인 곳. 군살도 빠지고, 힘든 노동을 하니 불면증도 사라졌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떳떳하게' 먹는 김밥과 햄버거도 맛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일하며, 학자금 대출을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다시 아르바이트하며 구직활동 중입니다. 이런 제가 우스우시죠? 네깟놈이 뭘 얼마나 해봤다고 이렇게도 거창하게 징징거리느냐고. 누가 뭐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늦은 나이에 겪게 된 사춘기, 저에게는 지금이 정말 중요하고 힘든 시기이거든요.

혹시 지금 잠시라도 인생에서 웅크리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영화 <우드잡>을 추천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영화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를 다시 한 번 박차고 일어나게 해준 <우드잡>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0살의 지질한 인생이, 어딘가에 무엇이든 털어놓고 싶었나 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숨지 않고, 칭얼거리지 않고, 어른답게. <우드잡>의 주인공처럼 밖에 나가 뭐라도 부딪히며 살다 보면 답이 나오겠죠? 한심한 저 주인공도 해내잖아요. 잠시 넘어져 있는 당신도 이 영화 보시고 다시 일어나시길.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영화 <우드잡>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아직도 지질한 청춘의 한 사람일뿐인 나이지만, 그래도 이 영화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 엔케이컨텐츠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영화 <우드잡>
우드잡 청춘 사춘기 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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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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