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이 불타는 여름, 공유가 주연한 <부산행>과 하정우가 주연한 <터널>로 극장가가 더욱 뜨겁다. 감독이 색깔을 입히는 대로 무슨 색이든 배어 나온다는 '백지 배우' 공유와 자신의 연기 색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역을 소화해내는 하정우의 연기 스타일이 달라서 그들의 대결이 더욱 흥미롭다. 수많은 인간 군상의 비극을 담아내야 했던 <부산행>에는 공유가, 처절한 개인의 사투를 그려낸 <터널>에는 하정우가 각각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두 남자배우는 멜로드라마를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 두 사람의 화려하고 다양한 필모그래피에서 멜로 장르를 꼽아보라면, 하정우는 <두 번째 사랑>, 공유는 <남과 여> 정도가 다라고 볼 정도이니 말이다.

하정우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추격자>나 <더 테러 라이브>에 이제 <터널>이 추가됐다면, 공유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도가니> <용의자> 그리고 <부산행>이 아닐까 싶다. (초기에 말랑한 순정만화 <커피 프린스>의 이미지를 힘겹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벗어낸 공유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두 배우가 <잠복근무>에서 함께 공연한 적이 있다는 것은 이야기 보너스!)

하정우는 <러브 픽션>이나 <멋진 하루>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한 적이 있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해 코미디이지 사랑 이야기를 진지하게 담아낸 애정물은 아니었다. 차라리 <암살>에서 살짝 맛보기로 보여준 전지현과의 감정 신이 더 멜로스러웠다. 공유의 경우엔, 멜로라고 부를 만한 <김종욱 찾기>가 있긴 하다. 그러나 격정적이면서도 처연한 사랑 이야기였던 <남과 여>에 비하면, <김종욱 찾기>는 공유를 스타덤에 올려준(그리고 족쇄를 채우기도 한) <커피 프린스>류의 순정만화에 가깝다.

두 남자 배우가 이토록 멜로드라마를 멀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각자 필모그래피로 보유하고 있는 단 한 편씩의 멜로가 주는 충격은 무척 강렬하다. 힘이 있는 시나리오, 선이 섬세한 감독, 호흡이 잘 맞는 상대 여자배우, 그리고 남성적인 남자들이 그려낼 수 있는 선이 굵은 멜로 연기가 두 사람의 두 영화에 공통으로 있다.

하정우의 멜로, <두 번째 사랑>

 영화 <두 번째 사랑>에 출연한 하정우. 그의 필모그래피 중 유일한 정통 '멜로' 작품이었다.

영화 <두 번째 사랑>에 출연한 하정우. 그의 필모그래피 중 유일한 정통 '멜로' 작품이었다. ⓒ (주)프라임엔터테인먼트


하정우가 출연한 <두 번째 사랑>의 원제는 '네버 포에버(Never Forever)'이다. 김진아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기에, 운명적 사랑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각이 돋보인다. '네버 포에버'라고 작품 제목을 내면 무슨 뜻인지 한국 관객들에게 단번에 어필하지 못할 거 같은 우려에, 한국 제목을 다르게 붙였다고 설명하는데 사실 더 헛갈린다. '결코 영원할 수 없는'이라고 직역했더라면, 하정우와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사랑의 종착이 어디인지 알고 시작할 수 있다. 이 사랑이 애초부터 비극을 잉태하고 시작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재미교포와 결혼한 소피(베라 파미가 분)는 불임으로 인해 결혼이 흔들리고 있다. 불임센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지하(하정우 분)에게 "당신 한국 남자죠?"하고 물어보고선, 한 번 잘 때마다 대가를, 그리고 임신이 되면 성공 사례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불법 체류 신분인 지하는 돈이 필요한 나머지 이 찜찜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소피와 지하는 처음에 기계적으로 아기를 갖기 위한 섹스만 주고받는 '거래'를 한다. 섹스가 끝나면 화들짝 이불을 덮는 여자와 자기 몸을 어쩌지를 못해서 당황하는 남자는 뉴욕 차이나타운 구석 낡은 방 안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여자와 남자는 나중에 서로의 상처를 보게 되면서 마음을 주고받게 된다. 남자의 서툰 영어는 여자의 상처를 보듬어주기에 충분하다. 사랑에 국경도, 언어도 필요 없다는 것은 이래서 나온 말이다. 여자가 필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인생에서 힘들다'는 걸 알아주는 마음이고, 그 말을 해 주며 위로를 건네는 손길이다. 그 마음과 손길을 주는 남자라면, 지구 어디건 심지어 남극에서 그가 왔더라도 상관없다.

 영화 <두 번째 사랑>에 출연했던 하정우. 그의 필모그래피 중 유일한 정통 '멜로' 영화이다.

각자의 목적에 따라 관계를 가졌던 두 사람. 그리고 이내, 진짜 사랑에 빠지고 만다. ⓒ (주)프라임엔터테인먼트


그들의 '두 번째 사랑'은 잘 안 된다. 아기가 생겨도 소피는 남편과 파국으로 치닫고, 아기가 있고 없고가 그녀의 결혼에서 핵심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하는 소피가 사는 집까지 어렵게 찾아가서 먼발치에서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여느 미국 중상류 집안의 화목한 아웃도어 런치 모임처럼 보이지만, 지하는 소피가 그 안에 진심으로 속해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소피의 슬픈 표정을 그만이 본다. 그러나 지하는 소피의 손을 잡고 거기서 그녀를 구출해 줄 수 없다.

영화는 굉장히 흐지부지 결말을 닫아 버린다. 그들이 만나던 방에 아주 고운 원색 커튼이 바람에 흔들린다. 회색의 낡은 방에, 여기 사랑이 한 번 피어났었다는 듯이. 이 무미건조한 세상에서 우연히, 아주 짧게 마주친 사랑이 있다가 떠났다는 듯이.

뉴욕을 무대로 하는 각자의 '두 번째 사랑'은,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면서 관계가 발전한다. 반면 핀란드에서 만난 '남과 여'는 서로만이 가진 상처를 먼저 발견하면서 불이 붙게 되고, 은밀하게 그 상처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갈구하게 된다.

공유의 멜로, <남과 여>

 공유는 전도연과 함께 영화 <남과 여>를 촬영하면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을 남기게 된다.

공유는 전도연과 함께 영화 <남과 여>를 촬영하면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을 남기게 된다. ⓒ (주)쇼박스


<남과 여>가 공개한 줄거리에 '상민(전도연 분)과 기홍(공유 분)은 핀란드에 있는 아이들의 국제학교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고 되어 있는데, 이 설명만으로는 두 사람의 운명적 조우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이 학교는 보통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아니다. 상민의 아이는 자폐증이고, 기홍의 아이는 우울증이 심하다. 상민과 기홍은 평범한 아이들과 다른 자신의 아이들을 훌륭한 교육 여건을 갖춘 핀란드의 특수학교에서 공부를 시켜보면 좀 나아질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온 부모이다. 그들은 자신들 품속을 떠나 캠프를 떠난 아이들을 먼발치에서 보려고 아이들의 캠프장이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눈발로 고립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정사를 갖게 된다.

그들의 첫 번째 정사는 조급하고 건조하다. 여자는 무력하게 늘어져 있고, 남자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여자는 자폐증인 아이를 거의 혼자 키우다시피 하고 있고, 여자의 남편은 자기가 경제적인 것은 잘 제공하고 있으니 현실에 감사하며 살자는 말로 여자의 상처를 한 번 더 헤집는다. 남자의 딸이 가진 우울증은 사실 남자의 부인에게서 대물림된 것이다. 의부증에다가 자살 충동이 있는 부인과 함께 사는 일상이 남자에겐 삶의 짐이다. 그래서 여자는 무력하고 남자는 길을 잃었다.

남자는 여자를 서울에서 다시 찾아낸다. 둘은 서울에서 좀 더 가까이 마주 선다. 마치 그들이 껴안고 온 지독한 현실과 마주치듯이. 더 가까워질수록 둘은 서로가 안고 사는 비극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럴수록 둘은 더욱 이 불륜에 빠지게 된다. 이 불륜은 치유이면서 동료애 같은 것이다. 이 세상천지에서 누구도 자신들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자신들의 아픔을 -배우자들은 이해해주긴커녕 고통을 배가시키는 존재들이고- 서로를 몰래 만나는 것으로 메운다.

 공유는 전도연과 함께 영화 <남과 여>를 촬영하면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을 남기게 된다.

그들의 사랑이 아팠던 것만큼이나, 그들의 이별 역시 아프다. ⓒ (주)쇼박스


이 영화도 끝이 처연하다. 남자가 여자의 아이를 어떻게 보듬어 주는지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여자는 남자에게 활짝 맘을 열게 된다. 여자는 남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집을 나가겠다고 말하고는 남자를 만나러 호텔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 밤 남자는 아이 때문에 갈 수가 없다. 아이는 무언가를 알아챘는지, 아빠를 꼭 껴안고 "아빠 많이 힘들지?"하고 위로를 건넨다. 남자가 그토록 갈구하고 원했을 위로를 딸이 건넨다. 그래서 남자는 그 밤 딸을 꼭 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여자에게 가고 싶은 자기 마음을 애써 누른다.

나중에 여자는 핀란드로 다시 한 번 간다. 남자를 처음 만났던 학교 앞에서 그의 딸과 아내가 함께 귀가하는 것을 본다. 남자의 행적을 찾던 여자는 길고 긴 눈 덮인 자작나무 길에서 택시를 타고 돌아가면서 자기 아이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자폐증이 심한 아이는 이상한 노래를 크게 부른다. 그 언어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여자는, "엄마도 사랑해"라고 말하며 택시를 세운 채 목 놓아 운다.

여자의 뒷모습을 보았던 남자는 차 키를 들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를 뒤쫓아 오다가 유리창 너머로 자기 딸과 눈이 마주친다. 그는 거기에 못 박혀서 있는다. 이후 가족과 함께 집으로 가면서 자작나무 길 위에 서 있는 택시를 보고, 남자는 보이지 않게 떨기 시작한다. 차를 멈추고 싶어 한다. 백미러로 택시를 자꾸 쳐다보며, 여자에게로 달려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차는 서지 않고 택시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그렇게 끝이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공유는 전도연과 함께 영화 <남과 여>를 촬영하면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을 남기게 된다.

공유의 또다른 정통 멜로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그 날이 그리 멀지 않기를 바란다. ⓒ (주)쇼박스


<두 번째 사랑>도 <남과 여>도 자신의 상처와 타인의 상처가 우연히 공감대를 형성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를 선사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고야 만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아이들 때문이다. <두 번째 사랑>은 아이를 얻기 위해 시작한다면, <남과 여>는 아이들 때문에 아파서 사랑을 시작했다가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이 두 영화를 하정우와 공유가 아닌 다른 남자 배우가 했더라면 어땠을까? 잘은 모르겠으나, 멜로를 늘 하는 남자배우가 공연했더라면 그들이 준 느낌과 분명 달랐을 것 같다. 좀 더 사랑하는 그 순간에 대한 육체적 표현이나, 욕망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정우와 공유가 연기하려고 애썼던 것은 아마도 "인간의 심연을 울리는 사랑"이었다. 폭넓은 연기 필모를 쌓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그들이었기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연기하지 않았을까. 속으로 삼키고 이별을 감내하는 남자의 연기가 그들이었기에 더 다가왔을 것 같다.

과연 두 배우는 앞으로 멜로를 또 하게 될까? 대배우 안성기가 나이 들어서도 <페어러브>를 보여줬듯이, 이 두 사람도 앞으로 또 '멜로'를 선택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일단은 두 사람이 후속작으로 선택했다는 <신과 함께>와 <밀정>에 먼저 기대를 걸어본다.

 영화 <두 번째 사랑>에 출연했던 하정우. 그의 필모그래피 중 유일한 정통 '멜로' 영화이다.

안성기가 그렇듯이, 하정우 역시 또 정통 멜로를 촬영할 것이라 믿는다. 그때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 (주)프라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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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작가, 임학박사, 연구직 공무원, 애기엄마. 쓴 책에 <착한 불륜, 해선 안 될 사랑은 없다>, <사랑, 마음을 내려 놓다>. 연구 분야는 환경친화적 임업 마케팅 및 불법 벌채 근절 제도 연구. 현재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음.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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