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 <터널>의 한 장면.

영화 <터널>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영화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고민들이 메아리친다. ⓒ (주)쇼박스


<터널>이라는 영화가 지금, 이 사회에 도착했다. 이 영화는 한 개인, 그리고 그를 놓지 않는 소수가 사회에 맞서는 재난을 다룬다. 터널 붕괴라는 재난 '이후'(영화 속에서 사회는 임의적으로 재난이 끝났다고 선언한다), 끊임없이 한 인간의 존재를 지우려는 사회와 거기에 맞서 발버둥치는 이들의 사투. 어쩌면 이 영화의 존재 의미는 이 사회가 여전히 재난을 직시할 용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이 영화 역시 마치 고개를 돌리듯, 재난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터널>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영화인가? <터널>은 우리가 흘려보낸 것들에 대한 영화이자, 차오르는 물에 관한 영화이다. 우리는 그 사건이 무슨 사건인지, 그것이 일어났을 때 사회와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적어도 영화적으로는 <괴물> 이후의 전통이었고, 근접하게로는 소설 <터널>(2013)과 영화 <터널>(2016)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터널>은 그저 일반적인 패러디다

누군가는 언론과 정부의 무능함에서 이 영화의 포인트를 찾는다. 그게 실제로 벌어진 일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영화는 실제에 대한 패러디다. 그리고 패러디는 두 종류가 있다. 날카로운 패러디는 견딜 수 없는 사회적 상처를 드러낸다. 그러나 일반적인 패러디는 그저 상실에 대한 보전이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감각에 기대어 코드화된 유머를 통해, 통쾌함을 안겨주는 '카니발' 말이다. 이때 '모순'은 단지 이 어딘가에 모순이 있다고 추측된 채로, 보자기로 덮인 것에 불과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 '포인트', 언론과 정부의 무능함이라는 소재들을 다룰 때 일반적인 패러디에 머문다. 언론과 정부 관료에 대한 가벼운 농담들. 그것은 구조의 진정한 방해물로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재난을 둘러싼 행위자들을 향한 우리의 일반적 불신과 조소에 공명한다.

실종자인 하정우를 구출한 것은 누구인가? 하정우 자신이라고 답하는 순간, 우리는 어떤 재난을 만나도 그저 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세계를 마주한다. 구조대장인 오달수의 책임감이라고 답한다면, 우리는 작은 영웅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영화가 무서운 것은 '우리', 어쩌면 관객의 은유가 재난 관련 방송의 시청자 혹은 절반이 넘게 찬성한 '구조 포기' 여론조사의 표로만 등장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재난이 일으키는 정치적 상황과 시민들의 문제를 교묘히 빠져나가고 있다.

 영화 <터널>의 한 장면.

영화 <터널>의 명장면은, 배두나가 구조를 포기하고 제2터널 공사 재개에 동의 서명을 한 후의 장면이다. ⓒ (주)쇼박스


이 영화에서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실종자의 아내인 배두나가 구조 포기 서명 뒤 방송에서 실종자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스튜디오를 나서는 장면일 것이다. 이때 배두나는 실종자에게 사회가 당신의 생명을 포기했다는 것을 전달하는 유일한 전달자가 된다. 이 공적인 죽음의 선고가 사적인 것이 되고, '선고' 이후에 나서는 배두나를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거나 무심하게 각자 할 일을 하는 직원들이 보인다. 이 장면이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떠한 죽음도 공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는 무기력한 역설이다.

이 역설적 장면은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을 증언한다. 모든 공적인 움직임은 부정됐다. 그곳에는 모든 재난을 탈정치화하고, 없던 일로 돌리려는 사회가 있다. 한 인간의 매몰에 냉소적인 사회. 그리고 그 냉소에 맞서는 '정치적인' 인간성은, 우리 보통의 시민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지는 게 오늘날의 국가다. 그런 이들은 "선동하는 외부세력"이 되어 분열을 조장할 뿐이라는 것이다.

"'터널' 안에 있는 건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외적으로 "사람이 있다"라는 말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구조대장인 오달수의 그 말이 영화 속 세계에 남은 마지막 인간성을 정치적으로 증언하기 때문이다. 구조와 배타적 관계에 있는 터널 공사와 관련된 공청회에서, 오달수는 그곳에 있는 건 사람이라고 크게 소리친다. 공청회의 정식 패널도 아니고, 무대 뒤편에 자리를 채우고 앉아 있는 자가 '감히' 말이다. 우리는 그것이 숭고한 의미를 가졌던 때를 알고 있다.

 영화 <터널>의 한 장면.

영화 <터널>의 한 장면. 오달수가 분한 구조대장은 시스템이 희생자를 버리려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 (주)쇼박스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가 남겨놓은 샛길을 발견한다. 언론이나 관료 체계 등은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로 흔히 지적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참사의 원인일까? 어쩌면 그것은 패러디의 소재로 남겨둬야 하며, 진정으로 재난에 맞서기 위해 지적해야 할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바로 그런 것들을 문제 삼을 때, 재난의 비극은 '정상적인' 체계 안에서의 '작동'의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계가 하정우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캐물어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체계 자체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이 영화가 안고 있는 진짜 대립은 오직 하나다. 인간의 구조와 신도시로 향하는 터널 공사라는 '이해'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사람인가, 개발의 경제적 이익인가? 비록 이 영화는 그 대립을 끝까지 추적하는 데는 실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대립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무기력한 세계 속에서, 왜 하정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구출되었는가? 사실 이 영화는 하정우를 결코 죽일 수 없었다. 하정우는 그저 잊혀 사망할 수 있었고(원작 소설의 결말), 구조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했을 수도 있다(클랙슨 소리 이후에 구조대원들이 도달하기까지의 긴 일수 동안 하정우의 모습은 다시 나오지 않으며, 구출 장면에서도 하정우는 마치 시체처럼 묻혀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어떤 사건에 대한 집단적 기억은 도저히 그 결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구조하지 못한 이들, 그래서 심지어 시신조차 건지지 못한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정치적 상황에서 그런 결말은 참을 수 없이 적나라한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결말을 상상해 본다면

 영화 <터널> 중 한 장면. 주인공 정수(하정우)는 귀가하던 중 터널이 무너져 차 안에 갇힌다.

영화 <터널> 중 한 장면. 주인공 정수(하정우)는 귀가하던 중 터널이 무너져 차 안에 갇힌다. ⓒ (주)쇼박스


그렇기에, 어쩌면 우리는 이 영화의 다른 편집본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영화를 하정우의 구출 모습에서 갑작스럽게 끝내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죽었다고 상상한다면, 우리는 그곳에 삶이 있었다는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곳에 죽음이 있더라도 파내려간 이(구조대장)와 자신의 존재를 잊으려는 사회에 맞서 필사적으로 그것을 증명한 이(실종자)에게 어떤 숭고함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두에게 죽음을 선고하려고 한 이들, 결국 죽음을 '성공'시킨 사회를 대비시키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코 그렇게 만들어질 수 없었다. 우리는 재난 이후의 트라우마를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으며, 재난 속에서 개인이 얻은 것은 클래식 작곡가 이름과 같은 경험이 전부다. 그 밖의 것들은 재난을 임의적으로 끝내버린 사회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는 너무나도 사회적인 영화다. 사회적인 요소를 다루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이 맴돈다. 하나의 재난 영화와 함께 영화 속 재난이 끝날 때,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영화 <터널>포스터.

영화 <터널>포스터. 중요한 영화이고, 잘 만든 영화이지만, 영화의 끝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자꾸만 입 안에 맴도는 작품이다. ⓒ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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