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를 주제로 한 방송국 다큐멘터리 팀의 인턴으로 참여했던 지인은, 서울 종로 쪽방촌에서 만난 중년 게이 이야기를 내게 전해주었다. 그는 홍석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홍석천은 우리나라에 게이 담론을 대중화한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게 일반이 생각하는 그의 '가치'다. 한데 그와 똑같은 게이의 입장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성공한 게이'가 오히려 평범한(혹은 평범한 축에도 못 드는) 게이의 사회적 입지를 더 좁혀버린다고 했다. 중년 게이는 홍석천의 사회적 가치보다, 홍석천이 실질적으로 자기 삶에 미치는 문제들에 대해 더 민감한 감수성을 갖고 있었다.

홍석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이들

홍석천, 사장님 포스!  <경리단길 홍사장>의 방송인 홍석천이 20일 오후 서울 목동 SBS사옥에서 열린 SBS < Mobidic(모비딕) > 제작발표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Mobidic(모비딕)은 Mobile(모바일)과 Dictator(지배자)의 결합어로 변화하고 있는 콘텐츠 소비 행태에 맞춰 젊은 시청자들의 니즈에 맞는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SBS가 만든 웹, 모바일 전용 브랜드다. <경리단길 홍사장>, <양세형의 숏터뷰>, <한곡만줍쇼>, <맛탐정 유난> 등의 콘텐츠가 방송될 예정이다.

방송인 홍석천. 그는 게이이지만, 동시에 최상위층에 속하는 게이이기도 하다.ⓒ 이정민


홍석천은 외모, 경제력, 사회적 입지 등의 조건이 최상위에 속하는 극소수의 게이다. 매체는 성공한 그의 삶을 세련되고 멋지게 보이게 한다. 그럴수록 동성애자가 압도적 다수의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번듯하게 설 자리를 마련하기 쉽기 때문이다. '비록 동성애자지만' 여타 능력은 이성애자보다 뛰어나고 그래서 인정받을 만하다는 논리다. 문제는 그런 논리가 오히려 대다수의 평범한 게이를 소외시켜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이의 현실은 그렇게 성공적이거나 멋있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모든 이성애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듯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다. 종로3가 쪽방촌에 거주하는 중년의 그는 게이라는 이유로 취업이 어려웠고, 결혼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성공한 게이라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하다'는 단서를 다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불편하다. 본의 아니게 그에 일조하고 있는 홍석천의 존재도 조금 거북하다.

<아가씨>를 비판하는 레즈비언들

비슷한 관점에서 박찬욱의 <아가씨>를 비판하는 시각이 있다. 영화 큐레이션 앱 '왓챠' 유저를 비롯, 일부 레즈비언들의 의견이 그렇다. 김민희와 김태리가 방울을 활용해 섹스하는 마지막 장면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두 여자의 '방울 섹스'는 그저 어여쁘게만 보이고 작위성이 심해 실제 레즈비언의 섹스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요지다.

그 장면에서 김민희와 김태리의 두 몸은 무릎을 바닥에 댄 채 서로 마주보고 있다. 거의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몸의 곡선을 카메라가 직시하는 상태에서 그녀들은 동그란 방울을 활용해 서로를 만족시켜준다. 두 몸의 움직임이 너무나 비슷한 속도와 높낮이로 균질하게 움직인다. 미학적으로 아름다울지는 모르나, 비현실적이다. 일상적 섹스는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이질감이 심할 것 같은 도구를 활용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 차원에서 존중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그런 만큼 그 장면이 남성이나 이성애자의 '레즈비언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데 불과하다는 비판적 의견 역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영화 <아가씨> 포스터. 두 배우의 베드신은 아름답다. 지금까지 본 어떤 영화의 베드신보다도.

영화 <아가씨> 포스터. 두 배우의 베드신은 아름답다. 하지만 '레즈비언'의 섹스였는지는 고찰해봐야 한다.ⓒ CJ엔터테인먼트


<아가씨>를 보며 불쾌해질 사람은 단연 코 남성일 거란 추측을 한 적이 있다. 코우즈키(조진웅)는 두 여자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는 음란 서적을 훼손당하고, 백작(하정우)은 숙희에게 성기를 쥐어 잡혀 조롱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불편함을 느낀 이들은 오히려 레즈비언이었다. 현실감에서 비롯된 감수성 차이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남자 배우가 영화에서 아무리 우스운 꼴을 당해도 현실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어지간해서는 그런 식으로 모욕당하지 않는다. 때문에 하나의 영화에 불과한 남성모욕담을 잠시 즐기면 됐던 셈이다. 본래 피해의식이나 자격지심이 없는 지점은 아무리 조롱당해도 별 타격이 없다.

그러나 레즈비언에게 이 영화는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간다. 아름답게 섹스하는 레즈비언이 일종의 '단서'로 작용할 우려가 있기에 그렇다. 그렇게 아름다운 섹스라면, 대중에게 보이고 인정받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그럴 때 레즈비언이 느끼는 불편함은 중년 게이가 홍석천을 보며 느낀 거북함과 비슷하다. 영화의 대중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인 이들에게 레즈비언의 삶이 미화됨으로써만 의미를 갖는다면? 별로 아름답지도, 성공하지도 않은 레즈비언의 삶과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물론 영화가 현실을 똑같이 모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영화가 현실의 어떤 문제들을 생각하는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아가씨>는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김민희와 김태리만큼 아름답지 않은 평범한 레즈비언을 공론의 장에서 배제할 우려에 놓여있다. 발군의 게이 캐릭터 홍석천이 성공한 게이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때, 역설적으로 다수의 평범한 게이가 설 자리는 좁아지듯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가씨>의 방울 섹스 장면을 불편해하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이들의 마음을 좀 더 성의껏 이해해보려고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때 동성애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 한 차원 더 높아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박꽃 시민기자는 현재 인권연대 청년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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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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