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프러제트>는 평범한 대중이었던 모츠 와드가 여성 참정권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함께 하는 과정을 친절하진 않지만 주요 사건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평범한 대중이었던 모츠 와드가 여성 참정권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함께 하는 과정을 친절하진 않지만 주요 사건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 UPI코리아


온라인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는 많은 사람들의 논쟁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곳이다. '여성혐오' 혹은 '여성인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동시에 메갈리아를 비방하거나 여성혐오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지곤 한다. 어떤 것이 옳든, 메갈리아가 최근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건 분명하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이 생각났다. 1860년대부터 여성들에 의해서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났다. 남성들은 이들을 무시하고 이들을 남성에 귀속된 존재정도로만 여겼다. 이후, 여성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결심하고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주도 하에 '서프러제트'라고 불리는 무력투쟁을 실시한다.

이를 다룬 영화가 바로 <서프러제트>이다. 20세기 영국의 여성 참정권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서프러제트를 이끌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아니라 가상의 인물인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분)을 등장시킨다. 여성의 참정권에 관심이 없었던 인물이 새로운 삶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며 참정권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일종의 성장형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영화, 20세기 영국의 이야기로만 끝내기에는 생각나는 사건들이 참 많다. "사건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고 말한 한 평론가의 말처럼 마치 2016년을 보고 만든 영화처럼 닮아있다.

각성하는 여성들

가상의 인물인 모드 와츠를 만들어 영화를 이끌게 했다는 건 여성 참정권 운동이 지식인이나 부유층의 의식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함께 했던 운동임을 보여준다. 또한, 이 운동이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대중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모드 와츠가 참정권 운동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하는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하진 않지만 마음을 바꾸게 되는 여러 사건을 제시함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던진다.

모드 와츠는 세탁소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여성이고, 나름의 능력을 인정받아 여성 감독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녀는 한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상사인 테일러(제프 벨 분)이 다소 부당한 업무를 요구하더라도 별말 없이 따르는 그녀에게는 아들 조지가 삶의 목적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세탁소에서 일해야 했던 그녀에게는 삶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주어진 대로 살아왔고 그것이 지금의 그녀다.

그녀뿐만 아니라 세탁소에서 일하는 동료 여성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녀들은 동료 직원이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따지지 못하며 시키는 대로 일하기만을 강요받는다. 당시 많은 여성들은 투표권만 보장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계획하고 이끌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한편, 그녀는 우연히 서프러제트가 상점에 돌을 던지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녀는 과격한 행동에 놀라지만 별다른 의식을 가지진 못한다. 그러다가 동료직원인 바이올렛이 과격한 행동을 함께하고 있음을 알고 의문을 가지게 된다. 부당한 일들을 지켜보기만 하던 그녀는 바이올렛의 증언을 들으러 참석했다가 우연히 스스로 증언을 하게 되고 정부에 요주의 인물로 찍히게 된다. 그녀는 어떻게 됐을까? 증언을 기점으로 그녀는 주변 남성들과 남편에게 부당한 일들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모드 와츠는 더욱 말보다는 행동으로 여성 참정권을 찾기 위해 계속 싸운다.

여기까지가 기본적인 흐름이다. 이 영화는 의식이 성장하는 인물인 모드 와츠를 통해 당시 권리를 외쳤던 여성들이 어떤 억압을 당했는지, 그리고 그녀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해 싸워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들의 과격한 행동을 보며 사람들은 "법을 지켜야 한다", "폭력은 희생과 죄만 만들어낸다" 등의 말을 하지만 그녀들은 되받아친다.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우리가 억압받는 걸 방관했지?"

21세기 제2의 여성 참정권 운동이 불붙었다

 방향성을 달리했음에도 똑같다고 부정하는 것은 여성혐오를 부정하고 싶은 비겁한 핑계일뿐이다. 아무리 여성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깎아내리고 싶은 사람들이 부정하더라도 결국 더욱 많은 여성들이 함께하고 남성들도 서서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두가지이다. 계속 여성들이 억압 받는 것을 방관할 것인가. 아니면 여성들과 함께 연대할 것인가.

방향성을 달리했음에도 똑같다고 부정하는 것은 여성혐오를 부정하고 싶은 비겁한 핑계일뿐이다. 아무리 여성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깎아내리고 싶은 사람들이 부정하더라도 결국 더욱 많은 여성들이 함께하고 남성들도 서서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두가지이다. 계속 여성들이 억압 받는 것을 방관할 것인가. 아니면 여성들과 함께 연대할 것인가. ⓒ UPI코리아


통쾌한 여성들의 대사가 가득한 <서프러제트>는 단지 20세기 영국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21세기 대한민국과 '메갈리아'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동안 한국에선 '된장녀', '김치녀'라는 말을 통해 여성을 남성에게 의존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게 여성혐오이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해당 단어가 전체여성을 향한 말이 아니니 김치녀, 된장녀가 아니라면 상관하지 말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또한, 반론을 제기하고 나서는 이들에겐 '김치녀', '된장녀'라는 굴레를 씌우기도 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성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꼴페미'나 '페미나치'라는 말을 붙이면서 이들을 '개념 없고 기만 센' 여자들이라 말하거나 극단적인 집단으로 폄하했다. 여자는 운전을 못한다는 의미의 '김여사'나 아이를 가진 여성들을 비하하는 '맘충' 등의 단어로 여성혐오를 계속 이어나갔다.

한국은 OECD 회원국 29개국에서 유리천장 지수가 4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남녀 임금격차는 15년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은 선동이나 허구가 아닌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는 말이다.

여성들은 온갖 범죄에도 쉽게 노출되었다. 흔히 여성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면 성추행 등의 성에 관련된 일을 당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다. 또한, 강력범죄 피해자의 80%정도가 여성일 만큼 범죄에도 취약했다.

여성들은 이를 지켜보기만 했을까? 아니다.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왔다. 하지만 '김치녀'라는 단어조차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사용되었고, 오히려 이를 반대하는 여성들은 무시 받고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당하고만 있던 여성들이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성별을 바꾼 게시물들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김치녀를 방관하던 커뮤니티에서는 '김치남'이 논란이 되자 '김치녀'와 '김치남'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여성혐오를 방관해오던 많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타자화 된 글을 보면서 여성들에 대한 타자화를 깨달았고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좋은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착하지도 않았고 순하지도 않았다. 기존 여성들에 대한 혐오적인 표현과 말투 등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남성들은 20세기 영국의 남성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메갈리아를 일베와 같은 혐오 사이트로 규정지었고 '메오후', '메퇘지' 등의 또 다른 혐오적인 표현을 만들어 공격하고 조롱하기도 했다. 게임회사 넥슨에서는 메갈리아 후원티셔츠를 입고 인증한 김자연 성우를 교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나아가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웹툰 작가들의 살생부 리스트가 돌아다니고 이들의 작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예스컷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20세기 여성들에게 폭력으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던 남성들의 충고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혐오로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충고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충고하는 이들에게 모드 와츠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가 폭력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이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선택이 다가왔다

 1860년대부터 서프러지스트(여성 참정권론자)들에 의해서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남성들은 이들을 무시하고 여성들을 남성들에게 귀속된 존재정도로만 여겼다. 이후, 여성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해야한다고 결심하고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주도하에 '서프러제트'라고 불리는 전투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1860년대부터 서프러지스트(여성 참정권론자)들에 의해서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남성들은 이들을 무시하고 여성들을 남성들에게 귀속된 존재정도로만 여겼다. 이후, 여성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해야한다고 결심하고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주도하에 '서프러제트'라고 불리는 전투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 UPI코리아


혐오에 동의한다는 말이 아니다. 미러링은 과격했지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행하던 '여성혐오'가 무엇인지 환기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당시의 여성 참정권 운동이 무력투쟁만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력투쟁이 아닌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늘려 영향력을 키우려는 운동도 존재했다. 이 두 방식이 조화를 이루었기에 여성 참정권 운동은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었고 승리할 수 있었다.

메갈리아도 마찬가지다. '똥꼬충', '게이충' 등의 발언이 나오면서 메갈리아 내부에서도 여러가지 비판적 의견들이 나왔다. 그렇게 메갈리아도 '워마드'나 '메갈리아4' 등으로 방향을 달리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워마드'나 '메갈리아4'나 시작이 같으니 모두 똑같은 메갈리아이고, 남성혐오 집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여성혐오를 부정하고 싶은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메갈리아는 자성적인 토론을 통해 나눠졌고 이는 긍정적인 변화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20세기 영국의 남성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우리에게도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았다. 방관할 것인가 아니면 연대할 것인가.


여성 메갈리아 서프러제트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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