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한 번 보고 영화 한 번 보고'. 이 영화관에선 암전이 되면 스크린이 아닌 하늘을 보게 된다. 마치 막간을 위해 깜짝쇼를 준비한듯 도심에선 보기 힘든 많은 별들이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새 영화 시작을 알리는 리더필름과 효과음이 자연스럽게 이목을 스크린 쪽으로 집중하게 한다.
<오마이스타>는 3일간의 영화제 기간 중 개막일인 5일과 6일 정동진을 찾았다.
고전과 김태용 감독의 만남
▲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작 <필름 판소리, 춘향>의 한 장면. 스크린에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상영되고, 여기에 맞춰 무대에선 소리꾼과 밴드의 공연이 진행됐다.
ⓒ 곽우신
제 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수놓은 개막작과 섹션1은 <필름 판소리, 춘향>과 <못, 함께하는> <어릿광대 매우 매우씨> <맨업> <진주머리방> <병구> 이렇게 다섯 편의 단편영화였다. <오마이스타>가 만난 해당 영화들의 면면은 어땠을까.
우선 개막작 <필름 판소리, 춘향>은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을 복원해 현대 재즈와 판소리를 덧입혀 재구성한 작품. 영화 <가족의 탄생> <만추> 등으로 잘 알려진 김태용 감독이 총연출을 맡았다.
또한 한국영상자료원 복원 사업의 결과물 중 하나라는 점과 우리가 익히 알던 배우들의 앞선 세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최은희, 고 김진규, 고 허장강, 고 이예춘, 고 도금봉 선생이 출연하는데 이예춘 선생은 배우 이덕화의 부친이며, 허장강 선생은 배우 허준호의 부친이기도 하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소재로 한 익히 익숙한 이야기지만 군데군데 코믹한 설정이 돋보인다. 특히 두 포졸 역으로 등장하는 구봉서, 김희갑의 젊었을 당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국내 코미디언 1세대에 속하는 이들의 등장은 기성 관객은 물론이고 젊은 층의 눈길까지 끌만 하다. 실제로 상영 중 춘향이 옥에 갇혀 독백하는 장면과 몽룡(김진규 분)과 방자(허장강 분)가 각각 농을 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크게 박수치며 웃는 등 호응을 보이기도 했다.
생활의 한 조각을 떼놓은 단편들
▲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1일차 5일,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개막했다. 섹션1에 포함된 영화 <못, 함께하는>의 이나연 감독이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 곽우신
곧바로 이어진 섹션1. 이나연 감독의 <못, 함께하는>을 시작으로 이문주 감독의 <어릿광대 매우매우씨>, 강유가람 감독의 <진주머리방>, 임지환 감독의 <맨업>, 그리고 형슬우 감독의 <병구>가 이어졌다. 각각의 작품이 장르적 특징과 구성의 신선함이 돋보였다.
<못, 함께하는>은 대학교 과제를 위해 카메라를 든 이나연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그리고 서로 떨어져 살고 있는 자매들을 진솔하게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따뜻하다. 영화제 현장을 찾은 이나연 감독은 "평생을 바쳐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던 엄마와의 거리 좁힘을 영화를 통해 할 수 있었다"며 남다른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강유가람 감독의 <진주머리방> 역시 자전성이 강한 작품. 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30년 된 미용실 안 풍경과 미용사의 태도를 조망하는데 상권 개발에 따른 난민 발생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을 암시하며 다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어릿광대 매우매우씨>는 민요와 우리 가락을 바탕으로 교훈적 이야기를 쉽게 풀어냈는데 애니메이션으로서 색감과 화면 구성이 발랄한 게 특징이었다. <맨업>은 원주민 아이가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스톱모션 기법으로 소개한 작품. 국내 애니메이션에서 전무하다시피 했던 스톱모션을 영화제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첫날 섹션1의 땡그랑 동전상의 주인공은 이나연 감독의 <못, 함께하는>이었다. 관객들이 가장 마음에 든 영화에 동전으로 투표하는 방식인 이 부문은 사실상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 직접 뽑는 관객상이다. 이나연 감독은 약 1500개가 넘는 동전(16만원 상당)을 받았다. 이나연 감독은 상영 후 뒤풀이 자리에서 "영화제에 아빠와 아빠의 여자 친구 분이 함께 오셨다"며 "이렇게 상을 받게 돼서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라고 힘찬 수상소감을 전했다.
조금 더 솔직해지기
▲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정동진독립영화제 자료사진 및 포스터. 정동진독립영화제 제공. ⓒ 정동진영화제
▲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식 5일,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개막했다. 인디밴드 9와 숫자들의 축하 공연과 함께 변영주·이해영 감독의 사회로 아기자기한 시작을 알렸다. <필름 판소리, 춘향>에 이어 섹션01 단편 작품 5개가 관객 앞에 공개됐다. 프로그래머의 리드 아래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된 후, 자정이 넘은 시각에 개막 행사가 끝이 났다. ⓒ 곽우신
6일 저녁에 이어진 섹션2까지 영화를 관람했을 때 출품작들은 각자가 품고 있는 고민에 보다 가까이 다가간 흔적이 돋보였다.
문소리 감독의 신작으로 주목받은 <최고의 감독>이 '예술론'에 인간미를 보탠 진솔한 작품이었고, 이옥섭-구교환 두 사람이 협업한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적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의 고민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특히 정승오 감독의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은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엄마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저마다 속내를 털어놓으며 갈등을 쌓아오다 다시 함께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을 깊이 있게 묘사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밖에 최진솔 감독의 애니메이션 <붉은 실 이야기>는 인연을 찾아 떠나는 공주의 여정을 동화적으로 처리했는데 특유의 따뜻한 색감을 뽐냈다.
영화가 전부가 아니다?정동진영화제만의 이색 문화로 꼽히는 게 바로 오찬과 해수욕이다. 영화제 기간 중 독립영화감독 및 영화인들이 직접 손님들을 위해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며 배식까지 하는 식이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 등으로 꾸준히 활동해온 윤영호, 이마리오, 박배일 감독 등은 10년 가까이 정동진을 찾아 취사반을 자처해 상징적인 존재로 꼽힌다.
6일 오후 <오마이스타>와 잠깐 만난 박배일 감독은 "주변 식당이 좀 비싸고 영화제 참여하는 사람들의 힘도 북돋을 겸 수 년 전부터 영화제 측에서 이렇게 식사를 준비한다"고 전했다. 참고로 정해진 식대는 없다. 영화제 스태프들이 박스를 들고 다니면 양껏 먹은 후 내키는 대로 밥값을 지불하면 된다.
오찬 후 잠시 휴식을 가진 뒤 정동진 인근 해수욕장에서 놀이가 이어진다. 정동진 영화제 측이 제공하는 파라솔 아래에서 자유롭게 해수욕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배우 조은지를 비롯한 여러 영화인들도 지인들과 함께 현장을 찾아 자유롭게 해수욕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간식으로 짜장면도 제공된다는 사실.
낮엔 바다로 밤엔 영화로 뛰어드는 18회 정동진영화제가 폭염에 달아오른 2016년 우리의 여름을 시원하게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