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독하게 영화 속의 메시지를 읽고,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청년의 통통 튀는 감성을 담아 표현하고 소통하겠습니다. [편집자말]
김태곤 감독이 각본, 기획, 제작으로 참여한 <족구왕>은 신선했던 영화였다. 독립영화인 <족구왕>은 누적 관객 수 4만 명을 넘으면서 독립영화에서는 나름의 성공적인 흥행을 거두었다. 탄탄한 배급사를 업고 다수의 스크린을 독점하면서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독점하는 상업영화와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지만 코믹 장르의 독립영화로서는 나름의 성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김태곤 감독이 이번에 또 다른 코미디 장르의 영화를 들고나왔다. 바로 <굿바이 싱글>이다. 주연(김혜수 분)은 갑자기 절대적인 자신의 편을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엄마가 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터무니없는 이유와 태도에 입양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고 직접 아이를 낳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결국, 주연은 돈을 주고 아이를 사서 엄마가 되겠다는 터무니없는 결심을 한다. 여기까지가 <굿바이 싱글>의 기본 스토리다. 여배우 주연의 철없는 '엄마 선언'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히 드러낸다.

전형적인 코미디 영화 

 초반 철 없는 주연의 모습과 섬세해져 등장한 마요미가 연기하는 평구(마동석 분)의 케미는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물한다.

초반 철 없는 주연의 모습과 섬세해져 등장한 마요미가 연기하는 평구(마동석 분)의 케미는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물한다. ⓒ 쇼박스


한국형 코미디 장르의 공통된 특징은 '선웃음 후감동'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많은 코미디 영화들이 초반에는 웃음을 터트리기 위해 노력하다가 클라이맥스로 감동을 들이민다. 그러고 나서 결말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식이다.

뻔한 반복이 진행되다 보니 즐겁게 웃다가도 눈물샘을 자극할만한 요소가 나오기 시작하면 '또 시작이구나'라는 식상함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코미디 장르는 감독들에게 있어 흥행하기도 어렵고 감독의 이름을 알리는 것도 쉽지 않은 장르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특히 그저 웃음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까지 전달하려면 물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감동과 메시지를 녹여내면서도 웃음을 놓치지 않아야 하니 많은 고민이 생기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김태곤 감독도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굿바이 싱글>을 만들기 전 많은 감독이 말렸다고 한다. 코미디 장르는 어렵다고. 그런데도 김태곤 감독은 '미혼모 문제'를 담아 코미디 장르에 도전했다. 결과는 코미디 장르로는 오랜만에 200만을 돌파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굿바이 싱글>이 신선한 영화는 아니다. 초반 철없는 주연의 모습과 섬세해져 등장한 마요미가 연기하는 평구(마동석 분)의 케미는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물한다. 또한, 주연의 폭탄선언이 오히려 대중들의 공감을 끌어내면서 주연이 다시 바빠질수록 단지(김현수 분)와의 갈등이 심화할 것은 예상되고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감동으로 등장할 것은 뻔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하지만, 뻔하디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김혜수란 배우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시그널> 차수현이나 <차이나타운>의 카리스마 넘치고 잔혹한 엄마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내고 철없는 주연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해낸다. 단지 철없기만 해서도 안 되었다. 주연은 자신의 말을 확실히 믿고 행할 수 있는 여성이어야 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단지 철없는 여성으로 여기고 가볍게 넘겨버렸다면 그녀의 말이 힘을 가지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김혜수란 배우는 철없는 발언에도 주변 사람들을 함께하게 만들 엉뚱한 카리스마도 가지고 있는 배우였다. 김혜수가 주연을 맡았기에 <굿바이 싱글>은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다.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를 뽑자면 대사들을 뽑고 싶다. 철없지만 마음이 가는 주연을 훌륭히 연기해 낸 김혜수의 매력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고, 나쁜 놈들을 마구 쓸어담던 강렬한 마동석에서 세심하게 임산부 옷을 준비하고 잔소리를 일삼는 모습으로 변신한 마동석의 모습도 매력적이지만 주연이 쏟아내는 대사는 하나하나가 모래 속의 진주 같다. 어린 시절 하나하나 찾으며 즐거웠던 보물찾기의 기억을 자극하듯, <굿바이 싱글>은 영화 속마음에 드는 대사를 하나씩 모아가는 재미가 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제가 세상 어디쯤 있을 애 아빠 옆에 못 앉아 있을 이유는 없죠. 제가 무슨 죄를 졌다고요."

고백하자면 <굿바이 싱글>이 던져준 웃음보다 뒤통수를 때리는 듯 던져지는 대사가 나를 이끌었다. 119분의 런닝타임은 이 대사들을 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나 통쾌한가. 미혼모 문제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참으로 불공평하다. 남자들은 때론 미혼모의 아이를 어떻게 자신의 아이라고 믿냐는 핑계를 대며 책임을 오로지 여자에게로 떠넘긴다. 그리고 자신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희망한다.

김혜수의 대사, 미혼모의 현실

 여기서 주연은 다시 한번 대사를 던진다. 이 대사는 단지와 주연을 가로막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들을 지켜본 관객들, 우리들에게 던지는 대사이기도 하다.

여기서 주연은 다시 한번 대사를 던진다. 이 대사는 단지와 주연을 가로막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들을 지켜본 관객들, 우리들에게 던지는 대사이기도 하다. ⓒ 쇼박스


홀로 남겨진 미혼모는 그럴 수가 없다. 배 속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부정할 수도 없고 낳아서 기르는 것도, 낙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보며 미혼모는 생명의 무게를 점점 더 느끼게 되고 주변에 따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한다. 그렇기에 주연의 대사들은 정말 통쾌했다. 왜 여자는 항상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고 도망쳐야 하는가. 왜 여자가 모든 피해를 보아야 하는가. 그런 물음에 대해서 주연은 당당하게 한방 쳐낸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남자는?"

주연의 말처럼 한쪽만의 잘못이 아닌데도,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왠지 죄인이 된듯하고 겁먹게 된다. 배 속의 아이가 조금씩 사람의 모습을 갖춰갈수록 진짜 엄마 단지가 느끼는 감정은 '무섭다'라는 두려움이다. 생명의 무게가 조금씩 크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단지는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주연은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팔아버리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은 아닐까?', '아이 없이 나는 내 삶을 살 수 있을까?' 등의 답을 알 수 없는 두려움.

결국, 주연의 변화와 단지의 두려움은 둘의 계획이 망가지게 한다. 그 과정에서 주연은 더욱더 자신의 편이 없음을 깨닫게 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단지는 많은 미혼모가 겪고 있을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나가고자 했던 미술대회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두려움에 떤다. 여기서 주연은 다시 한 번 대사를 던진다. 이 대사는 단지와 주연을 가로막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들을 지켜본 관객들, 우리에게 던지는 대사이기도 하다.

"무엇이 부끄러운데요? 저 안에 있는 애들이랑 무엇이 다른데요? 그냥 배만 달라요."

출산율이 낮다고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베이비박스'라는 작은 상자 속에 아이들이 이틀에 한 번꼴로 버려지고 있다. 아이를 버리는 부모를 욕하면서도 우리는 미혼모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곤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학생답지 못하게", "여자가 몸을 함부로 굴려서" 등의 날카로운 말들도 쏟아낸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함께 부모가 돼야 했을 누군가가 기억을 지우려 애쓰며 새 삶을 살겠다 결심한다. 한쪽은 기억을 지우려 하고 새 삶을 살겠다며 벗어나려 하지만 한 쪽은 온전히 따가운 시선과 날카로운 말들에 상처를 받으며 생명의 무게까지 감당하고 고민해야 하는 꼴이다.

타인을 욕할 것 없다. 많은 미혼모 문제들은 결국 성을 금기시하고 제대로 된 피임 교육을 못 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니 말이다. 또한, 미혼모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우리의 시선이 만들어낸 결과니 말이다. 도대체 어째서 여성의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피임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만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가. 생명의 무게는 미혼모만이 느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굿바이 싱글>은 주연의 대사를 통해서 통쾌히 보여주었다. 이것이 내가 <굿바이 싱글>의 전부가 주연의 대사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다.

미혼모 싱글 김혜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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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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