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SK의 경기. 한화 신성현이 7초 2사 2루에서 이용규의 유격수 앞 땅볼 때 3루에서 아웃되고 있다. 2016.7.26

지난 26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SK의 경기. 한화 신성현이 7초 2사 2루에서 이용규의 유격수 앞 땅볼 때 3루에서 아웃되고 있다. ⓒ 연합뉴스


경기 초반 큰 점수 차로 앞서고 있는 팀의 도루는 과연 비매너일까. 28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와 SK의 경기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한화가 11-0으로 크게 앞서가던 3회말 1사 1.3루에서  볼넷으로 걸어나갔던 주자 김태균이 2루 도루를 성공시켰다.

4번 타자인 김태균은 평소 도루하는 모습 자체를 1년에 한두 번 보기도 힘든 선수다. 프로 16년차이지만 통산 도루가 25개밖에 되지 않는다. 이날 도루는 김태균의 올 시즌 첫 도루 기록이었다.

하지만 김태균은 슬라이딩도 하지 않고 2루에 여유 있게 연착륙했다. 점수 차가 이미 크게 벌어진 뒤라 김태균의 도루를 예상하지 않았던 SK 측은 2루 송구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한화는 김태균의 도루 성공 이후 1점을 더 추가하며 12-0까지 점수 차를 벌렸다.

예상치 못한 김태균의 도루, 미묘해진 분위기

김태균의 도루가 나온 직후 경기장 분위기는 잠시 미묘해졌다. SK 덕아웃의 분위기는 싸늘했고 한화 홈팬들조차 박수나 환호보다는 잠시 웅성거리며 눈치를 살폈을 정도다. 일반적인 상황과 달리 보통 큰 점수 차에서 이기는 팀이 도루를 자제하는 것은 야구에서 일종의 관행으로 여겨져왔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로 갈등을 빚다가 보복성 빈볼 시비가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행히도 이 장면이 양팀의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화 주장 정근우는 이닝을 교대하면서 SK 벤치를 향하여 양해를 구하는 듯의 제스쳐를 취하기도 했다. 정근우는 SK에서 수년간 활약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다. SK도 별다른 보복성 투구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어쩌면 사소한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이 장면은 나름 의미가 있다. 국내 야구문화에서 예민한 화두가 되기 쉬운 '불문율' 문제에 관하여 양팀이 성숙한 대처를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야구에서는 종종 불문율이 선수나 팀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흔히'빠던'이라고도 부르는 배트플립 세리머니나, 큰 점수 차로 리드하는 팀의 도루, 경기 종반의 잦은 투수교체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불문율은 결국 상호 존중과 페어플레이를 위하여 존재하는 일종의 관습이지만, 불문율에 대한 과도하게 경직된 해석은 오해의 소지를 만드는 경우도 빈번했다. 요즘은 오히려 지나치게 불문율에 집착하는 것을 촌스럽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않다.

이날 김태균의 도루에서 해석의 차이가 나올 수 있는 부분은 '과연 11점차나 되는 리드에서 굳이 도루를 시도할 필요가 있었나'하는 부분이다. 야구 불문율의 관점에서 보면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는 당시 겨우 3회였고 남은 이닝에서 흐름이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김태균은 주축 선수로서 큰 점수 차에도 불구하고 팀의 승리를 위하여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점수 차가 컸다고 해서 도루 시도가 '비매너'라고는 할 수 없는 이유다.

프로야구에 진짜 필요한 불문율

최근 프로야구는 타고투저 현상이 몇 년간 계속되고 있다. 빅이닝이 속출하면서 5~6점 차 이상의 큰 리드가 한 번에 뒤집히는 게 예사다. SK가 굳이 김태균의 도루를 문제삼아 보복하지 않은 것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납득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SK는 종반 타선이 살아나며 매서운 추격전을 펼쳤다. 한화는 3회를 끝으로 더 이상 추가점을 뽑지 못했고 경기 최종점수는 12-8, 겨우 4점 차에 불과했다. 만일 한화가 초반 몇 득점에 안주하여 남은 경기를 설렁설렁하기라도 했더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앞으로 그 반대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도 반드시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화는 지난해 4월 롯데와의 경기에서 비슷한 상황에서 빈볼 파문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는 한화가 큰 점수 차로 끌려가던 입장이었고 롯데가 계속 도루를 시도하자 한화 투수들이 빈볼로 의심되는 공을 잇달아 던져 양팀간 벤치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 한화가 앞으로 혹시라도 이런 상황(이미 큰 점수 차로 끌려가는 경기에서 도루를 허용하는)을 당하는 입장이 된다면, 가장 먼저 이날 SK전의 기억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연이은 승부조작 파문 등으로 가뜩이나 야구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런 상황에서 각 팀들도 가급적 팬들 앞에서 소모적인 갈등이나 불필요한 충돌을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양팀이 이날 불문율 문제로 굳이 신경전을 피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분명한 사실은 프로에게 팬들을 위하여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불문율은 없다는 점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