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라는 같은 배경에 주인공이 의사라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SBS 드라마 <닥터스>는 20%에 가까운 시청률이 나왔고, KBS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는 5%도 안 되는 시청률로 결국 조기 종영이라는 슬픈 통보까지 받게 되었다. 대체 무엇이 이 두 드라마의 운명을 이토록 가혹하게 나뉘게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드라마 주인공들이 했던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고 슬펐던 심폐소생술 장면에서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심폐소생술, 같은 장면 다른 느낌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 티저 이미지.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의 슬픔은 다른 종류의 밀도를 지닌다. ⓒ KBS


먼저 <닥터스>의 심폐소생술 장면.

주인공 홍지용(김래원 분)이 환자 위에 올라가 열심히 심폐소생술을 한다. 그 어떤 순간보다 간절해 보인다. 그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환자는 바로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 그러나 양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둔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장면. 슬프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어쩐지 이 슬픔은 시간이 흐르면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뷰티풀 마인드>의 심폐소생술 장면.

주인공 이영오(장혁 분)가 환자 위에 올라가 열심히 심폐소생술을 한다. 가족 관계는 아니지만 홍지용만큼이나 이영오도 간절해 보인다. 그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환자는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한 번만이라도 안고 가는 것이 소망인 환자. 그 어느 때보다 이영오는 간절하게 심폐소생술을 하지만 끝내 그 환자는 숨을 거둔다. 역시 슬프고 눈물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쩐지 이 슬픔은 <닥터스>에서 느꼈던 슬픔처럼 시간이 흐른다 해도 쉽게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두 드라마 주인공 모두 똑같이 심폐소생술을 했고 환자들은 죽었고 그 장면은 슬펐다. 그러나 <닥터스>에서 느낀 슬픔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뷰티풀 마인드>에서 느낀 슬픔은 어쩐지 쉽게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 이 차이가 <닥터스>와 <뷰티풀 마인드>의 시청률 차이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을까.

<닥터스>에서 주인공 양아버지는 세상을 떴지만 주인공에게는 그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줄 양아버지와 추억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길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닥터스>는 적어도 주인공에게 양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순간을 함께 할 시간이라는 작은 소망 정도는 허용해준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이건명(허준호 분)에게 이건명의 아내가 수술에 미쳐 아들 마지막 가는 길도 함께 하지 못했다고 분노하는 장면이 나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닥터스>는 분명 시청자의 감정선을 지나치게 건드리지 않는 친절한 드라마다.

그러나 <뷰티풀 마인드>에서 죽은 환자는 자신의 아이를 단 한 번도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난다. 아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죽기 직전에 그 짧은 순간을 위로해 줄 추억조차 갖고 세상을 떠날 수가 없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가 원했던 것은 '완치'가 아니었다. 그저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단 한 번만이라도 안을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삶을 연장해달라는 것이 소망이었다.

그러나 <뷰티풀 마인드>는 그 작은 소망마저 매몰차게 내친다. 게다가 남자 환자가 죽는 순간 환자의 부인이 분만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여 사람들을 더 슬프게 만든다. 현실도 아닌 드라마에서!  그리하여 처음으로 환자를 위해 확률 낮은 수술을 하고, 환자의 생명 연장을 위해 온 정성을 기울였던 이영오가 아이를 안은 환자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기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기대를 산산이 부서뜨리고 만다. 아이 한 번 안아보겠다고 죽을 힘을 다해 버틴 환자를 아내가 분만 중인 상황에서 죽게 내버려둔 이 드라마는 확실히 시청자에 불친절한, 아니 불편한 드라마다.

<뷰티풀 마인드>는 불편한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이영오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뷰티풀 마인드> ⓒ KBS2


'같은 옷 다른 느낌'이라는 말처럼 이 두 드라마는 그렇게 '같은 심폐소생술, 다른 슬픔' 의 느낌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뷰티풀 마인드>가 주는 슬픔은 어쩐지 많이 불편하다. 드라마를 보며 무언가 위안을 받고 싶었던 시청자들에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 우리가 <닥터스>의 슬픔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건 드라마 안 슬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뷰티풀 마인드>의 슬픔은 드라마 안에서 끝낼 수 있는 슬픔의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만약 남자 환자가 아이를 안고 눈을 감았다면 우리는 슬프지만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 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소망마저 좌절되는 것을 보며 문득 '그래, 현실은 그렇지 않지'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뷰티풀 마인드>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슬픔의 성질이 그렇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뷰티풀 마인드>에서의 슬픔은 드라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드라마 속 현실 세계 밖까지 끌고 가져나와야 할 슬픔이기에 시간이 흘러도 쉽게 견뎌낼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뷰티풀 마인드>에서 환자를 통해 보여주는 슬픔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니, 무겁다.

<뷰티풀 마인드>에 나오는 또 한 명의 의사 양성은(동하 분)은 병원에서 우연히 중학교 동창을 만난다. 그리고 중학교 동창이 치료가 끝난 후 중학교 시절 훔쳐갔던 양성은의 신발을 돌려주며 훈훈하게 마무리한다. 아니, 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교 동창은 병원으로 다시 돌아온다. 피투성이가 된 채.

그리고 양성은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중학교 동창 가방 속의 컵라면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마음 한 구석 구석 저릿저릿하게 아파옴을 느낀다. 그 컵라면을 보는 순간 먹고 살려고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했던 구의역에서 희생당했던 한 젊은이가 떠오른다. 게다가 구의역 사고 희생자를 어떻게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할 수 있냐는 그 어처구니 없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며 슬픔을 넘어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전히 드라마를 보는 이 순간에도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을 대책이 잘 마련되어 있을까, 사회 어디선가 누군가 생계를 위해 그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를 떠올리며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그 외에도 대리모, 아동학대 등 <뷰티풀 마인드> 이야기에는 그렇게 드라마 안에서만 '슬픔'을 소비할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자주 나온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은 사람들에게 여가 시간이다. 말 그대로 쉬고 싶은 순간,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휴식을 방해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휴식하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을 저릿저릿하게 아프게 만드는 그런 현실의 아픔을 느끼고 싶지는 않을 터.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서도 이미 피곤한 사람들은 허구의 세계에서까지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뷰티풀 마인드>는 역시 불편한 드라마다. 드라마 안에서만 '슬픔'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여전히 '슬픔'을 느껴야 하니까.

지극히 현실적인 스토리 택한 <뷰티풀 마인드>

 <뷰티풀 마인드>에서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장혁은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 KBS 2TV


그렇다면 <뷰티풀 마인드>는 이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어떤 드라마가 인기가 있으려면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푹 빠져야 한다. 그러려면 주인공은 매력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가 현실에서 내 곁에 있기를 바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픔이 있어도 밝고 건강하게 웃는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앞에서 과거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면 어쩐지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두운 모습을 계속해서 내보이는 이영오보다는 아픔이 있지만 한없이 밝은 홍지용이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묘하게 드라마는 두 주인공을 닮아 있다. <닥터스>를 떠올리면 따뜻하고 밝은 미소가 떠오른다면 <뷰티풀 마인드>를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 가득히 무거움이 다가온다.

그렇다면 정말 <뷰티풀 마인드>가 <닥터스>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시청률이 지금보다 더 잘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가능성이 있는 방법은 하나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이런 불편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이 병원을 배경으로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냈다면 어쩌면 <닥터스> 못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가끔 농담처럼 우리나라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인공이 기자면 방송국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 의사면 병원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 교사면 학교를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를 하곤 한다. 웃자고 하는 소리이지만 어떤 배경에서든 '사랑'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사랑' 이야기가 그만큼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보장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뷰티풀 마인드>는 끝까지 그런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지도 매몰되지도 않았다. <뷰티풀 마인드>가 집중한 것은 환자를 통한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들이었다.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아플 수 있다. 그 사회의 아픈 부분을 고치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픈 부분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뷰티풀 마인드>는 우리가 그런 사회의 아픈 부분을 제대로 보고 고치도록 도와주려 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의사가 아니었을까.

그래도 여가 시간만큼은 어두운 이야기보다는 달달한 로맨스 이야기를 보고 싶다고? 그래,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렇다. 그런데 그 영화 1999년 상영되었던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던졌던 질문을 기억하고 있는가?

'빨간 약을 먹고 매트릭스 밖으로 빠져나올 것인가? 아니면 파란 약을 먹고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갈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는 파란 약을 택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주인공 네오처럼 빨간 약을 택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이들도 있어야 사회가 발전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파란 약을 택하면 사회는 언젠가 사람들에게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변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남은 2회만이라도  <뷰티풀 마인드>이라는 빨간 약을 먹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늘었으면 좋겠다.

뷰티풀 마인드 장혁 닥터스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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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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