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가당착>의 한 장면.

영화 <자가당착>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사회비판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곡사필름


영화 축제의 장이기 마련인 국제영화제 현장이지만 20회를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이 특별상영전은 좀 달랐다. 28일부터 29일까지 양일 간 진행되는 '코리아 나우' 섹션은 바로 교묘한 검열과 간섭으로 미처 관객과 만나지 못한 수작을 상영하는 행사다.

그 첫 번째로 부천시청 내 상영관과 인근 CGV에서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2009, 아래 <자가당착>)와 조성봉 감독의 <레드 헌트>(1996)가 상영됐다. 전작은 완성 이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제한상영등급을 받아 국내 개봉이 금지됐다가 5년 만인 지난해에야 소수의 관객과 만날 수 있었고, 후자는 여전히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중 <자가당착>을 선택했다. 실험 예술 영화로 잘 알려진 김곡 감독의 동생으로 영화팬들에겐 '곡사 형제'(곡사는 쌍둥이 형제인 두 사람이 설립한 창작집단 이름)로 알려진 김선 감독의 재기발랄함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게다가 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관계 당국이 법정 싸움까지 불사하며 공식 개봉을 막았는지 호기심도 일었다.

쥐를 잡는 포돌이

구성부터 독특하다. 일반적인 극영화라기 보단 짧은 도입부 콩트와 브릿지(연결) 영상, 그리고 군데군데 스톱모션(정지영상을 이용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해 코믹함과 비현실성을 한껏 강조한 'B급 풍자물'이었다. 또한 대사를 직접 던지지 않고 각종 게임과 영상물에서 추출한 효과음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처리한 게 특징이다.

영화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최고의원을 연상케 하는 각종 상징이 등장한다. 한 마리에서 수 마리로 늘어나는 각종 쥐들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임 대통령의 사진들이 번갈아 등장하며 주인공 포돌이(경찰의 마스코트)를 괴롭히거나 압박한다. 또 보수 정권 하에 발생한 각종 비극들과 비상식적 사건들, 이를테면 용산 참사, 사대강 사업 등을 표현하며 은연중에 비판한다.

곤봉을 든 포돌이는 집안에서 쥐를 때려잡다가도 아파트 이웃들이 외부에서 시끄럽다고 항의할 땐 물세례를 퍼붓는다. 영락없이 촛불집회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가 쥐에게 일격을 당하고, 이웃들의 합심에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방 안에 틀어박힌 채 기도만 올리는 여인을 향해 애처롭게 "오마니!"를 외치지만 박근혜의 탈을 쓴 이 여인은 전혀 그 아픔을 공감하지 못한 채 방관만 한다. 영화 내엔 이런 식의 서로 다른 상징이 반복된다.

영화상영 직후 김선 감독의 GV(관객과의 대화)가 예정돼 있었으나 사정에 의해 취소됐다. 이에 <오마이스타>는 감독과 유선으로 질의응답을 주고 받았다. 아래는 김선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영상물 등급심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과없이 재심의만 언급한 영등위의 입장에 대해 비판하는 <자가당착> 김선 감독

<자가당착>을 연출한 김선 감독.ⓒ 성하훈


죽은 정치인들의 사회

-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게 각종 효과다. 스톱모션과 인트로 및 브릿지 영상 등이 독특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유가 당연히 있다. 옛날 영화처럼 보이기 위해 필름을 콘크리트에 문질렀다. 내가 좋아하는 스톱모션 감독들이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옛날 영화 느낌을 내려한 이유는 정치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설쳐대는 걸 보이고 싶어서였다. 영화 자체는 당시 이명박 정권을 묘사하고 재현하고 있다. 그때의 비극이 현재진행 중이지만 동시에 과거로부터 진행돼 오던 것들임을 말하고 싶었다."

- 5년 간 법정 다툼을 하다 결국 최종심에서 이겨 결국 지난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개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천영화제에 상영됐는데 심정이 남다를 거 같다.
"첫 번째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게 한창 해외영화제를 돌 때였다. 정치적으로는 박근혜 당시 의원이 한나라당의 유력한 경선 후보로 나올 즈음이었다. 심의를 받으면 왜 이런 등급을 받았는지 적혀있는 사유서가 있다. 거기에 적힌 말 중 지금까지 기억나는 게 있는데 바로 '이 영화는 국가원수를 살해하려는 살인무기 같은 영화다'라는 대목이다."

- 살인무기? 
"그렇다. 재밌는 건 박근혜는 당시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영화에 이명박을 살해하거나 음해하려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공공기관이 정치적 판타지를 갖고 미리 재단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쥐가 등장하긴 하는데 관객들도 '저 쥐들은 착한 편이냐 나쁜 편이냐'를 가장 많이 묻는다. 그때마다 난 '자가당착적이다' 라고 답한다. 촛불집회 때 사람들이 엄청나게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았나. 나쁜 상상이긴 하지만 그때 난 청와대에는 거대한 쥐 한 마리가 앉아 있고, 거리엔 새끼 쥐들이 몰려나와 마치 (자신들이 투표해 뽑은) 아빠에게 떼쓰고 있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인들, "표현의 자유 사수!" 영화인들이 13일 오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영진위의 영화제 영화상영등급분류면제추천 제도 수정, 예술영화관 지원 축소 시도' 등은 영화계의 독립성과 자율성 훼손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행위라며 규탄구호를 외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에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마케팅사협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한국영화배급사협회 등 5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 영화인들, "표현의 자유 사수!"영화인들이 지난해 2월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을 열었다. 부산영화제 독립성 확보 및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관계 당국의 각성을 요하는 자리였다.ⓒ 이정민


- 포돌이 자체도 곧 공권력을 상징하나.
"그럴 수도 있고 또 다른 면이 있기도 하다. 포돌이를 어린 아이처럼 묘사하지 않았나. 보다 보면 동정심이 가기도 한다. 물론 당사자들이 영화를 본다면 기분이 나쁠 수는 있다."

- 대사를 직접 말하게 하지 않고 각종 효과음과 소음으로 처리한 것도 비슷한 의도로 보인다.
"맞다. 한국 사회의 혼돈을 말하고 싶었다. 저마다 자기 목소리만 내고 듣질 않는 카오스의 상태."

-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만들 때와 지금을 봤을 때 표현의 자유는 좀 더 보장되는 것 같은지.
"초반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을 땐 힘들었다. 괜히 쓸 데 없는 걸 만들었다는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의원이 된 박주민 변호사가 당시 소송을 도와주셨다. 그 분과 준비하면서 힘을 내게 됐고, 영등위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걸 알게 됐다. 국가가 시스템을 이용해 검열을 시도한다는 걸 느꼈다.

사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이렇게 서로 욕하고 싸울 수 있는 자체가 표현의 자유다. 그런 의미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은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전에 막아 버리는 거잖나. 없어져야 할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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