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을 것 같았다. 의경들과 뮤지컬 배우의 만남이라니. 게다가 강연내용도 진로와 삶에 관한 것이었다. 과연 그들의 만남이 서로에게 뭔가를 남겨줄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지난 26일 화요일, 경기도 성남 수정경찰서에서 열린 강연에서 뮤지컬 배우 김사랑을 만나보았다.

[1막] 의경들, 뮤지컬 배우 김사랑을 만나다

 예기치 못 한 삶이 주는 재미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그녀.

예기치 못 한 삶이 주는 재미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그녀. ⓒ 최하나


사실 걱정이 앞섰다. 강연을 듣기 위해 소회의실로 들어오는 의경들은 많이 지쳐 보였으니까. 서로 인사를 나눈 후에도 어색한 침묵은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긴장과 피로는 배우 김사랑이 들려준 '양화대교'의 한 소절로 날아가 버렸다. 그 후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아마추어 댄스스포츠 선수였다는 의경은 일어나 춤을 보여줬고 작곡을 전공했다는 청년은 뮤지컬의 매력에 대해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분명 시간이 좀 더 주어졌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거다. 경찰서에서는 지금까지 일대일 멘토링만 진행했는데,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이번에 처음 시행하게 되었단다. 이 강연은 의경들에게 분명 도움이 되었을 거다. 그들은 '의경'이기 이전에 취업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었으니까 말이다.

[인터미션] 시간이 초과되다

 성남 수정경찰서를 찾은 뮤지컬 배우 김사랑.

성남 수정경찰서를 찾은 뮤지컬 배우 김사랑. ⓒ 최하나


1시간 예정이었던 강연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 속에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끝이 났다. 뭔가를 더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배우 김사랑도 의경들도 자리를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2막] 선생님을 꿈꾸던 소녀, 아나운서를 거쳐 배우가 되다

원래부터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선생이 되고 싶었다던 그녀는 졸업 후 아나운서로서 사회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이금희 아나운서같이 사람 냄새가 나는 방송인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방방송국에서 1년여의 세월을 보내던 중 앞으로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절대 못 잊을 정도로 좋은 추억들도 많았고 감사한 분들도 많아요. 어찌 되었든 아나운서로서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해주셨고요. 하지만 안주하기보다는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렇게 그녀는 한국교통방송에서 <김사랑의 가요터미널>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하게 되었다.

"주로 기사님들이 방송을 들어주셨고 실시간으로 문자와 사연을 받아보면서 짜릿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하는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피부로 와 닿으니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녀에게 만족이란 없었다. 이번에는 홈쇼핑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쇼호스트와 함께 호흡을 맞춰 특정 브랜드의 제품들을 소개하는 전문 아나운서라고 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단다.

"제가 평소 생각해오던 방송인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고사도 했고요. 그런데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면에는 솔직히 안정적인 자리를 놓치기 싫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프리랜서라기보다는 직원의 신분에 가까웠거든요. 특히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셨어요. 보너스를 탈 때마다 드렸거든요. (웃음)"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열정과 집중이 느껴지는 강연이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열정과 집중이 느껴지는 강연이었다. ⓒ 최하나


그렇게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며 소속감도 느끼고 재미도 느꼈다고 했다. 특히 방송 중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콜 수는 그녀에게 희열을 맛보게 했다. 이보다 더 직접적인 피드백은 없을 테니까.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꿈이 찾아왔다.

"직장인의 생활이라는 게 약간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부분이 많잖아요. 쉬는 날에 뭔가 특별한 걸 하고 싶어서 뮤지컬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노래와 연기 그리고 춤을 배우게 되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좋더라고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결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동안은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이직이었다면 이건 전혀 다른 분야로의 전직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배우'라는 직업이 주는 생경함도 한몫했단다. 내가 감히 배우를 할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이던 그녀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고 정말 신기하게도 합격했다는 소식을 받아들었다고 했다.

그 후로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어느새 여러 편의 작품에서 얼굴을 알린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얼핏 들으면 너무 운 좋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는 성공스토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나운서가 어느 날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는 이 한 문장 속에는 수없이 고민하고 갈등했던 시간이 숨어 있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중압감이 컸어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하고 마냥 즐기기만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잖아요. 특히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내 뱃속에서 어떻게 이런 자식이 나왔나 하는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저 역시도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이렇게 자꾸 옮겨 다녀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고요. 왜 불안하지 않았겠어요. 마지막 직장생활 2년 동안은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주변 사람들조차 제 꿈을 이제 이해해주지 못하는데 발을 떼기가 쉽지 않았죠."

그런데도 김사랑은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건 그녀가 남들보다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인생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커튼콜] 즐길 만큼의 여유를 찾다

 의경들은 이제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게 될 것이다. 부디 그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길.

의경들은 이제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게 될 것이다. 부디 그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길. ⓒ 최하나


우리는 자리를 바꿔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사실 나는 내면의 소리를 따라 직장을 박차고 나오고 난 그 후가 더 궁금했다.

"수입적인 면만 본다면 그 전보다 못한 게 사실이예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고 만족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 돈이 적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의 꿈이라면 원하는 배역을 당당하게 따낼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이 탄탄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솔직히 이제는 예상을 못 하겠어요. 시간이 흐른 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가요.

생각하지 못 한 일들이 벌어져서 재미도 있어요. 그걸 즐길 만큼의 여유는 생긴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아직 배우로서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하고 싶고 함께 하는 일이니만큼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제 몫을 다 할 거고 지금 하는 뮤지컬 <루나틱>에 집중하고 싶어요. 어쨌거나 저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그건 분명한 것 같아요."

김사랑 수정경찰서 뮤지컬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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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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