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미묘하다. 어떤 날은 그 간극이 나를 노력하게 만든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정진하게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어떤 날은 그 간극이 날 무력하게 만든다. 좁혀지지 않는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제일 좋은 것은 현실과 이상의 일치겠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원제: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는 여러 가지 면에서 커다란 시사점을 안겨준다. 월터의 상상과 월터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어떻게 나의 현실을 상상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영화 초반부는 월터가 '현재 자신의 모습과 이상적인 자신'을 상상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영화 초반부는 월터가 '현재 자신의 모습과 이상적인 자신'을 상상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월터는 새로운 경영자에게 인수된 잡지사 <LIFE>의 16년 차 베테랑 포토에디터다. 오늘날 여러 잡지사와 마찬가지로 <LIFE>에도 인터넷 바람이 불었고 폐간을 앞두게 된다, 새로운 경영자도 등장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새로운 경영자의 태도다. 월터를 무시하고 조롱한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의 무시와 조롱에 힘없는 사람은 당하기만 한다. 월터도 '현실'에선 그랬다. 무례한 경영자를 혼내주는 것은 상상으로만 끝냈다.

여자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E-Harmony'란 소개팅 사이트 통해 셰릴이란 사람의 관심사, 신상정보 등을 알게 된다. 중요한 건, 셰릴이 월터와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점이다.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현실에선 말조차 걸어보지 못했다. 소개팅 사이트를 통해 셰릴에게 윙크(E-Harmony에서 호감 가는 이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를 던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윙크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보냈다. 셰릴의 강아지를 위기상황에서 구해주고, 셰릴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은 역시 상상으로만 끝냈다.

그렇다. 영화 초반부는 월터가 '현재 자신의 모습과 이상적인 자신'을 상상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그 횟수도 많다. 그만큼 '현실 속에서의 월터'와 '월터가 꿈꾸는 월터'의 간극이 크다는 의미다. 이것은 비단 월터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상사의 압박 속에서 하루하루 견뎌내는 우리네 직장인들, 수백 번 수만 번 고민 끝에야 좋아하는 이성에게 말을 건네는 숫기가 없는 우리네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 못된 상사를 혼내주고, 좋아하는 이성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는 등의 상상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월터처럼 상상으로만 끝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월터의 현실과 상상의 괴리가 우리에게 매력적이면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월터다운 월터를 만들어가는 상상

 상상 속에만 있던 용감한 월터를 현실에 옮겨놓은 건 월터 자신이었다.

상상 속에만 있던 용감한 월터를 현실에 옮겨놓은 건 월터 자신이었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상상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보여주는, 현실의 아픔을 해소하는 상상이었다면, 영화 중반부는 '월터다운 월터'를 만들어가는 상상이 주를 이룬다. 영화 중반부에 나오는 상상 속에선, 영화 초반과 달리 월터는 가만히 있는다. 월터가 누구를 혼내주고, 구하는 상상이 아니다. 셰릴이 나와 월터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상상이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보내준 <LIFE>의 폐간호 표지 사진을 찾지 못하는 월터. 월터는 그 사진을 얻기 위해 숀 오코넬을 찾아 떠난다. 숀 오코넬은 주소도, 전화번호도 어디에 남기지 않는 자유인이다. 어떻게 구한 단서를 찾아 날아간 곳은 그린란드의 바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배에 숀 오코넬이 있을 것이란 정보를 접한다. 월터는 '술 취한 헬기 조종사와 태풍이 올 것 같은 날씨'라는 조합 앞에서 망설인다. 오코넬이 있는 바다 한가운데에 갈지 고민한다. 그때, 상상을 한다. 셰릴이 나타나 월터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월터는 힘을 얻는다. 상상의 끝은 헬기에 올라탄 월터에 닿아 있었다. 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상어와 싸우기도 한다. 셰릴의 노래 덕분에 월터는 용감해진 현실 속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상상 속에만 있던 용감한 월터를 현실에 옮겨놓은 건 월터 자신이었다. 노래를 불러준 건 셰릴이 맞다 하지만 그 장면은 월터 스스로가 만든 장면일 뿐이다.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응원을 '셰릴'이란 이미지를 통해 했을 뿐이다. 결국, 자신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동력은 자기 자신이라는 셈이다.

상상의 부재와 현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메시지

 영화 후반부로 가며, 현실의 이야기가 독백 형식으로 상상의 빈자리를 채운다.

영화 후반부로 가며, 현실의 이야기가 독백 형식으로 상상의 빈자리를 채운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월터의 상상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월터가 현실을 기록하는 장면이 그 빈 곳을 채운다. 숀 오코넬을 찾으러 간 히말라야 등정에서, '나는 오늘 용사 두 명(길잡이, 일종의 셰르파를 의미하는 것 같다)을 고용했다', '워로드들에게 어머니가 만든 케이크를 줬다' 등 현실의 이야기가 독백 형식으로 상상의 빈자리를 채운다. 더 이상 상상을 통해 이상적인 자신을 꿈꾸지도, 용기를 북돋지도 않는다. 회사로 돌아와 <LIFE>의 모토도 모르는 새로운 경영자를 꾸짖기도 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제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모든 단서는 연결돼 있다."

숀 오코넬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월터에게 셰릴이 한 말이다. 상상 속의 자신을 현실에서 구현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월터는 해냈다. 그가 노력해서 이뤄낸 경험 하나하나가 모여 만든 산물이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경험이 연결돼 상상 속 월터를 현실로 끄집어냈다. '삶을 바꾸는 건 자기 자신이다' 라는 뻔한 명제를 뻔하지 않게 풀어낸 영화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희망을 품은 영화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희망을 품은 영화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 상상 현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