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애니메이션을 주로 만들었던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 도전. 결과물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독립 애니메이션을 주로 만들었던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 도전. 결과물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 NEW


첫 번째 오해. 연상호 감독은 박찬욱·봉준호·김지운 감독, 심지어 <곡성>의 나홍진 감독도 아니다. 그는 <돼지의 왕> <사이비>의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첫 번째 실사영화를 만든 감독일 뿐이다. 1년에 3~4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물론 실사가 주류인 영화계에서도 그는 '신인'이나 마찬가지다. 전체 예산이 100억을 훌쩍 넘는 프로젝트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감독에게나 투자/배급사, 배우와 제작진 모두에게 <부산행>은 모험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오해. '좀비물'은 대중적 장르가 아니다. 이른바 'K-감성'이 지배하는 한국 땅에서는 더더욱 아니다. 비록 '미드' <워킹데드>가 흥했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전 세계 '좀비 장르'에서 흥행 1위를 지키고 있는 <월드워 Z>가 국내 500만 관객을 동원한 때가 고작 2013년이다. '장르 클리셰'보다 장르적인 당혹감이 훨씬 가깝게 다가올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세 번째 오해. 칸 국제영화제행 티켓은 흥행 보증수표가 아니다. 칸 레드카펫을 밟고도 흥행에 실패한 영화들도 적지 않다. 엇비슷한 장르로 인식될 만한 봉준호 감독의 '천만 영화' <괴물>이 2006년 칸에서 호평을 받은 선례가 있지만, 올해만 놓고 보면 <부산행>은 <곡성>과 <아가씨>와는 또 다르다. 수년 전부터 영화를 기다려왔던 두텁고도 너른 감독의 팬들이 기대를 높여왔던 것도 아니다.

네 번째 오해. 배우들. 공유는 황정민이 아니고, 마동석은 오달수나 유해진이 아니다. 400만을 돌파한 <도가니>와 <용의자>가 있지만, 지금까지 공유는 브라운관이 아닌 스크린에서 너른 대중성을 갖춘 배우라 볼 순 없었다. '대세' 마동석 역시 '마요미', '아트박스 사장님'으로 불리며 젊은 관객들을 위주로 인지도와 호감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부산행>이 이른바 '티켓 파워'(라는 이 단언하기 힘든 정의)가 도드라지는 배우를 내세운 건 아니란 뜻이다.  

이러한 몇 가지 오해와 그 배경을 감안한다면, <부산행>에 쏠리는 관심과 흥행이 여러 약점을 딛고 일어선 작품의 힘에 힘입은 결과라는 점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여름 시장의 수요에 부응하는 대중성과 전형성, 애호가들이 환호할 만한 장르적인 신선함, 그리고 한국적 묘사나 동시대성이 공존하는 작가적 야심을 두루 아우르는 <부산행>. 배급 환경과 산업적인 측면은 차후에 언급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쉬이 단점을 부각시킬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의도된 전형성과 영화적인 신선함 사이, 영리하고 영민하다 

 연상호 감독은 영리한 감독이다. 그의 영화 안에도 감독의 영민함이 잘 드러난다.

연상호 감독은 영리한 감독이다. 그의 영화 안에도 감독의 영민함이 잘 드러난다. ⓒ NEW


생일을 맞은 어린 딸 수안(김수안 분)을 부산에 사는 엄마에게 KTX로 데려다 주려는 '펀드 매니저' 아버지 석우(공유 분)가 좀비 떼들과 맞닥뜨려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 <부산행>은 이렇게 간단히 요약된다. 그리고 영화는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석우와 수안을 소개하는 짧은 초반부를 포함해도 거의 24시간 이내에 펼쳐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 이 짧은 소개에서 무엇이 연상되는가.

석우의 눈물나는 부성애와 좀비들과의 액션과 혈투, 그리고 KTX에서 연상되는 물리적 스피드와 한정된 시간이 주는 속도감에 방점이 찍히지 않겠는가. <부산행>은 이 단순명쾌하고 선명한 설정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수안의 동선을 벗어나는 일 없이 한정된 시공간에 집중한다. 공간 전환을 위한 회상 장면도 거의 없다. 관객들이 기대하고 환호할 법한 액션과 스릴, 감정을 자극하는 장면들을 군데군데 정석대로 포진시킨다. 영리라고 영민하다. 

대개의 좀비 영화가 그렇듯,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왜' 퍼졌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왜는 개봉 대기 중인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행>을 봐야 할 것이다). 석우와 수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생존의 드라마가 우선이다. 그 안에 등치 좋은 상화(마동석 분)와 임신부 아내 성경(정유미 분), 야구부 고교생 영국(최우식 분)과 여자친구 진희(안소희 분), 노숙인(최규화 분)과 할머니 자매, 운송회사 사장 용석(김의성 분) 등이 벌이는 사투 속 인간군상극이 적절하게 안배돼 있다.

결론부터 내놓자면,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 특유의 직설화법보다 더 너른 관객을 품고픈 열망이 전편을 지배한다. 공포장르의 불편함은 줄이고, 액션과 드라마에 집중한 것이 그 증거다. '열차와 함께 달리는 좀비들'이란 신선함이 영화적인 무기란 걸 충분히 자각하고, 캐릭터나 극적 구성에선 오히려 전형성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다소 과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지만, 후반부 부성애나 가족애 등의 묘사 역시 과잉과 보편성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속도감을 탑재한 장르적 쾌감

 <부산행>은 장르 영화로서, 장르적 재미를 충족시킨다.

<부산행>은 장르 영화로서, 장르적 재미를 충족시킨다. ⓒ NEW


<부산행>은 공개 전 좀비물이란 특정 장르의 요소들이 몰입이나 관객의 확장을 방해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혹은 '천만 영화'를 타깃으로 한 기존 한국 상업영화들이 '민족'이나 '신파', '시대성' 등에 일정정도 기댔다는 점을 떠올려 보시길. 편집이나 캐릭터 묘사 등에서 다소 성긴 구석을 감안한다고 해도, <부산행>은 소재는 물론 장르적인 패기와 대중성이 적절하게 배합된 상업 장르영화로 즐길 요소가 다분하다.

특히 KTX의 속도감과 결합한 역대 최강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좀비들의 공격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르적·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좀비영화 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좀비떼'의 시각적인 향연은 장르 애호가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칸 영화제의 호평이나 로튼 토마토의 90%를 웃도는 신선도 지수도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영화 중반부를 가로지르는 맨몸 액션 역시 과하거나 특정 취향에 부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열차와 기차역이란 공간적인 한계를 갖가지 아이디어로 돌파하고자한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물리적인 한계를 인식한 채, 장르적인 취향과 대중적인 고려를 적절히 배합한 결과랄까. '좀비'임을 감안해도, 같은 '열차' 속 액션을 구현한 (제작비 차이가 뚜렷한) <설국열차>와 비교한다면 분명 또 다른 쾌감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장르 특유의 설정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불특정 다수가 감염된 좀비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 이를 이겨내려는 인물들의 연대 혹은 불화는 좀비물이나 공간적 한계를 부여한 호러영화 고유의 장르적 보편성이다. 사랑하는 이가 제 눈앞에서 좀비로 변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슬픔과 분노는 또 어떠한가. <부산행>은 전형적일지언정 어느 것 하나 놓치는 법이 없다. 이만하면 <부산행>의 전형성은 단점이기 보다 대중성을 위한 포석이자 계산이라 할 만하다.

연상호 감독의 '선택과 집중' 

 <부산행> 역시 작품의 이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의 이면을 조명한다.

<부산행> 역시 작품의 이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의 이면을 조명한다. ⓒ NEW


근작인 <돼지의 왕>과 <창> <사이비> 등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학교와 군대, 종교 등 한국사회의 이면에 메스를 가했던 연상호 감독. 그의 인간군상극으로 볼 수 있는 <부산행>은 평균 이상의 장르영화가 주는 보편적인 은유와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고, 혐오가 일상이 되어버린 한국사회를 내외적으로 직유한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직설법은 거둬들였지만 칼끝은 살아 있다고 할까.

극 초반 좀비들을 시위대로 묘사하고 일축하는 '사이비' 언론, 사투리를 쓰는 노인의 협소한 시각, 나와 딸만이 살고자했던 수안의 펀드 매니저라는 직업, 중간에 맞닥뜨리는 '군복' 입은 '좀비떼'들의 습격, '개저씨'를 대변하는 용석의 이기심 등등. 성장을 위해 내달리기만 했던 한국사회 마냥 생존을 위해 질주하는 KTX 열차를 필두로 <부산행>은 한국사회의 비뚤어진 일면을 곳곳에 포진시킨다.

그리하여 <부산행>은 후반부 '우리' 안에서 또 다른 '우리'와 '저들'을 가르려는 선동이 다수의 승객들을 혐오와 배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순간에 갈등을 증폭시킨다. 마치 그것이 현대사회 혹은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반영한다는 듯이. 어쩌면 결말에서 조금 앞당겨진 장면에 등장하는 이 갈등의 묘사는 극적 구성의 진폭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감독연 상호의 선택임이 분명해 보인다. <부산행>이 가장 힘을 준 장면 준 하나다. 

반면 이러한 직유가 실로 일대일 대응에 가깝다거나 전체적인 구성이 도식적이고 매끄럽지 못하다는 비판은 감수해야 할 듯싶다. 희망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부와 아이의 여성 캐릭터를 위시해 전체 캐릭터들이 평면적이거나 납작하다는 불만과 함께.

이는 <부산행>이 '선택과 집중'을 발휘한 장르성이나 대중성에 전체 캐릭터들을 복무시키면서 빚어진 결과일 것이다. 음악을 위시해 후반부의 정서적 과잉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일각에서 <부산행>이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궁금증을 일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가적 야심과 더 넓은 대중과의 교감 사이. 연상호 감독의 고민한 이 '선택과 집중'은 최종적으로 어떠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그리고, 얼룩으로 남은 NEW의 과욕

마지막으로, <부산행>의 얼룩으로 남게 된 유료시사. 결론적으로,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NEW의 조바심과 과욕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게 됐다. 중고등학생들의 방학과 겹치는 7월 20일을 개봉일로 확정한 <부산행>이 개봉 한 주 전 주말인 15~17일 유료시사를 단행하면서 끌어 모은 관객은 56만5614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지난 20일 개봉일에만 87만2232명을 동원하며 역대 오프닝 기록을 갈아치운 <부산행>은 개봉일 이후 일요일인 24일까지 5일 동안 474만9953명을 동원, 누적 관객수 531만5567을 기록했다. 그리고 NEW는 아니나 다를까 유료시사 관객을 더해 '개봉 주 관객 역대 관객 1위'로 홍보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영화계에서 없어지다시피 한 개봉 전 주 유료시사를 부활시킨 NEW. 안 그래도 스크린 잡기에 혈안이 된 시장 상황을 교란시킨 것으로 이미 충분히 영화계와 언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에 더해 <명량>이 보유한 개봉 주 역대 최고 관객 동원 기록을 넘어섰다는 '눈 가리고 아웅'식 홍보를 더하고 있는 셈이다. <인천상륙작전>, <제이슨 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겠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 만은 분명하다. 

유료시사부터 예견된 수순이지만, '개봉 주 역대 1위'를 점하기 위한 NEW의 배급/홍보 전략이 <부산행>의 영화적 성과에 흠집을 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건 그래서다. 더욱이 이 같은 볼썽사나운 일종의 변칙개봉과 홍보가 <7번방의 선물>과 <변호인> 이후 주춤하면서 '천만영화'에 목말라 했던 NEW의 과욕이라는 점에서, 블록버스터나 대규모 상업영화에 한정된 '스크린 몰아주기'까지 일상화되고 있는 배급 현실과 맞물려 씁쓸함을 더한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우려와 오해, 약점을 딛고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부산행>. 25일까지 누적 관객수를 581만3656명으로 늘렸다. 개봉 주에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1000만' 클럽 가입도 기정 사실화 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로부터 10년. 여러모로 비교될 만한 <부산행>이 <괴물> 이후 당도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리고, <부산행>은 이후에도 오래동안 <괴물>만큼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반응과 담론을 끌어낼 수 있을까, 또 그 10년 간 한국영화는 어떻게 진화 혹은 퇴보했는가. 분명한 건, <부산행>은 우리에게 영화 내외적으로 다채로운 질문을 이미 던져주고 있다는 점이리라.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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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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