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라도 인간에게는 태도 선택의 자유는 남는다.

소극적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라도 인간에게는 태도 선택의 자유는 남는다. ⓒ 그린나래미디어


자유에는 층위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간섭을 받는 정도에 따라 자유의 층위를 설명할 때 가장 낮은 수준의 자유는 간섭 받지 않을 자유다. 자신의 선택을 능력의 부재로 수행하지 못하는 자유더라도 낮은 수준의 자유에 포함한다. 이 자유를 소극적 자유라고 한다. 우리 대부분은 소극적 자유라는 조그마한 울타리 안에서 임금노동자로 산다.

이상적으로 꿈꾸는 삶을 살지 못한다. 각자 주어진 삶에 맞춰가며 소소하게 산다. 그런데 소극적 자유마저 흔들린다면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실직한 상태라 소득이 없어 빚이 늘어간다. 정부는 재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식사를 하지 못해 배가 고프다. 생리활동이 정지한다. 감각과 사고, 상상이 멈춘다. 이 지점에서 소극적 자유는 없다. 다른 사람이 나를 간섭하는 걸 넘어서 내가 나를 지탱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한 가닥 희망이 남는다. 소극적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라도 태도 선택의 자유는 남는다. 다시 도전하거나 포기한다. 가혹함과 통제의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태도 선택의 자유는 앗아가지 못했다.

어머니의 강인함과 여성의 섬세함을 포착한 영화

2014년에 제작되고 2015년에 국내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원제 Deux jours, une nuit)은 실직의 위기에 처한 한 여성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카메라는 여성을 쫓고 그 사이 음악도 풍경도 없다. 우울한 여성과 목소리, 소음이 있다. 이를 사실주의 영화라고 하는데 허구와 현실의 구분이 모호하다. 같은 실업을 다룬 프랑스 사실주의 영화로 <아버지의 초상>이 있다. 2016년에 국내에 개봉했다. <아버지의 초상>은 가부장적 관념 속에 있는 현실의 아버지 역시 실업과 윤리의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부양자라는 의무로 무게가 가중된다. 어머니와 자식은 피부양자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어머니도 아버지와 대등한 부양자다. 프랑스 혁명으로 부르주아가 시민이 되고 이후 어머니도 시민이 되고 임금노동자가 된다. 아이를 돌보는 의무에 더해 사회에 나가 노동을 한다. 따라서 어머니의 실업은 아버지의 실업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자식을 보호하는 강인함 뒤에 여성의 섬세한 감성이 있고 <내일을 위한 시간>은 이를 포착한다.

우울증을 앓는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는 다시 도전하는 태도를 선택한다. 남편 마누(파브리지오 롱기온 분)와 한 사원의 배려와 응원으로 해고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고는 정당하지 않았다. 사장이 산드라의 복귀와 보너스를 두고 투표를 벌였는데, 방장이 보너스를 선택하도록 사원에게 압력을 가했다. 사장은 이를 받아들여 재투표를 승인한다. 투표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이틀이다. 산드라는 투표권을 가진 사원 열 여섯 명의 집을 방문한다.

한편 <내일을 위한 시간>은 형제인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이 감독을 맡아 제작했다. 상영시간은 95분이다. 201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후보에 올랐다. 주연 마리옹 꼬티아르는 2014년 유럽 영화상 여우주연상과 2015년 전미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빵과 노동 그리고 노동자

 침대는 수용자를 고립시키는 공간이다. 그 허위적 관성이 강해지면 수용자와 침대는 하나가 된다.

침대는 수용자를 고립시키는 공간이다. 그 허위적 관성이 강해지면 수용자와 침대는 하나가 된다. ⓒ 그린나래미디어


산드라는 알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한다. 우울한 기분이 들어 혼자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는다. 알약을 먹는 것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만 아직은 병을 앓고 있다. 산드라는 지금 돌봄이 필요한 환자이지만 그 역할에만 머무르지 못한다.

산드라는 한 남자와 가정을 꾸린 어머니다.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고만고만한 어린 두 자녀를 남편과 함께 기른다. 어머니가 자녀를 돌보는 걸 두고 스티븐 킹은 자신의 저서 <돌로레스 클레이본>에서 말한다.

"자네도 다른 남자들하고 똑같이 자랐으니까. 빨래를 해 주고, 콧물을 닦아 주고, 자네가 잘못된 쪽을 향하고 있을 때 돌려세워 줄 여자가 항상 옆에 있었다는 얘기야."

산드라는 환자이기 이전에 어머니다. 남편 마누가 곁에서 양육을 보조하지만 그만큼 산드라가 해야하는 일이 사회에서도 주어진다. 요리사인 마누의 월급으로는 네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 미술관 관람, 자녀와 놀이공원에 가는 이벤트는 넘어가도 끼니마다 먹는 빵은 넘기지 못한다. 그리고 전기세와 수도세도 내야하고 자동차유지비, 대출도 갚아야 한다. 그래서 산드라는 임금노동자로 일한다. 환자로 남을 수 없다.

이처럼 자유로운 사회는 개인을 간섭하지 않지만 그만큼 개인의 생존에 대해서도 간섭하지 않는다.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부양자로서의 산드라와 환자로서의 산드라는 열 여섯 명의 사원을 찾아다니는 일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영시간 95분 동안 식사하는 장면과 아파하는 장면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복직의 기회가 단 이틀에 주어져도 인생은 정지하지 않는다. 이는 다른 사람도 포함하는 보편적인 문제다. 부양자와 환자의 모습은 크고 작은 형태로 부모라면 모두 공유하고 있다. 산드라는 이 점에 기대어 보너스가 아닌 복직에 투표해 달라고 호소한다. 노동은 생계이고 곧 생존과 직결된다.

다른 사람의 생계와 내가 받는 보너스

 사원들은 산드라를 위해 보너스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사원들은 산드라를 위해 보너스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 그린나래미디어


산드라의 생계를 열 여섯 명의 사원이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야 하는 이유는 도의적 이유를 제외하고 없다. 보너스를 선택하면 산드라가 해고된다. 사장에게 산드라의 호소는 실용적으로 계산된다. 재투표도 그 결과다. 사장은 산드라의 해고에 앞서 산드라 없이도 공장이 운영된다고 판단한다. 사장의 입장에서는 산드라가 쓸모가 없고 줄여야 하는 비용이다. 소비자에게 파는 제품의 가격에 포함되는 비용이다. 산드라는 돈을 받는 만큼 일하는 노동자이고, 필요에 따라서 해고가 가능하다. 다만 무작정 해고하면 다른 노동자의 기분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나사 하나가 고장이 나면 다른 부품도 고장이 난다.

그래서 사장은 해고에 조심스럽다. 합리적인 방법을 생각한다. 해고를 사원 투표에 맡김으로써 논란이 되는 부분인 도의적 책임을 은밀히 전가한다. 이처럼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표현하는 기업은 도의적 책임을 고려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노동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산드라의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는 <내일을 위한 시간>의 기업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또 산드라가 없다고 해서 노동의 강도가 유의미하게 오르지 않았다. 사원 대다수는 노동의 강도에 대해 산드라에게 언급하지 않는다. 복직을 반대하는 한 사원이 추가노동에는 추가임금이 붙는다고 말한 게 다다. 노동의 강도는 문제가 안 된다.

전가된 책임감에 사원은 보너스를 받아야 하는 각양각색 사정을 말한다. 산드라에게 복직이 절실한 만큼 사원에게 보너스가 절실하다. 임금 외에 보너스를 더 받으면 그만큼 생활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보너스를 받으면 산드라의 실직과 그녀의 임금을 빼앗는다는 죄책감을 받는다. 복직에 투표한다. 일부는 보너스를 정당한 임금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산드라가 도둑질하는 거다. 보너스에 투표한다. 이처럼 사원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복직과 보너스 사이에서 첨예하게 갈등한다. 그 공간 사이에서 표출된 폭력으로 지친 산드라가 남편에게 말한다.

"매번 거지가 된 기분이고 돈 뜯으러 온 도둑 같아, 날 때릴 기세로 쳐다봐 그럼 나도 때리고 싶어." "나 때문에 폭력이 생기는 거 더 이상은 못 참겠어."

보너스를 임금 외에 산드라의 해고로 받는 보수 아니면 노동에 대한 임금의 합당한 일부라고 여기든, 보너스는 내가 받는 빵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빵을 이웃을 위해 나눌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도의적 책임은 위기에 처해있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책임이다. 이 지점에서 <내일을 위한 희망>은 전통적으로 반복된 중요한 주제를 현대로 이끌고 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축보다 못한 처지에 놓인 수감자가 자신의 빵을 더 아픈 이를 위해 건네는 모습을 사원의 일부는 보너스를 포기함으로써 재현한다.

산드라도 빵을 포기한다. 산드라는 재투표로 사원의 절반을 이끌었고 이윽고 사장에게 제안을 받는다. 계약직 노동자의 재계약이 아닌 산드라의 복직을 제안한다. 그러나 산드라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버지, 남편의 사랑


 <내일을 위한 시간>은 어머니도 아버지와 대등한 부양자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어머니도 아버지와 대등한 부양자다. ⓒ 그린나래미디어


남편 마누가 곁에 없었다면 산드라는 도전하거나 버티지 못하고 포기했다. 마누는 햇살이 거리를 비추는 낮에도 부인이 혼자 방의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는 걸 생각한다. 재투표가 있으니 사원을 만나보라고 독려한다. 그 과정에서 슬퍼하고 기뻐한다. 이처럼 시작과 과정에서 마누가 함께했다.

최초의 산드라는 사원에게,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 방장의 의도적인 개입이 있었지만 처음 투표의 결과는 산드라가 아닌 보너스다. 두 명만이 복직에 표를 던졌다. 산드라는 고독한 방으로 자신을 감금한다. 그 공간은 침대라는 상징으로 나타난다. 부드러운 침대는 산드라를 품는다. 빠져든 수용자를 순순히 내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침대는 수용자를 고립시킨다. 그 허위적 관성이 강해지만 수용자와 침대는 하나가 된다.

 산드라는 복직을 위해 심적으로 험난한 과정을 겪는다.

산드라는 복직을 위해 심적으로 험난한 과정을 겪는다. ⓒ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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