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네이버 (관람객) 평점은 6.02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건 준수한 편이다. 3.85에 불과한 다음 (네티즌) 평점은 더욱 야박하다. "내 시간이 사냥 당했다"는 베스트 댓글은 씁쓸한 실소(失笑)를 머금게 하고, "안성기는 산으로 갔고, 영화도 산으로 갔다"는 위트 넘치는 평가에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이 뿜고야 말았다. 안성기, 조진웅, 손현주, 한예리와 같은 훌륭한 '조각'들을 모아 놓고도, 이처럼 처참한 평가를 받은 <사냥>은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사냥> 포스터

<사냥>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미 수많은 혹평 세례를 받은 이 영화에 굳이 1g쯤 더 보태는 것이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애써 '실드'를 취는 것도 마땅치 않은 일이다. 분명 <사냥>은 '추격전'으로서의 영화적 가치가 있다. '총'이라는 무기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지 않은 정서를 극복하기 위해 영화는 '산'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활용한다. 그리하여 '활'을 통해 극강의 추격전을 선보였던 <최종병기 활>의 잔상을 떠올리게끔 하는 데까진 성공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사냥>에 쏟아진 혹평, 당연하다

인물에 대한 묘사는 턱없이 부족하고, 개연성도 없다. 상황은 덩그러니 던져지는데,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다. "금이다"라는 한마디에 소환된 엽사(獵師)들의 정체와 욕망은 설명되지 않는다. 기어코 산으로 가고야마는 기성(안성기)의 행동도 이해되지 않는다. 또, 굳이 조진웅을 '1인 2역'으로 활용했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가 쌍둥이라는 설정은 이야기 속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지 않고, 관객들에게도 심드렁하게 비친다. 순수함과 의외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예리를 '바보' 캐릭터로 쓴 것도, 손현주를 아무 의미 없이 소비한 것도 의아하다.

 <사냥>

<사냥> ⓒ 롯데엔터테인먼트


'추격전'을 펼칠 생각이었다면 거기에 몰두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금'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산'이라고 하는 묘한 공간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장면'들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의 긴장감은 더위에 늘어진 엿가락마냥 퍼지고 만다. 금맥이 발견된 땅이 실은 노파(예수정)의 아들 중현(진선규)이 사기를 당해 사들인 땅이고, 그 때문에 며느리가 자살을 했다는 사연은 힘을 받지 못한다.

<사냥>은 15년 전에 발생했던 '탄광 사고'에 많은 설명을 할애한다. 대규모 탄광 붕괴 사고에서 홀로 살아 남은 기성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가 무려 42일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까닭은 중현이 자신의 몸을 내어준 탓이다. 인육을 먹고 생존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기성은 '날고기'를 먹어 치운다. 아, 맙소사!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야 '정상적인' 것 아닐까? 차라리 깊은 죄책감에 채식주의자가 되는 쪽이 더 설득적이다.

 <사냥>

<사냥>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처럼 '추격전'을 전개하는 데 있어 감독은 자꾸만 '사연'을 보탠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곁가지'라는 생각이 들고,  급기야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카오스 상태가 된다. 어느 순간 <사냥>은 '곁가지'가 '본줄기'보다 훨씬 더 굵어져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계속해서 '금이니까!', '산이니까!'라고 애써 다그치지만, 더 이상 관객은 영화 속에 몰입할 수 없다. 이건 기본적으로 감독의 역량 탓이다.

<사냥>이 관객에게 준 교훈은 단 하나

<사냥>이 관객에게 주는 확실한 교훈이 있다면, 그건 '감독'이 영화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줬다는 것이다. 애초에 연출을 맡기로 한 천진우 감독과 제작을 담당한 김한민 감독 간에 '탄광 사연'의 삭제 여부를 놓고 의견 차이 보였고, 이 때문에 메가폰이 갑작스럽게 이우철 감독에게 넘어갔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 영화가 '산으로 가버린' 이유를 어느 정도 납득케 한다.

 <사냥>

<사냥>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우철 감독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만큼 훅 지나갈 것이다"라고 자신했지만, 관객들은 93분의 짧은 런닝타임도 채 견디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 산에 오르지 말았어야 했다'는 영화 포스터의 문구는 '그 영화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조 섞인 농담으로 변형된 채 '입소문'으로 떠돌았다. 64만5804명이라는 누적 관객 수는 오히려 많게 느껴지는 데, 이는 '대세'로 등극한 조진웅이라는 배우 덕분이었다.

tvN <시그널>을 통해 진솔하고 묵직한 연기를, <아가씨>를 통해 기괴하면서도 다양한 얼굴을 선보였던 조진웅이지만, <사냥>에서는 (비록 고군분투했지만)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연기자가 돼 버렸다. 역시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배우의 연기는 그 안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는 명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조진웅이라는 배우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사냥>

<사냥> ⓒ 롯데엔터테인먼트


조진웅과 맷 데이먼의 차이

배우 조진웅에게는 좀더 '신중한' 선구안이 필요할 듯 싶다. 하지만 JTBC <뉴스룸>을 통해 확인했던 조진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직관적(直觀的)인 인간이었고, 즉흥적인 감각을 추구하는 배우였다. 그는 <시그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20년 뒤에도 그럽니까, 거긴? 그렇게, 시간 많이 변했으면 그래도 뭔가 바뀌었겠죠?"라는 대사 한마디, 그걸 읊고 싶어서 하겠다고 결정했다고 답했다. "대사 한마디에 꽂혀서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냐"고 손석희가 재차 묻자 "무슨 역인지도 잘 몰랐다"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한편, 몇 주 후 똑같은 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한 '맷 데이먼'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영화 일을 처음 시작할 때도 감독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선명히 대답했다. 그는 "25년 동안 이 일을 해오면서 작품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누가 감독인가'라고 결론을 내리게 됐다"면서 배역에 대한 욕심보다는 훌륭한 감독과 일하고 싶은 것이 우선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영화라는 매체의 '정체성'을 정확히 파악한 듯 보였다.

물론 어느 쪽이 '옳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다. (공유는 그 기준으로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다만, 심장을 울리는 '대사 한마디'에 꽂혔다 한들, 또 소름이 돋을 정도의 훌륭한 '시나리오'라고 한들,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연출'하고, '편집'하는 권한을 가진 감독이 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말짱 도루묵 아니겠는가? 명대사가 없더라도, 다소 허술한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감독의 '날 선 이야기'가 전달되기만 한다면 자연스레 배우도 빛을 발하는 법이다. 외로이 남겨진 배우의 그림자는 오히려 영화를 초라하게 만든다.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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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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