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재개봉이 열풍을 넘어섰다. 여기, 6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가 있다. 기 개봉 당시의 기록을 넘어섰다. 수많은 재개봉 명작을 넘어선 것, 그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 무엇보다 겨우 6년 만에 명작의 반열에 올라 재개봉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명작의 재개봉이 열풍을 넘어섰다. 여기, 6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가 있다. 기 개봉 당시의 기록을 넘어섰다. 수많은 재개봉 명작을 넘어선 것, 그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 무엇보다 겨우 6년 만에 명작의 반열에 올라 재개봉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 폭스서치라이트픽처스


명작의 재개봉이 열풍을 넘어섰다. 재개봉하지 않은 영화는 명작이 아니라는 공식이 생겨날 지경이다. 본래 재개봉은 개봉 당시 큰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입소문이 퍼져 팬서비스 차원에서 하는 의미가 크다. 이제는 재개봉작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2015년에는 <이터널 션사인>이 30만 명 이상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뜨렸고, 2016년에는 <인생은 아름다워>가 10만 명 이상을 동원했다.

그리고 겨우 6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500일의 썸머>가 있다. 14만 명 정도 동원했던 6년 전 개봉 당시의 기록을 넘어섰다. 현재까지 모든 재개봉 영화 중 관객수가 2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수많은 재개봉 명작을 넘어선 것, 그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 무엇보다 겨우 6년 만에 명작의 반열에 올라 재개봉하게 된 연유가 궁금했다.

<500일의 썸머>의 경우 6년 동안 입소문이 퍼지며 끊임없이 재조명된 게 가장 큰 이유일 테지만, 감독과 배우들의 인지도 수직 상승도 큰 몫을 차지했다. 마크 웹 감독은 이 영화로 데뷔했고 이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단번에 이름값을 올렸다. 영화의 질까지 따라간 건 의문이지만. 극 중에서 주인공의 여동생으로 잠깐잠깐 얼굴을 비추는 클레이 모레츠는 어떤가. 영화 고르는 눈이 아직 모자라서 그런지, 흥행에서는 계속 미끄러지지만 여러 영화를 통해 그 얼굴과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무엇보다 주연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의 변화가 눈에 띈다. 그는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후 <인셉션>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조토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어엿한 원톱 주연 배우로 우뚝 섰다. 아마 <500일의 썸머> 재개봉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이가 바로 그일 것이다.

100명이든 1000명이든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영화 

 영화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연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00명이든 1000명이이든 이 영화를 보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연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00명이든 1000명이이든 이 영화를 보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톰은 운명의 상대를 '기다린다'. 어느 날 회사에서 운명의 짝으로 확신할 만한 이를 보게 되는데, 사장 비서 썸머다. 그는 딱히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고 기다린다. 소심해서 그런 건지, 그래서 소심해진 건지는 아직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썸머는 운명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운명을 믿지도 않는데,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한다. 어릴 때 이혼한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썸머도 톰이 호감이었나 보다. 톰이 충분히 먼저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썸머가 음악 취향을 물으며 먼저 다가간다. 그렇게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항상 톰의 기다림과 망설임, 썸머의 다가감과 되돌아옴으로 이뤄진다. 그러면서 톰은 썸머가 조금이라도 다가오지 않는 걸 느낄 때마다 심하게 자책하며 친구들과 동생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 사랑이 너무 힘들다고. 그렇게 썸머는 조금씩 '나쁜 년'이 되어 간다.

지질한 톰, 장담하건대 톰 같은 남자들 정말 많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이 영화를 보고 100% 공감하며 썸머에게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톰을 가지고 논 거냐고,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지 않으냐고.

영화는 감각적으로 톰의 썸머와의 500일을 보여준다. 그중 절반 정도는 썸머와 함께, 절반 정도는 썸머와 헤어진 후다. 사실 일상다반사의 하나인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보여줬을 뿐인데, 이 영화가 특별한 건 보는 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톰의 시선에서 보면 썸머가 나쁜 년이고, 썸머의 시선에서 보면 톰이 나쁜 놈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범한 연애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어느새 자기 이야기가 된다. 결정적으로 같은 사람이 봤어도 연애 초보일 때 보는 것과 연애를 잘 이어나가고 있을 때 보는 게 완전히 다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연애 이야기라고 할까. 100명이든 1000명이든 <500일의 썸머>에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톰의 시선, 썸머의 시선, 제3자의 시선

 톰의 시선에서 보면 썸머가 나쁜 년이고, 썸머의 시선에서 보면 톰이 나쁜 놈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범한 연애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어느새 자기 이야기가 된다.

톰의 시선에서 보면 썸머가 나쁜 년이고, 썸머의 시선에서 보면 톰이 나쁜 놈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범한 연애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어느새 자기 이야기가 된다. ⓒ 폭스서치라이트픽처스


톰의 시선에서, 톰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들어보자. 톰은 사실 잘못한 게 없다. 그는 단지 소심한 것뿐이다. 소심해서 망설였고 기다렸다. 운명을 믿었기에 굳이 행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운명이란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저절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내가 무엇을 하려 한다면 그건 더는 운명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지, 콧대가 하늘을 찌르거나 한 게 아니었다.

썸머의 시선에서, 썸머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영화는 오로지 톰의 시선만 볼 수 있기에 지나치기 쉽다. 그렇지만 썸머의 입장을 들여다봐야 영화가 완성된다. 썸머는 어릴 때 겪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사랑과 운명에 대해 평생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따라 다닌다. 진정한 운명도 없고 사랑도 없다. 자유롭게 만나고 연애하고 헤어지면 되는 거다. 진지할 필요가 어디 있나.

그런데 그런 그녀야말로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한다. 독립적이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삶과 사랑의 방식을 추구하기에 먼저 다가가는 걸 꺼리지 않는다. 먼저 다가갔기에 먼저 발을 빼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그녀가 겪었던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게 시작돼 끝난다. 그녀는 나쁜 년이 되기 일쑤다. 그녀라고 그렇게만 흘러가길 바라겠나? 만약 그녀가 다가가기 전에 한 발 빨리 다가오는 이가 있다면? 적어도 그녀가 나쁜 년이 되는 경우는 적을 거다.

제3자의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자.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보면, 톰은 소심하고 지질하다. 보기에 따라 나쁜 놈이라고 할 수도 있다. 도무지 뭘 하려고 들지 않고 뭘 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큰소리치는 건 그라니,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썸머가 오히려 불쌍하다. 시작부터 먼저 다가간 이후 매번 먼저 다가간다. 심지어 톰이 잘못했을 때도 썸머가 먼저 다가갔다. 그러니 지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지쳤을 때 톰은 역정을 낸다. 그녀가 불쌍할 따름이다. 그런데 그녀의 그런 모습이 보는 이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그녀가 불쌍하지 않다면, 그건 연애 초보 또는 연애에 무지한 소심하고 지질한 운명론자일 뿐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 영화를 다시 봐달라.

수많은 연인들에게 축복이 되길...

 수많은 찌질한 남자들의 성장을 도모했다면, 영화는 수많은 연인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찌질한 남자들의 성장을 도모했다면, 영화는 수많은 연인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폭스서치라이트픽처스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 못했던 때에 이 영화를 봤다. 오래지 않아 정확히 톰과 썸머처럼 연애를 시작했고 연애를 했다. 그리고 그들처럼 헤어질 뻔했다. 누구나 겪는 일상다반사처럼 말이다. 다행히 바로 그분과 결혼을 했고 그녀에게 줬던 수많은 아픔을 속죄하며 갚아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끊임없이 다가왔고 기회를 줬고 신호를 보냈고 실망을 했지만 돌아왔다.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는 나, 평생 다가갈 거라 다짐해본다.

그렇게 지질했던 때 본 <500일의 썸머>를 재개봉에 맞춰 그녀와 함께 다시 보았다. 나는 두 번째로, 그녀는 처음으로 보는 거다. 나는 비로소 영화의 진면목을, 그리고 썸머의 본 모습을 깨달았고, 그녀는 단번에 모든 걸 꿰뚫어 보았다. 이 영화는 톰의 성장과 나의 성장을, 그리고 수많은 지질한 남자들의 성장을 도모했다.

수많은 지질한 남자들의 성장을 도모했다면, 영화는 수많은 연인에 축복이 될 것이다.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톰은 썸머가 비틀즈에서 링고 스타를 좋아한다는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삶의 궤적이 바뀌면서 영화를 적어도 두 번 정도 보았을 이들은 그걸 이해했을 것이다. 톰이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서로서로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에까지 도달한다.

비록 만나고 연애하고 헤어지는 게 일상다반사라지만, 마음이 아픈 건 변함 없다. 그러니 부디 이 영화가 도움됐으면 좋겠다. 과거를 후회하더라도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현재와 미래를 위해 '아, 그렇게 해야 겠다. 그러면 후회 없이 행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말이다.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이해하려 하고 측은하게 여기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500일의 썸머 운명 연애 공감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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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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