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는 22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독립성과 프로그램 간섭 배제를 명문화 한 정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2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독립성과 프로그램 간섭 배제를 명문화 한 정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성하훈


지난 22일 부산영화제 임시총회에서 정관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지난 2년 동안 지루하게 이어지던 영화제와 부산시 간 공방이 마무리됐다. 영화제 측은 정관 개정으로 독립성과 자율성, 투명성이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내용상으로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확고한 독립이라는 점에서 부산영화제 측은 자부심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이번 개정안의 핵심인 이사회 구성에 있어 부산영화제와 부산시가 5:5 비율로 16명의 이사를 선임했으나, 부산시가 선임한 이사 중에는 영화계나 부산영화제 쪽의 입장에 동의하는 인사들이 여럿이다. 실질적으로는 최대 11:7이나 10:8로 볼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쟁점 결정에 대해 동수가 나와도 최종 선택을 조직위원장이 하게 돼 있다. 부산영화제 측이 완벽한 독립성 확보라고 강조할 만하다.  

하지만 정작 독립성 확보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야 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이번 정관개정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보이콧 철회를 놓고 영화계가 다시 의견을 취합해야 하는 시점에서 영화인들은 찜찜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올해 부산영화제를 거부할 경우 영화제 독립성의 의미도 반감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왜 이번 정관에 반대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사회 구성에서 부산영화제와 부산시 양측이 5:5 비율 추천을 합의한 데에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영화제 개최를 합리화시키려는 것일 뿐 정치적 탄압을 막아내기에는 미흡함이 많다"고 말하고 있다.

정관 개정의 상징적 인물이 반대한 이유

 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영화계가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위해 보이콧까지 했는데 왜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지 화가 난다"며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을 전락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지난 5월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 유성호


사실 이번 정관 개정의 출발점은 이 전 위원장이었다. 앞서 부산영화제와 부산시는 지난 5월 9일 최소한의 정관 개정을 통해 부산시장이 당연직이었던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고 김동호 명예 집행위원을 신임 조직위원장을 선임하는 조건에 올해 영화제를 치르는 것으로 합의했다. 올해 영화제를 정상적으로 치러야한다는 데 방점이 찍힌 합의였다. 직후 영화계에서는 보이콧 철회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이 전 위원장은 강하게 반발해 왔다. 그는 "지금까지 20년을 해 본 경험상 7월까지는 (영화제 쪽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시간이 있고, 영화계가 보이콧으로 부산영화제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정관 개정을 미루고 성급하게 합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자신이 개인비리 없이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는 입장에서, 정관개정을 통해 독립성만 확보된다면 자신의 명예회복은 그걸로 됐다는 자세였다.

결국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지난 5월에 열린 임시총회에서 올해 영화제 개최 전 정관개정 입장을 밝혔다. 반면 서병수 부산시장은 "정관 개정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며 소극적 입장을 나타냈다. 영화계는 민간 조직위원장이 선임됐지만 독립성이 보장된 정관 개정이 안 되면 보이콧을 풀 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후 김 조직위원장이 정관 개정에 적극 나서면서 이 전 위원장은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6월 영화전문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제를 개최하기 이전 정관 개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김동호 위원장님의 말씀을 기사로 접했다. 그 얘기를 전해듣고 내 역할은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정관 개정만 되면 "모더레이터를 맡아도 좋을 것 같다. 20년간 영화제에 몸담았던 정으로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30일 국민TV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사태 좌담회에서도 이 전 위원장은 "김동호 위원장 스타일로 볼 때 하겠다는 일은 반드시 하시는 분이다. 김동호 위원장이 결심하신 이상 잘 될 것으로 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와 응원을 보냈다.

이 전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정관 개정의 핵심은 상임집행위의 권한 강화와 조직위원회(이사회) 등 구성에서 영화제 측이 과반 이상을 확보하는 것 등이었다. 그는 영화계가 보이콧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상태에서 충분히 관철할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영화제 독립성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하지만 이사진 구성이 5:5 추천으로 결정되면서 이 전 위원장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는 실질적인 독립성이 확보됐다는 부산영화제 측 해석에 대해 "구조적으로 제대로 된 독립성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며 "올해 영화제 개최를 연연하다보니 시간이 있음에도 지난 5월처럼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합의를 해줬다"고 평했다.

이 지점에서 이 전 위원장은 부산영화제 측과 온도차가 크다. 이 전 위원장은 "영화계의 보이콧이 나중에 부산영화제를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에 비해 부산영화제는 "올해 보이콧이 유지돼 영화제가 제대로 열리지 못하면 내년은 물론이고, 앞으로 영화제가 존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인식이다. 양 측 다 부산영화제 살린다는 목적은 같지만 방법에선 다르다. 한쪽으로에서는 보이콧을, 한쪽에서는 정상적 개최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만약 영화인들이 보이콧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영화제를 해야 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영화제가 무산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며 "그런 상황이야말로 부산시장의 입지를 도와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관개정으로 독립성을 쟁취했으나 아직도 정상개최가 가능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도 "협상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한 후  "누가 뭐래도 이번 정관은 영화제의 독립성을 지켜줄 결정적 내용을 담고 있다"며 "두 번 다시 정관개정 하느라 부산시랑 밀고 당기는 일 하지 않게, 영화인과 영화제가 주도하는 정관을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위원장은 "나는 사라져가는 존재지만 (이번 정관개정은) 영화인들을 기만할 수 있는 결과이고, 나중에 현 집행부마저 쫓겨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영화계는 보이콧을 풀겠지만 나 혼자라도 싸우겠다. 내 길을 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100% 지지 힘들지만, 평가는 영화제 치른 뒤에

 부산국제영화제는 22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독립성과 프로그램 간섭 배제를 명문화 한 정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2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독립성과 프로그램 간섭 배제를 명문화 한 정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성하훈


영화계 인사들은 복잡한 속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한 독립영화 관계자는 "보이콧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고, 한 평론가는 "결과에 다 만족할 수 없으나 부산영화제 측이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은 인정해 줘야 한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집행위원회 구성에서 영화계 인사들이 과반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사회와 집행위원으로 구성된 총회의 과반수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8인 이내로 구성될 집행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정관 승인 후 위원 선임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에 대해 부산영화제 측은 "실질적으로는 집행위원회도 과반을 차지하는 구조이고 부산시가 간섭할 수 없는 '선 순환'구조가 만들어져 있다"면서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이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20회 부산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대상을 수상한 <소년, 달리다> 강석필 감독은 이번 정관 개정을 보는 복잡한 심정을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통해 이렇게 정리했다. 

"솔직히, 난 이번 합의에 100% 지지를 보내기 힘들다. 이사회의 실질적 과반수가 영화계에 돌아갔다지만, 집행위원회의 반을 또한 부산시에 내주었다. 무엇보다 영화제의 키롤(Key Role) 역할을 하는 상임집행위원회를 없앴다. 의결권 면에선 부산시가 이전처럼 힘을 행사할 수는 없겠지만, 집행위원회에서 사사건건 간섭할 통로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의 고유권한과 독립성을 명시한 건 큰 성과다. 당연하고도 당연한 걸 조문화하는 사실에 쓴 웃음이 나오지만, 현실이 그러하니 한편 비장하다고 해야 하나...

기나긴 싸움의 결과가 최선인지 최악을 피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는 영화제를 치른 뒤에라야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 유일하게 판단 가능한 것은 영화제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영화제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주변에서 애썼던 영화인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는 한 분명한 한 가지는, 그들이 영화제 한 해 거르는 것이 두려워 마지못해 합의서에 도장 찍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올해 영화제를 마친 뒤 그 긴 싸움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영화계의 몫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몫도 영화계의 것이다. 영화제와 영화제 사람들의 명예도 그러하다. 한 국면을 지난 뒤, 만약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난다면, 그건 우리 영화계의 '캐파'가 딱 거기까지 여서일 게다. 그러니 그 캐파를 고민하는 것이 지금의 일일 것이다."

부산영화제 독립성 부산시 이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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