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도마닐라라는 도시의 빈민촌 한 귀퉁이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몬도마닐라라는 도시의 빈민촌 한 귀퉁이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 카븐 델라크루즈


때는 2025년, '몬도마닐라'라는 도시. 탄광촌 빈민가 한 귀퉁이 허름한 집에 몇몇 아이들이 모여 산다. 고작해야 열 살 쯤 돼 보이는 녀석들이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한 손에는 총칼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돈이 궁해지면 강도짓을 하고 가게를 턴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에게 칼로 휘두르고 총을 갈긴다. 큰형 뻘인 보스는 일당들을 데리고 '큰 건'을 위해 은행을 털다가 결국 덜미를 잡혀 감옥에 간다. 28년이 지나고, 보스는 형을 마치고 돌아온다. 아이들은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었지만, 그들이 사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2016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초청작 <꺼져가는 불씨에 대한 매우 사소한 삶>은 필리핀 실험영화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카븐 드 라 크루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밑바닥'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인물들의 삶을 제목처럼 사소하게 다루고, 셀 수 없이 이어지는 이들의 죽음마저 사소하게 다루는 냉정한 시각이 인상적이다. '근본 없는 개새끼들'이라는 표현대로, 영화는 인물들을 구원할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 스스로 구원을 필요로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어느 순간 픽 하고 죽을지언정 말이다.

카본 감독 "모든 아역 배우 실제 빈민가 출신"
 카븐 감독은 GV에서 영화의 설정들을 소개했다.

카븐 감독은 GV에서 영화의 설정들을 소개했다. ⓒ 카븐 델라크루즈


<꺼져가는 불씨에 대한 매우 사소한 삶>은 올해 부천영화제를 통해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지난 22일 오후 8시 30분 CGV 부천에서 진행된 영화 상영 후 카븐 감독은 GV(관객과의 대화) 무대에 올라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감독은 영화에 대해 "전작 <몬도마닐라>(2004)의 후속작 개념의 작품이다. '몬도마닐라'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캐릭터만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마닐라 변두리에 있는 빈민촌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빈민촌 안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석탄 줍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낮은 계급으로 취급된다"고 설명했다.

GV에서 영화 전반부에 출연한 아역 배우들에 대한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감독은 "보스 역을 맡은 배우를 제외한 모든 아역 배우들이 빈민가 출신이다. 보스를 제외한 아이들은 실제로 담배를 피우기도 했고, 연기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배경을 미래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는 "필리핀의 상황은 과거와 비교해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미래에도 그럴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감독은 <꺼져가는 불씨에 대한 매우 사소한 삶>이 필리핀에서도 개봉하지 못한 배경도 전했다. 그는 "(잔인한 장면이나 극단적인 설정 때문에) 필리핀에서 등급 심의가 보류된 상태라 아직 개봉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필리핀에서는 이런 경우 다시 돈을 내고 등급 판정을 요청하면 등급 분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비즈니스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필리핀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하면 좋을 것 같다, 시장이 미리 영화를 보지만 않으면 상영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재치있게 덧붙였다.

 카븐 감독은 "나 자신을 위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카븐 감독은 "나 자신을 위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 카븐 델라크루즈


작품 세계와 감독으로서의 철학을 묻는 말에 카븐 감독은 남다른 관점을 드러냈다. 그는 "언젠가부터 관객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드는 것을 포기했다. 나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들고, 내가 즐거우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필리핀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꺼져가는 불씨에 대한 매우 사소한 삶>은 2016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레드'부문 초정작이다. 오는 27일 오전 11시 30분 CGV부천에서 추가로 상영될 예정이며 카븐 감독 또한 이날 국내 관객과 다시 만날 계획이다. 러닝타임 88분, 18세이상 관람가.

꺼져가는 불씨에 대한 매우 사소한 삶 BIFAN2016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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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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