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독하게 영화 속의 메시지를 읽고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청년의 통통 튀는 감성을 담아 표현하고 소통하겠습니다. [편집자말]
트릭은 속임수를 뜻한다. 마술사는 여러가지 트릭을 이용해서 관객들을 속이고 그것을 신비로움으로 승화시킨다. 또한, 영화에서 감독의 트릭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고 반전이라는 묘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트릭이 언제나 좋은 효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트릭의 정도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납득이 가는 수준이어야 하며, 또한 쉽게 실체가 드러나버린 트릭은 오히려 보는 이에게 허탈한 인상을 남기기 쉽다.

이창열 감독의 <트릭>은 이름에서부터 관객을 속이겠다라고 공언하며 시작한다. 시청률에 미친 석진(이정진 분)에 의해서 휘둘리는 시한부 도준(김태훈 분)과 방송에 중독되어가는 영애(강예원 분)라는 영화의 겉피는 그 자체로 일종의 트릭이다. 영화 공개 후 이어진 배우들의 인터뷰에서도 영화의 속을 숨긴 채 겉피만 드러내고 있으니 감독과 배우들의 관객을 속이겠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트릭>은 참 솔직한 영화다.

미디어가 가진 무서운 속성

 석진은 더욱 높은 시청률을 위해서 도촬, 사건조작, 몰카, 살인청부까지도 강행한다. 이를 도중에 눈치챈 석진의 후배와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희경(이희진 분)이 죄책감을 느끼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은 침묵하고 석진의 의도대로 진행된다.

석진은 더욱 높은 시청률을 위해서 도촬, 사건조작, 몰카, 살인청부까지도 강행한다. 이를 도중에 눈치챈 석진의 후배와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희경(이희진 분)이 죄책감을 느끼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은 침묵하고 석진의 의도대로 진행된다. ⓒ 이수C&E


우선, 이 영화의 겉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트릭>은 미디어가 가진 속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석진은 방송 업계에서 잘나가는 PD였다. 그러다 그가 다루었던 쓰레기 만두 파동으로 큰 피해를 입은 업체의 사장이 투신자살하는 일이 발생한다. 게다가 쓰레기 식품이라고 방송했던 것이 무죄인 것으로 밝혀지게 되면서 석진은 자리에서 내려와 지역으로 가게 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는 또 다시 시청률 욕심을 부리며 시청자들을 속이는 트릭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도준과 영애의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영애에게 병원비 부담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도준은 방송출연을 결심하고 석진의 의도대로 연기하며 시청자를 속이는 트릭에 함께 참여한다. 영애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히 방송을 즐기며 중독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석진의 트릭은 훌륭하게 성공하고 도준과 영애의 '병상일기'의 시청률은 날이 갈수록 고공행진을 한다.

그 과정에서 석진은 더욱 높은 시청률을 위해서 도촬, 사건조작, 몰카, 살인청부까지도 강행한다. 이를 도중에 눈치챈 석진의 후배와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희경(이희진 분)이 죄책감을 느끼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은 침묵하고 석진의 의도대로 진행된다. 시청자들도 다르지 않다. 석진의 의도대로 조작된 도준과 영애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으며 도준의 죽음마저도 하나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소비한다. 결국, 석진과 제작진들과 시청자들의 합작으로 비극적인 '병상일기'는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큰 성공을 거둔다.

도준과 영애의 거짓이 가득 담긴 삶은 마치 <트루먼쇼>를 보는 듯하다. 트루먼의 삶은 탄생부터 시청자들에게 방영된다. 그는 자신을 평범한 보험사 직원이라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모두가 크리스토프 감독의 연출로 만들어진 가짜다. 자신의 인생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트루먼은 무던한 노력끝에 결국 거짓된 그의 인생이었던 촬영장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소름돋는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줄곧 트루먼의 일상을 관음해오던 시청자들은 그가 진실을 깨닫자 바로 채널을 돌려버린다. 30년동안 트루먼의 거짓된 삶을 즐겨온 시청자들에게는 일말의 윤리적인 고민도 느껴지지 않는다.

'병상일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모습도 비슷하다. 도준과 영애의 삶을 비극적인 이야기로 소비하면서 시한부인 도준과 영애의 삶을 자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말의 윤리적인 고민이나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흥미롭고 비극적인 이야기로 그들을 소비할 뿐이다. 무비판적인 시청자들의 태도는 앞으로도 제 2, 제3의 이석진 PD를 만들어 낼 것이고 또 다른 '병상일기'를 만들어 낼 것임을 예상케 한다.

SBS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피노키오>에서는 '피노키오 증후군'이라는 가상의 병이 등장하였다.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이 병은 '피노키오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는 진실만을 전달할 것이라는 오해를 만들어낸다. 그로 인해 훌륭한 소방대원이었던 달포의 아버지에게는 불명예적인 오해가 씌워지고 달포의 삶은 망가질대로 망가진다. <피노키오>는 미디어에 나오는 내용이 사실일 거라고 쉽게 믿어버리는 대중의 속성을 '피노키오 증후군'이라는 가상의 병을 통하여 전달하며 미디어가 완벽한 진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대중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함을 이야기했다.

<트릭>의 이석진 PD를 만들어낸 것은 그의 시청률에 대한 탐욕만이 아니다. 사실은 무비판적으로 자극적인 미디어를 소비하고 믿어왔던 대중도 시청률에 미쳐 조작과 범죄까지도 서슴지 않는 이들과 함께하는 공범임을 <트릭>은 암시하고 있다.

어설픈 '트릭'의 함정

 차라리 복선이 복선이 아니라 감독이 치밀하게 준비한 맥거핀었다면, 그리고 영화가 결말을 보이지 않고 끝을 냈다면 <트릭>은 관객을 제대로 속인 영화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차라리 복선이 복선이 아니라 감독이 치밀하게 준비한 맥거핀었다면, 그리고 영화가 결말을 보이지 않고 끝을 냈다면 <트릭>은 관객을 제대로 속인 영화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 이수C&E


그렇다면, 이 영화의 내피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함의를 돋보이게 해줄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의 제목부터 외면적인 내용까지 감독은 관객을 속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너무도 솔직한 트릭에 오히려 김빠졌다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 듯하다.

영화의 중간에는 너무나도 뻔하고 눈에 띄는 복선이 당당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등장하는 것을 기점으로 관객은 시청률에 미친 석진의 탐욕을 지켜보던 시점에서 벗어나 이용당하고 있다고 여기던 도준과 영애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석진의 솔로 플레이라고 여기던 게임이 도준과 영애가 함께하는 멀티 플레이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숨겨놓은 반전에 관객이 도달하는 길이 너무 쉽다. 사실, 관객들은 도준과 영애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순간 이 이야기가 석진의 트릭뿐만 아니라 도준과 영애의 트릭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트릭의 전부이다. 트릭에 대한 힌트하나가 모든 트릭을 밝혀버린 꼴이다.

많은 관객들을 현혹시키며 화제를 만들었던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비교된다. 나홍진 감독은 많은 상징들을 영화에 등장시켰으나 그것들을 연결하며 결말까지 이어가는 길은 전혀 쉽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집마다 발견되는 해골모양의 금어초는 피해자들의 죽음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미지의 존재가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듯했으나 그 의미는 가볍게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독버섯은 극 중 인물들에게 비과학적인 현상을 이해하는데 일말의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실상은 본질과는 관련 없는 맥거핀(관객이 줄거리를 따라잡지 못하게 하는 히치콕식 속임수 장치 -편집자주)이나 다름 없었다. 나홍진 감독은 많은 상징들로 관객들을 낚고 몰입시켰지만 어느것 하나 쉽게 던져준 것은 없다. 관객을 몰입시키고 쫒도록 만든 상징들이 끝에 별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때 관객들은 보여준 것조차 더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영화관을 나온 이후에도 관객들이 <곡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본것도 의심하며 결말에 대한 열띤 토론을 이어나가도록 만들었다.

차라리 <트릭>에서 감독이 보여준 복선이 복선이 아니라 감독이 치밀하게 준비한 맥거핀었다면, 그리고 영화가 결말을 보이지 않고 끝을 냈다면 <트릭>은 관객을 제대로 속인 영화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감독이 선보인 복선은 그만큼 관객을 몰입시킬만한 흡입력이 있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내내 석진, 영애 등의 표정을 살피게 되었다. 관객이 눈치챈 복선을 다른 인물들도 눈치챘는지에 대한 의문은 표정 하나, 대사 하나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이 뻔하게 예상되다 보니 오히려 복선이 아닌 맥거핀이었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싶은 마음이 더욱 강력하게 들었다. 예상해버린 결말은 식상했고, 반값지 않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영화의 결말을 예상토록 만드는 복선과 예상에 전혀 벗어나지 못한 결말은 시너지를 만들어 결국 <트릭>을 뻔한 교훈을 던지는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가 결말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고, 복선이 알고보니 맥거핀이었음을 관객들에게 보여줬다면 <트릭>은 그동안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그대로 믿었던 대중이 <트릭>에서도 똑같았음을 시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뻔한 교훈보다 더 깊은 여운으로 관객들을 흔들 수 있었을 것이다. 뻔한 반전의 영화와 관객의 마음을 흔들만한 깊은 여운의 영화. 둘중에서 감독은 결국 쉬운 뻔한 반전의 길을 택해버렸다.

트릭 맥거핀 미디어 조작 시청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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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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