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해, 매기> 속 발렌틴과 매기는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부녀이다. ⓒ 와이드 릴리즈(주)
처음 '딸바보'를 꿈꾼 건 <아이 엠 샘>을 보고 난 다음이었다. 극 중 루시(다코다 패닝 분)처럼 사랑스러운 딸이 있다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거로 생각했다. 딸을 위해서라면 힘들게 번 돈이라도 얼마든지 갖다 바칠 수 있을 것 같았고, 딸과 함께하는 순간순간이야말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빛나는 시간일 것만 같았다. 말하자면, "자신보다 타인을 더 사랑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화 <사랑해, 매기> 또한 이처럼 뭇 남성들의 딸바보 판타지에 불을 지피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하루가 멀다고 여자를 바꿔 만나며 한량처럼 살던 멕시코 남자 발렌틴(유지니오 델베즈 분). 어느 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여자 줄리(제시카 린제이 분)가 그를 찾아와 덜컥 "당신의 딸"이라며 갓난아이를 맡기고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얽매이지 않는 삶을 원하던 발렌틴은 줄리를 찾아 미국을 향하고, 우연히 LA에서 영화 스턴트맨 일을 맡으면서 딸 매기(로레토 패랄타)와 단둘이 살게 된다. 이후 수년이 흐르고, 7살이 된 매기와 발렌틴의 이야기가 영화의 큰 줄기다.
부성애와 책임감이란 코드는 퍽 익숙하게 다가오지만, <사랑해, 매기>는 단순히 철없던 남자가 딸에게 헌신하며 '좋은 아빠'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오히려 매기를 통해 힘을 얻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발렌틴의 모습을 부각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닌 '아이와 살아가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 아버지가 단순히 딸을 아끼고 보호하는 영화가 아니다. 아버지 역시 딸을 통해 성장하고 더 성숙해진다. <사랑해, 매기>는 부녀가 함께 크는 영화이다. ⓒ 와이드 릴리즈(주)
어린 시절 아버지의 극단적인 교육 방식으로 고소공포증을 갖게 된 발렌틴이 수영장에 빠진 매기를 구하려 호텔 방 테라스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스턴트 촬영 현장에서 매기가 발렌틴을 위해 영어-스페인어 통역을 맡고, 촬영 중 '기절한' 그를 귀여운 주문으로 일으키는 장면들은 훈훈하다. 둘은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일방적 관계 대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로 마주한다. 부녀(父女)가 아니라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타는 건 중반 이후, 아이를 발렌틴에게 떠맡긴 줄리가 7년이 지나 두 사람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부터다. 그간 엄마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건 "세계 평화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하느라 바빠서"라고 믿고 있던 매기가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전개는 씁쓸하다. 이후 줄리가 매기에 대한 양육권을 얻기 위해 소송을 걸고, 발렌틴이 매기를 구김 없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만들어 낸 판타지들이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의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른다. "혼자 딸을 키우는 아버지는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아이 엠 샘>의 법정 장면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 매기 역을 맡은 신인 배우 로레토 패랄타. 그녀의 다음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 와이드 릴리즈(주)
멕시코에 살던 발렌틴이 돌연 미국에 자리 잡고 스턴트맨이 된다는 설정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매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겪는 싱글파파로서의 어려움과 고민이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졌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아쉬움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만큼 <사랑해, 매기>는 사랑스러운 영화다. 감독과 주연배우를 겸한 유지니오 델베즈가 그려낸 밝고 유쾌한 세계가 그렇고, 돌연 멍해졌다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즈음에서야 비로소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마지막 반전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매기 역을 맡은 12살 신인배우 로레토 패랄타를 보는 것만으로 이 영화의 의미는 충분하다. 단언컨대 '매기' 앞에서 그 누구도 아빠(또는 엄마)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오는 2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