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의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의 성우 교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게임 <클로저스>의 신규캐릭터 '티나'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김자연 성우가, 티셔츠를 입고 찍어 올린 트위터의 글이 논란의 시작점이었다. 티셔츠에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여자에게는 왕자가 필요없다)"라고 적혀 있었다. 티셔츠의 문구가 문제였을까? 아니었다. 문제의 원인은 이 티셔츠가 <메갈리아>를 후원하는 티셔츠라는 점이었다. (관련 기사 : 한국 게임이 또... 넥슨은 왜 죄 없는 성우를 하차시켰나)

오마이뉴스에서 "한국 게임이 또... 넥슨은 왜 죄 없는 성우를 하차시켰나" 기사가 나간 이후,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릴 만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 시작했다. 댓글의 다수는 기사가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일까?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고 논란에 대해서 찾아보면서 몇 가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사람들이 주장하는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김자연 성우의 SNS에 올라온 글. 당연한 문구가 들어간 이 티셔츠는 <메갈리아4>의 후원티셔츠라는 이유만으로 일베와 비교되며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메갈리아4>가 일베와 비슷한 집단이라는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김자연 성우의 SNS에 올라온 글. 당연한 문구가 들어간 이 티셔츠는 <메갈리아4>의 후원티셔츠라는 이유만으로 일베와 비교되며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메갈리아4>가 일베와 비슷한 집단이라는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 @KNKNOKU


먼저, 티셔츠의 문구가 별다른 문제가 없는 문구라는 데는 다수가 동의했다. 다만, 티셔츠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티셔츠가 후원하는 단체가 <메갈리아>라는 게 문제라는 의견이 많았다.

김자연 성우가 입은 티셔츠는 정말 <메갈리아>라는 단체를 후원하는 티셔츠였을까? 한 가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이 티셔츠는 <메갈리아>에서 만들어진 티셔츠가 아니라 <메갈리아4>에서 만들어진 티셔츠라는 점이다.

넘버링만 되어 있을 뿐, <메갈리아>나 <메갈리아4>나 똑같은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와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의 운영 주체가 같다는 둥, <메갈리아>가 선전·선동을 위해 위장해서 만든 페이지라는 둥 여러 루머가 있다. 그러나 확실히 말하자면, <메갈리아4>는 <메갈리아>의 일부 전략과 의견을 달리하여 갈라져 나와 만들어진 페이지이다.

<메갈리아4>의 포스팅들을 살펴보면, 온라인에서 <메갈리아>의 만행이라면서 <메갈리아>가 남혐단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게시글과는 관계가 없다. <메갈리아4>의 경우 '유리절벽'에 대한 포스팅이나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룬 게시글들을 통해서 페미니즘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가 같다는 건,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이 동일한 정당이라는 것과 비슷한 주장이다. (정의당이 통합진보당에 비해 더 나은 정당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두 정당의 방향성이 다르고, 구별되어야 하는 단체임을 뜻한다.)

여전히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메갈리아>의 만행이라는 이름의 게시글이 많이 올라온다. 대부분의 내용은 <메갈리아>가 초창기부터 내세웠던 미러링 전략을 통해 만들어진 게시물이다. 기존에 많은 커뮤니티에서 유포되고 있던 여성혐오의 게시글을 복사해 주어를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꾼 콘텐츠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혐오에 대한 무감각해졌던 사람들에게 '점화'의 장치로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미러링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미러링의 방법이 여성혐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는 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일간베스트 저장소'(아래 일베)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로 몰아세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일베나 메갈이나'와 같은 등식이 자리 잡혀 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처럼 정말 일베와 <메갈리아>는 다를 게 없는 커뮤니티일까? 우선 그것을 따지기 위해서는 일베가 어떤 곳인지부터 이야기 해야한다.

일베에 대한 분석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해왔다. 공통된 의견은 일베의 지배적인 성향이 혐오라는 점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 진보적인 의제에 대한 혐오, 장애인에 대한 혐오 등 일베는 우리 사회의 상대적인 약자들을 상대로 혐오를 내세우며 활동해왔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하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이라는 행위를 서슴없이 행하고,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에는 추모를 하러온 여성들의 사진을 올리며 외모를 평가하고 비하하는 표현을 남발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일베는 약자에 대한 혐오가 전부인 혐오주의자들로 '한줄요약'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메갈리아>를 일베와 동일한 집단으로 분류하는 게 옳은 것일까? 동의하기 어렵다. <메갈리아>는 미러링 전략 탓에 남성혐오 사이트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분명 미러링이라는 방법이 누군가에게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아슬아슬한 방법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메갈리아>가 행하고자 하는 목적과 그것이 가져온 영향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제껏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여성혐오를 무의식적으로 용인해왔나. '김치녀'는 일부 몰상식한 여성들만 비하하는 말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식으로 여성혐오에 동조했다. 여성을 비하하는 프로그램을 '남자끼리' 보며 아무렇지 않게 여성혐오를 소비해왔다. 그런 흐름을 끊고 소라넷의 문제성을 부각시켜 폐지시키고 <맥심>의 표지의 문제점에 대해 알린 것이 바로 <메갈리아>다. 게다가 <메갈리아4>는 몇몇 사람들의 주장처럼 남성혐오로 느껴질만한 게시글을 올리는 곳도 아니니 더욱 일베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간추리면, 우선 해당 티셔츠는 <메갈리아> 커뮤니티를 후원하는 티셔츠가 아니라 <메갈리아4>의 페이스북 소송을 후원하는 티셔츠이며, 설사 <메갈리아>라고 하더라도 <메갈리아>는 일베나 IS 등과 비교되면서 폄하받을만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티셔츠의 문구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지당한 문장.

여성혐오에 대한 대처가 안타깝다

 <여성시대>가 서울메트로측에 제출한 광고 시안. 남성혐오적이라는 서울메트로측의 주장과는 다르게 당연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성시대>가 서울메트로측에 제출한 광고 시안. 남성혐오적이라는 서울메트로측의 주장과는 다르게 당연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 여성시대


그렇기에 이번 넥슨과 나딕게임즈의 대처는 상당히 섣불렀다고 생각한다. 논란이 생길만한 문제에 대해 소비자들의 인식을 신경 썼다고 해도, 넥슨의 대처는 너무 빨랐다. 빠른 성우의 교체는 논란에 대한 진지한 고심보다는 그저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도망으로 보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여성혐오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 도망치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곳이 넥슨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한 카페인 <여성시대>에서는, 여성인권 문제에 대한 광고를 내기 위해 회원들의 기금을 모아 서울메트로측에 전달했다. 게재된 광고에는 "여성의 싫어요는 싫어요입니다", "성범죄 교육 '하지마'라고 가르치는 게 우선입니다", "여자의 말을 왜곡하지 마세요"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서울메트로측은 해당 광고들에 대해서 민원이 다수 들어왔으며 광고가 남성비하적이라는 이유로 13개의 광고 시안 중에서 10개의 광고를 불가 판정을 내렸고 게시되어있던 광고들도 수거한 상황이다. (관련 기사 : 성형은 되고, 성평등은 안돼? 서울메트로 광고 논란)

애초에 어떤 부분이 남성혐오적인 요소인지도 의아하고, 계약서까지 작성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서울메트로측은 지하철은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광고는 피하려는 이유라고 밝혔다. 여기에서도 해당 광고들이 정말 남성혐오적인 내용인지나 기존의 광고들이 여성혐오적인 내용이 있었는지에 대한 고심 없이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서 광고를 내린 서울메트로측의 대처가 보인다.

김자연 성우가 입었던 티셔츠가 판매되었던 계기는 페이스북 코리아의 이중잣대였다. 페이스북은 <메갈리아2>와 <메갈리아3> 등의 페이지를 돌연 삭제했다. 반면에 <김치녀> 등의 페이지는 "기업이 김치녀들을 채용하지 않는 이유", "김치녀 척결하는 상남자" 등의 여성혐오 게시글을 계속 게시하는 중이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때문에 <메갈리아4>에서는 이에 법적인 대응을 하기로 하고 그에 관련한 기금을 마련하고자 했다. 여성혐오는 방관하다가 이에 반대하여 미러링을 행하는 페이지만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건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이를 항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티셔츠로 인해 한 성우가 교체되는 건 더더욱 아이러니하다.

이렇듯 국내의 몇몇 기업들의 여성혐오에 대한 논란에 대해 일방적으로 회피하기만 하는 대처들은 전혀 발전적이지 못하다. 또한, 최근 사회가 '여성혐오단체 vs. 남성혐오단체'라는 이상한 갈등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엄연히 말해, 현 상황은 두 종류의 혐오가 충돌하는 게 아니다. 여성혐오는 단지 일베 등의 혐오 커뮤니티만이 행해오던 것이 아니라 사회에 만연해있던 현상이며, 그 반대에 있는 남성혐오는 실체가 없는 전략적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관련 기사 : '메갈' 린치하는 자들, 여혐은 왜 보고만 있었나)

이제서야 우리는 기존 사회에 만연해 있던 여성혐오에 대해서 문제를 인식하고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메갈리아>의 등장 덕분에 이제는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것이 불편한 줄 몰랐던 이들도 과거부터 해왔던 행동이 잘못임을 깨닫고 반성하는 계기 역시 마련했다.

여성혐오를 반대하며 성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남녀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또한, 김자연 성우가 교체 된 것이 인과응보라는 주장에도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여성혐오는 과거부터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한다. 우리는 이전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문제로 인식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웹툰 작가들의 살생부가 만들어지고, 진보로 분류됐던 온라인 커뮤니티는 해당 작가들의 웹툰을 검열해야 한다며 나섰다.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의 논평은 수많은 반발에 의해 무산되고 탈당 행렬이 지속되고 있다. 이 광기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던 김자연 성우를 응원한다.

#넥슨_보이콧
#김자연성우를_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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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 클로저스 넥슨 김자연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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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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