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영국 합동사령부의 작전 지휘관 파월 대령(헬렌 미렌)은 작전의 성공을 위해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영국 합동사령부의 작전 지휘관 파월 대령(헬렌 미렌)은 작전의 성공을 위해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 판시네마(주)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언제나 흥미로운 이유는 전쟁이라는 행위 자체가 지닌 모순에 있습니다. 평상시의 인간 사회는 살인을 금기로 여겨 엄벌을 내리지만, 전쟁 상황에서는 오히려 적으로 규정된 인간을 살해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독려합니다. 또한, 전투 중 민간인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규범을 강조하지만, 실제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피해에 대해 보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전쟁을 다룬 영화가 실감 넘치는 전투 장면의 스릴이나 액션의 규모만 강조할 뿐, 중심인물들이 겪는 딜레마나 내적 갈등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이 장르의 핵심을 놓쳤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라는 비판을 받는 <콰이강의 다리>, <나바론 요새>, <지상 최대의 작전> 같은 냉전 시대의 전쟁 액션 영화들도 극한 상황에 처한 중심인물들의 두려움과 고민을 다루는데 인색하지 않았거든요.

전쟁 속 사람을 비춘 영화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정치 관료들은 작전이 처한 딜레마 상황에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결정을 미룬다. 감독개빈 후드는 이렇게 지연되는 시간을 통해 서스펜스를 극대화 하였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정치 관료들은 작전이 처한 딜레마 상황에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결정을 미룬다. 감독개빈 후드는 이렇게 지연되는 시간을 통해 서스펜스를 극대화 하였다. ⓒ 판시네마(주)


이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도 그렇습니다. 21세기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드론을 활용한 전투 작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의 진짜 관심사는 작전에 연관된 사람들이 겪게 되는 딜레마에 있습니다. 실제 작전 상황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심리적 거리, 지휘 계통에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고민을 하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지요.

영화 속에서 작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작전의 최일선에서 드론을 조종하여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목표물과의 심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운 상태입니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제시된 딜레마 상황에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윗사람들에게 재고를 요청합니다.

두 번째는 지휘 계통에서 중간쯤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군인과 관료 정치인으로 또다시 구분됩니다. 현대 군사 작전에서 정치 외교적인 문제가 결부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반영한 설정이지요. 군인들은 작전의 성공을 위해 매진하며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고, 정치인들은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자신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세 번째는 최종 결정권자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작전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머리로만 파악하고 있으면서, 원칙에 입각한 처리를 강권합니다. 작전의 당위성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요. 잘못되었을 경우 책임은 자기가 질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 비난의 화살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향하게 될 게 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깨닫게 되지요. 전쟁 결정은 권력의 최상층부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결정에 따른 위험 부담은 아랫사람들이 나눠서 떠안게 된다는 것, 그리고 지휘 계통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감수해야 할 위험 부담의 크기는 더 커진다는 것, 제일 고통받는 사람들은 실제 작전 대상이 되는 지역의 민간인들이라는 것을요.

전쟁의 딜레마... 결국 전쟁은 전쟁

이러한 특징은 전쟁뿐만 아니라 현대 국가의 관료적 위계에 따른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작전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정책의 혜택을 받는 국민으로, 말단 군인부터 정치가들까지를 일선 공무원으로, 최종 결정권자를 최고 권력자로 바꿔 놓고 보면 완전히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주요 딜레마 상황을 다루는 사람들의 태도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대의명분을 얻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싸드 배치 등 국가적 현안을 다루는 우리나라 정부의 미숙한 태도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지요. 현 정권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행동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물론 이 정권의 근본적인 한계는 최고 권력자의 심각한 자질 부족에 있습니다만.

이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가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첨단 과학 기술을 통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더라도, 또는 정당한 절차를 지키고 누구나 수긍할 만한 대의명분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전쟁은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적으로 규정한 사람들을 살해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은 죽거나 다칠 위험성은 여전히 상존하며,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이 치러야 할 육체적, 정신적 대가 역시 큽니다.

어쩌면 전쟁이 가져올 직접적 이익을 크게 누리는 최종 승자들은 최상층 권력자들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위험 부담은 전혀 지지 않으면서 전쟁으로 얻은 이익은 누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국가가 전쟁을 선동하거나, 언뜻 보기에도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정책을 밀어붙일 때 권력자들이 무슨 이익을 얻게 되는지 꼼꼼히 따져 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에 현혹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포스터. 전쟁의 끔찍함은, 그 전쟁이 대의명분을 갖춘 것이라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포스터. 전쟁의 끔찍함은, 그 전쟁이 대의명분을 갖춘 것이라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 판시네마(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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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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