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밀은 없다>의 포스터 및 스틸 사진.

어른들이 권력을 다투는 가운데 아이들이 죽어간다. ⓒ CJ엔터테인먼트


<비밀은 없다>는 봉준호의 <마더> 이후 끊긴 줄 알았던 한국 스릴러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이다. 한 사회에서 가장 강박적인 영역(=리비도가 쏠리는 부분)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스릴 즉, 진정한 긴장의 새로운 형태들이 발굴될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 경쟁에서 제1의 가치를 갖는 이미지 정치, 어른들 권력다툼의 축소판인 고등학교 왕따 문제가 이 영화가 포착한 우리 사회의 '검은 우물'들이다.

장르 영화이므로 관객 대중의 이해 가능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영화는 다소 난삽하고, 정치적 주제(동성애, 아웃사이더의 하위문화, 대의 정치의 구조적인 부패 등)에 관한 명료하고 집중적인 설득에는 실패했다.

이 영화의 위대한 착안점은 너와 나의 관계가 사적일 때와 공적일 때 서로 배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 성원끼리는 서로 해치지 못한다. 현대사회에서 가족은 공동체의 유일한 잔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가 공적 사회를 우회해서 간접적으로 형성되면 그 두 사람은 사회의 부조리함에 편승하여 서로 해치게 된다.

이러한 착안은 브레히트가 <사천성의 선인>에서 보여준 바 있다. 착한 여주인공은 가족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 관용적으로 대하지만, 생존을 위협하는 무자비한 시장경제의 자영업자로서는 (남자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박대하고 추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주제는 인간의 허약함·분열 따위가 아니다. 한 인간을 이율배반적으로 분리하는, 완전히 쳐부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부조리한 현대 사회체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비밀은 없다>의 포스터 및 스틸 사진.

딸을 위해 나서는 엄마. 하지만 <비밀은 없다>는 이전의 다른 영화들과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 CJ엔터테인먼트


자녀의 복수를 위하여 엄마가 나서는 11년 전 영화, 방은진이 감독한 <오로라 공주>(2005)와 비교해보자. 두 영화는 비슷하게 건강하다. 이전 영화의 주인공 엄정화가 킬러이자 자살 특공대였고, 해소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울분과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유했다면, 이 영화의 손예진은 종종 악다구니처럼 소리를 지르기는 하지만 거의 지능적 추리를 하는 셜록 홈스에 접근해 있다. 이제 디오니소스적인 2000년대 분위기는 사회구조의 미로를 따라 탐험하면서, 분별력 있게 추리하는 계략적 전투로 이동한다.

비록 스릴러는 아니지만 <우아한 거짓말>(2014)에서 자살한 딸의 삶을 차분하게 복기하는 김희애와 손예진은 닮았다. <비밀은 없다>와 가장 가까운 영화는 역시 여성감독 정주리의 <도희야>(2014)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희생되고 괴물로 취급당하는 여성 약자를 자기 자신도 '결함'을 지닌 여성(배두나는 성 소수자, 손예진은 전라도 출신)이 보호한다는 점이다. 파토스보다는 에토스에 의존하고, 정감 어린 포옹을 하면서도 냉철하게 추리하는 세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박해당하는 여성이다. 이들을 사회를 측정하는 화자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위임하는 것이 관객에게 최선의 설득력을 가진다고 영화 제작자들은 판단했음이 틀림없다. 아마도 2010년대 중반기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악마를 보았다>, <해무>나 <곡성> 같은 스릴러와 비교하면 이 영화가 얼마나 건강한지는 자명하다. 세 영화의 흐느낌은 불순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다가 결국 그 부조리는 운명이며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후 그 결론을 신비화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을 만드는 예술가들은 "종말이 다가왔다", "무서운 지옥 불이 기다린다"는 웅변을 실감 나게 할수록 더 많은 헌금을 얻는 부흥회의 일부 목사님들을 연상시킨다.

결론적으로, <비밀은 없다>는 "너희들이 숨길 수 있는 비밀은 없다"라고, 희생당한 고등학생의 어머니가 가해자들에게 을러대는 영화다. 그것은 자신의 역량을 시위하는 표현이다. 주인공 손예진은 엄정화처럼 과잉 파토스에 묻히지도 않고, 스릴러에 능한 남성 감독들의 작품들처럼 추락의 강렬함에 매혹되어 있지도 않다. 김희애와 배두나처럼 그녀는 또박또박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자신감을 느끼고 있고, 부패를 덮으려는 강자의 음모를 -그 강자가 아무리 자신과 특수관계라 할지라도- 꾸짖는다.

 영화 <비밀은 없다>의 포스터 및 스틸 사진.

영화 <비밀은 없다>의 포스터. 이 영화의 외침은 무겁다. 손예진의 목소리이기에 더더욱. ⓒ CJ엔터테인먼트



스릴러 비밀은 없다 복수 브레히트 여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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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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