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과 선역을 넘나들고, 아침드라마에서 영화까지 폭 넓게 활동하는 배우를 한번 꼽아보자. 막상 머리에서 맴돌 뿐 쉽게 꼽을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다. 영화면 영화, 드라마면 드라마로 주로 출연하는 이들이 '보통은' 갈린다. 물론 최근 들어 그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우와 영화 스크린에서 보는 배우가 다른 건 사실이다.

김태훈은 그런 점에서 양쪽을 두루 그리고 자유롭게 오가는 '드문' 배우 중 하나다. 독립영화 <약탈자들>(2009), 그리고 상업영화 <아저씨>(2010)로 강한 인상을 남겨온 그는 MBC 아침 드라마 <당신 참 예쁘다>(2011), SBS <비밀의 문>(2014) 등으로 대중에게 더욱 친숙해졌다.

그리고 이젠 영화 <트릭>이다. 지난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훈에게 넓고도 깊은 보폭의 비결을 물었다.

 영화 '트릭'에 출연한 배우 김태훈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날리며 매력 넘치는 눈웃음을 짓고 있다.
김태훈은 "극중 폐암 말기 환자 역활을 맡아 마음껏 웃지 못했다"며 이날 인터뷰에서는 밝은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해줬다.

영화 '트릭'에 출연한 배우 김태훈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날리며 매력 넘치는 눈웃음을 짓고 있다. 김태훈은 "극중 폐암 말기 환자 역활을 맡아 마음껏 웃지 못했다"며 이날 인터뷰에서는 밝은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해줬다. ⓒ 유성호




시한부 환자, 그리고 반전

<트릭>에서 그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암 환자가 됐다. <병상일기>라는 다큐멘터리에 아내 영애(강예원 분)와 함께 출연하며 대중의 동정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다. 시청률에 목매며 재기를 노리는 방송사 PD 석진(이정진 분)에게 강한 불만을 갖고 있지만 아내의 생계와 치료비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온갖 조작 방송에 응한다.

김태훈에게 <트릭>은 치밀한 반전을 노린 스릴러라기 보다는 서로 입장이 다른 세 캐릭터가 벌이는 감정싸움의 묘미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싸움의 원인은 진실과 진심에 대한 예민함이다. 우리 주변 미디어들이 전하는 소식이 과연 진실인지, 선의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마음이 진심인지 의심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작품이다. 특히 환자 도준(김태훈 분) 입장에선 방송이 거듭될수록 태도가 점점 변하는 영애가 두려움의 대상이자 원망의 대상이 된다.

"스릴러의 탈을 썼지만 반전에 대한 강박이 없어서 좋았어요. 마지막에 덧붙여지는 약간의 반전요? 관객을 위한 일종의 보너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기자 분들이 기사를 쓸 때 자기 생각을 은연중에 반영하듯 영화 속 인물들도 그런 시도를 하잖아요. 어찌 보면 거짓이죠. 왜 영화 찍을 때도 감독님들 중에서 작품을 위해 배우들을 일부러 화나게 만드는 경우가 있거든요. 방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종의 기술인데 <트릭> 속 석진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영화 이후 사람과 사람 사이 도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살면서 진심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기를 배우면서 항상 고민했던 부분이죠. 예전엔 가벼운 거짓말도 하고 그리 살다가 나 자신을 깨야 연기를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진짜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그걸 깨 나가야죠. 저 역시 진심이 느껴지는 분들에게 호감이 가고 마음이 열려요. 중요한 덕목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진심들이 모여 이 세상을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한계와 제한은 없다

 영화 <트릭>에서 시한부 환자 도준 역을 맡은 배우 김태훈

영화 <트릭>에서 시한부 환자 도준 역을 맡은 배우 김태훈 ⓒ 유성호


대학에서 극단 생활을 하다 2002년 데뷔 이후부터 시간이 꽤 지나기까지 김태훈은 '김태우의 동생'으로 묘사되곤 했다. 친형인 김태우와 비슷한 외모를 가졌고, 연기력 또한 뒤지지 않기에 비교되는 기사 또한 종종 나왔다. 그간 형의 덕을 좀 봤던 걸까? 굳이 따지자면 김태훈은 '자수성가'형이다. 방송사 PD를 막연하게 생각하다 점수에 맞춰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이후 그는 연기의 참맛을 알게 됐고, 거기에 헌신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학부생 때 돌연 결정한 일본 유학이다. 김태훈은 "배우를 하려면 혼자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 게이오 대학에 진학해 관련 수업을 듣기도 했다. 스스로는 "유학이라 말하기도 쪽팔린 시간"이라 고백했지만 10개월 동안 일본에 머물며 그는 일본 감독 소노 시온 등의 스태프로 일하며 자신을 갈고 닦았다.

"처음에 PD를 생각한 건 단순히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에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죠(웃음). 방송일이나 광고일은 뭔가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일이라 생각한 거 같아요. 연기가 재밌더라고요. 그렇다고 마약 같다? 그 정돈 아닌 듯해요. 자양강장제 정도랄까? (웃음) 연기자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상처도 받고 때론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연기했으면 좋겠어요.

큰 무대에 진출하거나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지만요. 정말 갈망하듯 격하게 원하진 않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지내다가 기회가 오면 잘 연기하고 싶어요.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고 싶기도 한데 물론 그러진 않겠죠(웃음). 저의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침드라마든 뭐든 장르가 뭐든 그때그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하는 편입니다.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이죠. 여러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거요.

주연, 조연, 독립영화, 상업영화 가리지 않아요. 저로 하여금 상상하게끔 하고 마음이 동하게 하는 시나리오 라면요! <트릭> 역시 좀 다른 결이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한 거예요. 잘만 표현하면 참 신선한 작품이겠다고 여긴 거죠."

편안하고 유쾌한 답이었다. 김태훈은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그의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의 비법은 아닌지. 그렇다고 아주 마음 편하게만 지내는 건 아니다. "슬슬 터닝 포인트가 될 작품이 하나 더 나와야 할 시점"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었다.


김태훈 트릭 강예원 이정진 조작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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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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