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정치부 기자들이 가장 정성들여 한 일 중의 하나는 아마도 '친노 계보' 정리하기였는지도 모른다. 친노, 비노, 반노. 혹은 범친노, 친노직계, 친노친문, 친노비문, 비노친문 등등. 세상을 뜬 지 7년이 넘어가도록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작게는 야당, 크게는 정치판 전체의 구도와 성향을 가름하는 시금석 노릇을 한다.

정치인들 사이에서만 살아있는 이름도 아니다. 그 이름은 수많은 사람들을 울게 하고, 화나게 하며, 추모와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조롱과 저주의 대상이기도 하다. 해마다 그가 세상을 떠난 5월이면 그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김해의 봉하마을에는 수십만 명의 참배객이 몰리지만, 동시에 인터넷 세상의 구석진 어느 곳에서는 그의 삶과 죽음을 비웃는 합성사진과 그림 따위가 끝도 없이 만들어지고 유포된다.

그래서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 편 만들어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아직 한 편도 없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영화를 만들어, 어떻게 소비할 것이며, 어떻게 남겨야 할 것인가일 것이다. 어차피 다큐멘터리 한 편 가지고 그에 관한 이견과 논쟁을 정리하거나 중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그 영화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영화는 올 가을 개봉 예정이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영화는 올 가을 개봉 예정이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올 가을에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노무현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후반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전인환 감독과 김원명 작가. 영화의 제목은 <무현, 두 도시 이야기>다. 전인환 감독은 영화와 미술을 공부한 뒤 몇 편의 극영화에서 조연출을 맡았고, 김원명 작가는 글도 썼지만 디자이너로서 더 많은 활동을 해왔다. 각자 감독과 작가로서 한 편의 장편영화를 책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떤 영화가 만들어지게 될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김원명 작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덕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과 부산에서 오랜 세월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온 김희로 선생이다. 시인이었고, <사상계>의 편집주간을 맡아 장준하 선생과 함께 일했으며, 노무현을 비롯한 영남지역의 여러 민주인사들과 함께 부산민주시민협의회(이하 부민협)를 만들고 부회장을 지내기도 한 이다.

아버지의 동지였던 장준하 선생이 죽음을 당했던 날은 김원명 작가에게도 작은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 날 그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고, 약사봉을 향하던 버스에서 장준하 선생의 무릎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혼자 산 위로 올라갔던 장준하 선생의 사고 소식이 들려왔고, 자신을 돌보느라 선생을 수행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원망하는 동지들도 많았다. 숱한 고난과 고통과 자괴감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잠시 사회운동을 멀리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1980년대 중반에 투쟁의 대열로 돌아왔다. 부민협은 아버지 김희로 선생에게 장준하 선생의 못다 이룬 약속을 위한 한 걸음이기도 했다.

"(1987년) 2.7 박종철 추모 집회 때였어요. 그 때 부산에서 그 집회를 주도한 게 저희 아버지하고 송기인 신부님, 또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통했던 김광일 전 의원, 노 대통령 등 몇 분이었어요. 그런데 노 대통령이나 김 의원 같은 분들은 변호사니까, 구속까지는 안 됐는데 저희 아버지는 그 때 시인으로 활동하셨지만 경찰에서 보기엔 사실 무직이나 다름 없잖아요. 바로 구속이 되신 거죠.

그 때 바나나를 한 봉지 사 들고 저희 집을 찾아온 노무현 변호사를 처음 봤어요. 사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인 데도, 자신은 풀려나고 아버지만 구속된 게 너무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를 하더라고요. 그게 기억에 남았어요." (김 작가)

아버지와 아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김희로 선생(좌)과 김원명 작가(우)

▲ 아버지와 아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김희로 선생(좌)과 김원명 작가(우)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헌법이 만들어졌고, 노무현 변호사는 부민협을 대표해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민주투사가 스스로 독재자라 부르던 세력과 손을 잡는 정치판의 논리 속에서 노무현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듯 보였고, 무수한 낙선과 좌절을 거듭했다. 민주화운동의 도시 부산은 순식간에 '여당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곳'으로 뒤집혔고, 노무현은 그를 지지하는 쪽과 조롱하는 쪽 모두에서 '바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지지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대통령이 된 뒤에는 비판하기도 했어요. 정치인으로서 잘 한 일도 있지만 잘못한 일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과거의 노무현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 노무현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보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는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노무현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실천하다가 어떤 성과를 내고 어떤 실수를 했는지 보다도,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 노무현에 대한 각자의 기억 속에서 그걸 찾고 모아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 작가)

전인환 감독은 생전의 노무현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생전의 노무현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한 적도 없고, 특별한 지지의 대열에 선 적도 없다.

"별다른 인연도 없고, 뚜렷한 정치적인 입장도 없어요. 한 가지 인연이 있다면, 무슨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영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때 그냥 카메라를 들고 시청 앞으로 나갔어요. 그래서 운구 행렬과 사람들의 모습을 찍고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올 줄은 몰랐죠.

그런데 사람들에게 한참 밀려서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론가 계속 가다보니까 운구차량에 닿게 되더라고요. 바로 제 몸과 닿아있는 차 안에 관이 있고, 그 안에 노무현 대통령이 누워 있었죠. 순간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죽음과 삶. 정치인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 때 뭔가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7년 뒤 김원명 작가님과 만나게 되면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됐죠." (전 감독)

지금 우리에게 노무현이란?

이전까지는 서로 만난 적도 없었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친노'라고 할 수도 없는 두 사람이 만나서 노무현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유일한 공감대는 '노무현이 누구인지보다 지금 우리에게 노무현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이었고, 그 위에서 각자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노무현을 기억하거나 추모하거나 원망하는 이들을 만나가기 시작했다.

영화는 살아있던 과거의 노무현을 담은 필름과 죽은 노무현을 기억하는 현재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고 간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시절의 기록영상들 외에 노무현 대통령의 수행 사진사 장철영 작가의 미공개 사진들이 영화의 한 편을 채운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신문지국에서, 선거현장에서, 또 포장마차에서 고인 노무현에 대해 떠올리거나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다른 한 편을 채운다.

"노무현 이야기가 나오면 우는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이라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어요. 또 노무현 이야기 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분도 있고요. 김 작가의 아버님인 김희로 선생님은, 노무현이 이미 부활해서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있다고 말씀하기도 했어요.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노무현의 현재적인 의미가 보인다고 생각해요." (전 감독)

노무현의 일상 노무현 대통령 수행사진사 장철영 작가의 미공개 사진들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 노무현의 일상 노무현 대통령 수행사진사 장철영 작가의 미공개 사진들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영화의 제목 '두 도시 이야기'는 중의적이다. 하나는 물론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차용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정치인 노무현이 평생 품었던 꿈 '지역주의 극복'을 상징하는 영호남의 두 도시 부산과 여수다.

우선 영화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안고 살았던 화두 중의 하나인 지역주의의 오늘을 이야기한다. 디킨스의 소설 속 두 도시가 런던과 파리였다면, 이번 영화 속 두 도시는 부산과 여수다. 특히 영남 패권의 지역주의가 전이시킨 또 다른 형태의 지역주의와 싸우겠다고 나섰던 '여수의 무현' 백무현 후보는 바보 노무현의 꿈과 기억에 대한 2016년식의, 그 나름의 재해석이었다.

신문사에서 시사만화를 그리던 백무현은 노무현의 죽음을 겪은 뒤 '거꾸로 가는 세상의 방향을 되돌리기 위해'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캠프에서 일했고,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향인 여수을 지역구에서 출마해 '지역맹주' 주승용 의원의 아성에 도전했다. 선거운동 기간중에 말기 암을 선고받고도 멈추지 않았던 그 무모한 도전이 좌절하는 우울하고도 처절하지만 여운 짙은 과정 역시 이 영화의 한 부분이다.

또 다른 하나, 디킨스 소설의 제목을 차용한 이유는 오늘 대한민국의 상황이 200년 전 파리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디킨스 소설의 배경이 1800년대니까 200년 이상 흘렀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소설에 보면 혁명 와중의 인간 군상들이 나오는데, 아무 합리적인 이유도 없고 설득도 없이, 각자 자기 것을 가지고 나와서 치고받거든요. 또 한 개인 안에서도 정의와 욕망이 충돌하고요. 정의를 추구하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정의에 대한 이상을 부인해야 하는.

하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은 이런 모순과 갈등을 그냥 방치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하거든요. 싸움은 계속 돼야 한다는 거죠. 주장하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싸움, 그리고 내적으로도 정의와 욕망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싸움 말이지요. 그런 점이 지금의 시대와 맞아 떨어진다고 봤어요." (김 작가)

노무현을 기억하는 방법

노무현은 늘 졌다. 그리고 가끔 승리했다. 늘 지던 이가 한 번 이기는 것을 사람들은 '드라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노무현의 승리에 많은 이들이 환호하기도 했지만, 드라마에 환호하는 이들은 시청자일 뿐 동지가 아니었다. 승리의 순간에 박수를 보내던 이들은 곧 돌아서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거대언론과 권력기관들이 만들어놓은 스크린 뒤의 진면목과 자초지종을 굳이 알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노무현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의 삶에서 마주했던 마지막 싸움에서도 졌다.

늘 졌고 최종적으로도 졌던 노무현을 기억하고, 원망하고, 아쉬워한다는 것은 어쨌거나 문제의식이다. 그가 했지만 잊힌 일들, 했다고 믿었지만 무너진 일들, 해야 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 감독과 김 작가는 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답 대신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화두를 빌려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그것을 매개로 무엇을 비판하고 있으며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또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가.

전인환 감독의 삼촌인 가수 전인권이 이 영화를 위해 '걱정 말아요 그대'를 다시 불렀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라는 대목보다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라는 노랫말에 작가와 감독의 뜻이 실려 있지 않을까 싶다.

노무현을 기억하는 방식들 2대째 한겨레신문 지국을 운영하거나 소년교도소에서 연극을 가르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정치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 노무현에 대한 기억과 생각을 이야기한다

▲ 노무현을 기억하는 방식들 2대째 한겨레신문 지국을 운영하거나 소년교도소에서 연극을 가르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정치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 노무현에 대한 기억과 생각을 이야기한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제작위원회



덧붙이는 글 인터넷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펀딩21(www.funding21.com)에서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후반부 작업을 위한 제작비를 모금하고 있다. 7월 22일 자정까지 목표액 1억 원이 설정된 가운데 7월 11일 현재 달성률은 95%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전인환 김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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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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