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박호열

관련사진보기


ⓒ 박호열

관련사진보기


안산초등학교 정문 왼쪽 꿈벽화길을 따라 150m 옹벽에 새겨진 벽화 ‘희망-세월호의 기억.’ 종이비행기가 다양한 색채의 희망을 담아 날아가다(사진 아래), 무지갯빛 꿈을 꾸며 노는 아이들을 지나(사진 중간), 점점 노란색 비행기로 변하며 드디어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 세월호의 기억 노란리본과 만난다(사진 위).
 안산초등학교 정문 왼쪽 꿈벽화길을 따라 150m 옹벽에 새겨진 벽화 ‘희망-세월호의 기억.’ 종이비행기가 다양한 색채의 희망을 담아 날아가다(사진 아래), 무지갯빛 꿈을 꾸며 노는 아이들을 지나(사진 중간), 점점 노란색 비행기로 변하며 드디어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 세월호의 기억 노란리본과 만난다(사진 위).
ⓒ 박호열

관련사진보기


"형형색색의 종이비행기가 뭉게구름을 타고 하늘을 유영하고 있다. 하늘에 꽃핀 무지개에선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 삼아 친구들과 놀고 있다. 아이들의 함박웃음과 집, 초원, 호수, 꽃밭 등을 지난 종이비행기는 바다에서 엄마 고래와 아기고래를 만나 마침내, 세월호의 기억 노란리본에 당도한다." - 안산초등학교 옹벽에 그린 벽화 '희망-세월호의 기억'

어둡고 칙칙했던 학교 옹벽이 달라졌다. 지난 1899년 안산 공립소학교를 설립하면서 안산 공교육의 출발을 알린 안산초등학교 담벼락 모습이다. 올해로 개교 117년이 된 유서 깊은 이 학교 옹벽에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희망'을 주제로 '세월호의 기억'이 새겨졌다. 이 학교 옹벽 150m에 '세월호의 기억'을 그리게 된 연유는 무얼까?

벽화는 지난 4월 초에 시작해 6월 초까지 두 달에 걸쳐 완성됐다. 학부모들이 중심이 된 가운데 학생, 교사, 마을주민 등 100여 명이 참여했다. 안산중학교 학생들도 손을 보탰다. 처음 물꼬를 튼 것은 이 학교 전 학부모회 회장인 김은주(여, 수암동자원봉사센터 담당)씨였다.

김은주씨는 "등하굣길이 늘 어둡고 칙칙한데다 인적도 드물고 지저분해 어차피 다녀야 할 길이라면 조금이라도 밝고 안전한 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3년 전부터 봉사활동을 하던 중에 벽화 신청을 해 지난해 중·고교 벽화에 이어 올해 안산초 벽화 작업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 마을을 소중히 가꿔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힘들었지만 즐겁게 작업했다"며 "벽화 작업을 하는 동안 주민들이 밝고 깨끗하게 해줘 고맙다고 할 때 정말 기분 좋았고, 끝난 후 길이 밝아져 아침에 기분 좋게 등교한다는 아이들 얘기를 들었을 땐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벽화 작업이 끝난 후 아쉬운 점이 발견됐다. 옹벽 인도를 따라 도로 주차선이 그어져 차들이 주차를 하면 벽화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씨는 "주차선을 반대쪽으로 옮기는 서명운동을 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고 귀띔했다.

하늘의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을 향해 날아오르는 듯

벽화 구상부터 밑그림까지 실무 작업은 이 학교 학부모였던 이미경(여, 색깔찾기 미술학원 원장)씨와 남편 등이 주도했다. 학교 동문의 도움을 받아 벽 세척을 하고 회색으로 밑바탕을 도색한 후 색 채우기를 했다. 작업은 주로 주말을 이용해 진행됐으나 비오는 날이 많아 적지 않게 고생을 해야 했다.

밑그림과 색을 찾아 가는 도중에 아무도 종이비행기가 어디로 향할지 몰랐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종이비행기가 이곳에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 종이비행기가 '세월호의 기억' 노란리본에 도착하게 된 건 이미경씨 등 학부모들이 공동 방점을 찍은 결과였다.

이미경씨는 "벽화의 주제는 희망인데 그 속에 세월호의 아픔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우리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사회 만들기 등이 포함돼 있다"며 "그런 의미를 비행기를 매개체로 삼아 아이들의 꿈과 희망의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형상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벽화를 그리는 동안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음료도 사주고 주머니 사탕도 나누며 토닥토닥 응원해줘 너무 행복했다"며 "세월호는 잊어서도 잊혀도 안 될 대한민국의 아픔이지만 어떠한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고 꿈꾸는 자만이 희망찬 미래를 만들 수 있기에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벽화 그리기를 함께 했던 6학년 학생들은 수학여행 중이라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대신 하굣길의 아이들에게 벽화가 무얼 의미하는지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세월호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해요~!" 아이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말들이 노란색 종이 비행기가 되어 하늘의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을 향해 날아오르는 듯했다.

세월호 교육은 함께 묻고 답하는 '사회적 기억'의 과정

안산초등학교 교사들 이름으로 학교 후문에 걸려 있는 세월호 현수막. 처음엔 학교 담을 따라 현수막을 많이 게시했지만 현재는 세 개가 남아 있다.
▲ "진실이 인양되기를 원합니다" 안산초등학교 교사들 이름으로 학교 후문에 걸려 있는 세월호 현수막. 처음엔 학교 담을 따라 현수막을 많이 게시했지만 현재는 세 개가 남아 있다.
ⓒ 박호열

관련사진보기


벽화 탄생에는 안산초등학교 정성조(47) 교장의 소리 없는 지원이 컸다. 그는 벽화 작업을 시종일관 학부모들에게 일임했다. 벽화의 주제 등을 요구하는 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벽화에는 학부모와 학생, 교사들과 정 교장의 이심전심이 녹아들었다.

그는 "지난 6년간 혁신학교를 추진하며 밑바탕에 깔린 문화와 공동경험이 밑바탕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또한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체감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벽화가 서로의 희망을 담아 완성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세월호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었고 나 또한 세월호에 갇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며 "두려움을 떨치고 새로운 희망과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기억이다, 많은 일들이 너무나 쉽게 잊히기 때문에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산초등학교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학생, 교사들이 함께 추모, 노란리본 달기, 현수막 게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정 교장의 지적처럼 그 연장선상에서 '세월호의 기억' 벽화가 완성된 셈이다.

세월호를 가르치고 배우는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들 한다. 묻고 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함께 고민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 말이다. '사회적 기억'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세월호 교육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참사의 기억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참사를 기록하고 배우면서 아이들 세대의 사회가 좀 더 안전하고, 아이들의 삶이 좀더 탄탄해질 수 있도록 사회적 기억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안산초등학교의 벽화 '희망-세월호의 기억'은 학교가 어떻게 세월호를 기억하고, 이를 통해 기억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고, 행동으로 이어가고,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신학교의 힘', 수평적 소통을 통해 조화로운 삶을 가꾸다

안산초등학교의 교육비전은 ‘배우고 성장하며 참 삶을 가꾸는 행복한 학교’다. 핵심가치는 자존감과 존중·배려다. 정성조 교장이 이 같은 교육비전을 그린 설계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다.
▲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통입니다" 안산초등학교의 교육비전은 ‘배우고 성장하며 참 삶을 가꾸는 행복한 학교’다. 핵심가치는 자존감과 존중·배려다. 정성조 교장이 이 같은 교육비전을 그린 설계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다.
ⓒ 박호열

관련사진보기


안산초등학교는 2011년 혁신학교로 지정되고, 내부형교장공모를 시행했다. 2015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2차 내부형교장공모를 신청했다. 정성조 교장은 2011년에 부임해 평교사로 근무하다 지난해 9월부터 교장 임기를 시작했다.

혁신학교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공교육이 획일적인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배양해 교육 정상화와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도입했다. 내부형교장공모는 일정한 경력을 갖춘 교사가 공모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 교육계에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찾는 제도로 요약된다.

정성조 교장과의 인터뷰는 먼저 혁신학교를 수행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된 내부형교장공모제로 이어졌다.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 교사들의 노력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모제 지정학교로 선정되기 어려운데다 무엇보다 혁신학교가 공교육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공모제 교장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소통인데, 교장의 위치를 역할로 보지 않고 지위로 보다 보니 교사들 관계가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나뉘면서 소통이 잘 안 됐다"며 "(공모제의) 가장 큰 장점은 교사는 물론이고 학부모들과 수평적 소통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장은 "학교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부모의 협력과 관심이 반영돼야 가능하다"며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학교 문화와 교장의 민주적 마인드가 중요한데 승진에 필요한 점수 관리가 지배하는 현장에선 어렵다. 공모제를 통해 학내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교장실에는 번쩍번쩍한 소파나 그 흔한 상패 도열도 보이지 않는다. 작고 소박했다. 교장실 이름도 '소통과 공감'이다. 대신 시 한편을 적은 칠판과 아이들 사진 그리고 정 교장이 구상하는 학교 미래비전을 그린 설계도(?)가 벽면을 채우고 있다

혁신학교는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경쟁교육을 지양한다. 아이들이 통합적 사고능력과 조화로운 삶을 가꿀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려고 한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 협력해 새로운 교육과정을 통해 배움과 나눔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안산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벽화를 통해 그리려고 한 희망의 한 자락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텃밭부터 논농사까지 지으며 땀의 가치를 배우는 학교. 학부모회 자체적으로 모든 활동을 기획하고 평가하며, 교사와 공동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 그런 가운데 학부모와 지역사회 그리고 학교간의 관계가 지원에서 협력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가는 학교. 정성조 교장은 안산초등학교의 지속가능한 혁신학교 만들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적에 의해 나열되고 우열이 갈라지는 게 기존의 학교였고, 우리 사회는 이런 학교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장기와 꿈을 어떻게 키워 삶을 가꾸는 기본을 다지느냐에 있습니다.

먼저 자기 주도성이나 자기 결정력을 튼튼하게 기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아리 활동이나 공부는 물론이고 수학여행 등을 아이들 스스로 장소와 일정, 계획을 짜면서 스스로 주도해 가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설계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지요.

또한 예술적 감수성을 몸에 익혀 어떤 모습으로 살더라도 인생을 향유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무용부터 연극까지 삶을 풍성하게 하는 다양한 예술적 소양을 익힙니다. 

아울러 마을탐방과 숲속체험 등을 통해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뭇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존중도 배웁니다. 끝으로 토론과 수업시간 표현하기 등을 통해 자기 생각 만들기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태그:#안산초등학교 벽화, #'희망-세월호의 기억', #혁신학교, #내부형교장공모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