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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장마'라고 하더니 그동안 내리지 않았던 장맛비가 얼마 전 한꺼번에 내렸습니다. 더웠던 날씨도 장맛비가 내리면 조금은 서늘해지죠. 장맛비 내리는 소리, 낙숫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기분에 따라 빗소리가 다르게 들리기도 하지요. 간혹 대학 시절 비 오는 날마다 들르던 단골 술집의 분위기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간혹 비가 오는 날, '일탈'을 꿈꾸시는 이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비 핑계로 일을 대충 마치고 어디 가서 파전에 막걸리 마실 생각을 하실 분 많으실 거예요. 옛날 농사짓던 시절에는 이런 일탈이 통했지만 요즘 같은 시기엔 그냥 '백일몽'일 뿐이죠. 퇴근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우중 낮술'을 꿈꾸라니요.

바로 이 '일탈'을 얼마 전 저질렀습니다. '먹고 생각하고 그냥 써라' 연재의 일환이라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장맛비가 쏟아지던 오후, 서울 석관동 골목의 한 순댓국집에 갔습니다. 비가 내려 서늘해진 어느 오후에 맛본 순댓국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묘하게 장마철과 순댓국은 잘 맞습니다

장맛비가 내리는 오후, 순댓국집이 있는 골목의 모습입니다. 절로 순대국에 소주 생각이 나게 되네요.
 장맛비가 내리는 오후, 순댓국집이 있는 골목의 모습입니다. 절로 순대국에 소주 생각이 나게 되네요.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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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오면 더웠던 날씨도 조금 서늘해집니다. 서늘해지면 그간 먹었던 찬 음식보다는 따뜻한 음식을 찾게 되죠. 커피도 아이스커피가 아닌 따뜻한 커피, 음식도 냉면이나 콩국수보다는 칼국수나 순댓국 같은 메뉴가 더 생각이 납니다.

특히 순대와 돼지고기, 각종 내장 등을 넣고 끓인 순댓국은 장마철과 묘하게 잘 맞는 느낌입니다. 계속 비가 내리는 날씨에는 세련된 음식보다는 뭔가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음식이 그리워지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간단하게 술 한잔 하고픈 마음도 생기게 되죠.

순댓국에 숟가락을 넣으면 큼지막한 고기들이 잔뜩 눈에 들어오게 되죠. 고기와 순대가 가득 들어있는 국에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양념장을 넣고 밥을 말아 잘 익은 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이고 여기에 소주도 한 잔 곁들이면... 빗소리가 아름답게 들리게 됩니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순댓국집이 늘어나 이제는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순댓국집 두세 곳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의 특징은 순댓국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메뉴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다는 것이죠. 깨끗한 분위기에서 먹는 프랜차이즈 순댓국 맛도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팔팔 끓은 순댓국 한 그릇
 팔팔 끓은 순댓국 한 그릇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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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 선입견일까요? 순댓국은 깨끗하고 넓은 곳에서 먹는 것보다는 골목에 있는 허름한 집, 다른 메뉴는 일절 없이 순댓국과 머리 고기, 순대, 내장 등만을 파는 곳에서 먹는 게 더 맛이 있더군요. 아무래도 이것저것 팔면서 생색을 내는 것보다는 한 음식으로 승부를 거는 음식점이 더 맛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순댓국 육수를 내는 것만 해도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겠습니까?

순댓국, 마음에 위안을 주는 음식

골목에 위치한 순댓국집에 들어가 '목적대로' 순댓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켰습니다. 반찬이 먼저 나왔습니다. 김치와 깍두기, 풋고추, 마늘, 쌈장이 나왔습니다. 김치를 먹어보니 이제 막 익기 시작한지 라 시원하면서 깔끔한 맛이 납니다. 김치 맛을 보고 소주 반 잔을 마시니 어느새 펄펄 끓는 순댓국이 나왔습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대로 순댓국은 새우젓으로 간을 합니다. 새우젓은 돼지고기를 소화시키는 일등 공신이기도 하면서 소금보다 덜 짜기에 자칫 필요 이상으로 많이 넣어 국물이 짜게 될 우려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순댓국을 먹을 때는 필히 양념장을 넣습니다. 그래야 돼지 냄새가 덜 나고 비린 맛이 없어지는 대신 시원한 맛이 나기 때문이죠. 뭐 이건 취향의 문제니까 이렇게만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입맛에 맞는 순댓국을 만들어내고 밥을 말아 김치 깍두기를 곁들이고 소주 한 잔을 마시는 순간 비로소 '일탈의 즐거움'이 느껴졌습니다.

'캬! 이게 바로 자유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왕도 부자도 안 부럽다네!'

그렇게 국밥을 먹다 보니 슬며시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땀으로 나오는 듯합니다. 시원함이 느껴집니다.

그러던 사이 빗줄기가 더 굵어지네요. 잠시 일손을 놓고 있던 순댓국집 이모님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가 왠지 정겹게 들립니다. 이모님들은 알고 지내던 것 같은 어르신이 지나가자 대뜸 감자를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이날의 일탈이 없었으면 느끼지 못했을 푸근함이었습니다.

순대, 고기, 내장 등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순대, 고기, 내장 등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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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아무래도 이런 뜨거운 음식을 드시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느 날 소나기가 내리고 뭔가 서늘함이 느껴지는 날이 되면 순댓국 한 그릇 먹고 땀 한 번 흘려보는 건 어떨지 제안해봅니다.

마음고생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는 상황이지만 이렇게 한 그릇 먹고 나면 그 고생이 땀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조금은 마음이 평안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음식은 때론 몸은 물론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주고 걱정을 조금이나마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답니다.


태그:#순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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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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