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투 비 블루 포스터

▲ 본 투 비 블루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쳇 베이커, 이제는 전설이 된 트럼펫 연주자. 미국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나름의 스타일을 구축한 '쿨 재즈'의 스타로, 흡사 제임스 딘이 연상되는 우수 어린 얼굴에 연주는 물론 노래까지 잘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에 대해 전해지는 수많은 평가 가운데서도 재즈 비평가 아르노 메를랭(Arnaud Merlin)의 표현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는 쳇 베이커에 대해 "데뷔 당시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신통치 않은 모방자로 취급받았지만 후에 루이 암스트롱 이후 최고의 즉흥연주가로 평가받았다"고 평했다. 쳇 베이커는 1989년 최고의 연주자들만 이름을 올린다는 재즈전문지 '다운비트(Downbeat)' 명예의 전당에 들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버지로부터 카메라를 받고 영화에 꿈을 품었듯 쳇 베이커를 재즈의 세계로 이끈 것도 아버지였다. 기타리스트 출신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아직 어린 아들의 생일날 트럼펫을 선물했는데 그건 쳇의 삶 전체를 선물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트럼펫만이 쳇의 삶을 이룬 건 아니었다. 1950년대 전성기를 누린 많은 이들이 그랬듯 쳇 베이커 역시 술과 마약, 여자에 빠져들었다. 특히 마약은 그가 거둔 성공의 대부분을 앗아갔다.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쳇 베이커는 과거의 영광에 기대 연명하는 퇴물에 불과했다. 이 기간 동안 그가 내놓은 앨범은 가장 우호적인 팬들조차 옹호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최고의 스타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삶

본 투 비 블루 마일즈 데이비스(가장 오른쪽) 등 재즈계의 명사가 재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본 투 비 블루>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 본 투 비 블루 마일즈 데이비스(가장 오른쪽) 등 재즈계의 명사가 재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본 투 비 블루>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쳇 베이커의 삶을 다룬 영화 <본 투 비 블루>가 주목하는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갱들에게 습격당해 치아가 거의 부러지는 중상을 당한 그가 1968년부터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재기를 꿈꾸며 발버둥친 몇 년의 시간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를 통해 영화는 가장 영광된 자리에서 나락까지 추락한 과거의 스타가 마주한 삶, 즉 일상적 좌절과 단절된 열망이 뒤얽힌 시간을 쳇 베이커의 음악처럼 절제됐지만 감상적인 시선에서 그려낸다.

흔히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룬 전기영화는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마련이다. 하나는 인물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재구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한 순간에 집중해 미처 그리지 못한 나머지를 관객에게 유추하도록 하는 것이다. <본 투 비 블루>가 선택한 길은 후자다.

영화는 시작 후 단 몇 분 동안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쳇 베이커가 최고의 자리에서 바닥까지 추락했음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과거의 영광만 안고 사는 퇴락한 스타에게선 더는 번뜩이는 재능과 위엄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때 '쿨 재즈'를 대표하는 스타였지만 그의 삶엔 온통 구질구질하고 지질한 것들뿐이다.

삶과 사랑, 음악 가운데 무엇도 소홀하지 않아

본 투 비 블루 가상의 인물이지만 쳇 베이커(에단 호크 분)의 삶에 설득력 있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제인(카르멘 에조고 분).

▲ 본 투 비 블루 가상의 인물이지만 쳇 베이커(에단 호크 분)의 삶에 설득력 있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제인(카르멘 에조고 분).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가 주목하는 건 절망적인 현실 가운데 재기를 꿈꾸는 쳇 베이커의 분투와 고통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마약에 대한 유혹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선 스타의 화려한 외피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나약함이 읽힌다. 그가 그토록 갖고자 한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는 결국 그것을 손에 넣었을까.

쳇이 다른 삶을 꿈꾸게 되는 계기이자 그가 쉬운 길로 들지 않게끔 하는 제인의 존재는 쳇이 만난 수많은 여성을 한 캐릭터에 입힌 결과다. 비록 가상의 존재지만 무한한 믿음과 애정으로 쳇에게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려는 제인의 분투에선 일종의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예고된 비극은 어김없이 찾아와 관객의 기대와 짧은 행복 모두를 산산이 깨뜨린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로버트 뷔드로는 캐나다 출신 감독이다. 할리우드에서의 경력은 보잘 것 없지만 재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대단한 것처럼 보인다. 쳇 베이커의 삶을 영화의 형식에 고스란히 반영한 듯 권태롭고 감상적이며 어딘지 모르게 허무한 분위기가 영화 전반에 가득한데 이런 경우를 두고 형식과 내용이 적절히 어우러졌다고 표현하는 듯하다.

쳇 베이커의 삶이 사랑이며 음악이었기 때문일까. 전기영화, 멜로영화, 음악영화 가운데 무엇 하나도 소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그의 음악을 마저 듣고 극장을 나서면 적어도 며칠은 쳇 베이커의 삶과 음악이 일상에 스며들 것이다.

본 투 비 블루 <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아내로 출연한 데 이어 <본 투 비 블루>에서 쳇 베이커의 연인 역을 맡아 전기영화 여자주인공으로 적절한 연기를 펼친 카르멘 에조고. 그녀의 다음 역할이 무엇일지 기대가 크다.

▲ 본 투 비 블루 <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아내로 출연한 데 이어 <본 투 비 블루>에서 쳇 베이커의 연인 역을 맡아 전기영화 여자주인공으로 적절한 연기를 펼친 카르멘 에조고. 그녀의 다음 역할이 무엇일지 기대가 크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관련기사] 명곡으로 기억하는 마성의 재즈 뮤지션, 쳇 베이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빅이슈>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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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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