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든 안성기와 조진웅이 산속을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사냥>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총을 든 안성기와 조진웅이 산속을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사냥>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고등학생 시절. 서너 살이 많았던 사촌 형 중 하나가 희곡 작가를 지망했다. 문장이 잘 완성되지 않을 때면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했다.

"문학을 하려는 모두는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지. 그러나 그들 모두가 톨스토이처럼 쓸 수는 없는 법이지…."

넋두리에 가까운 혼잣말을 한 형은 한숨처럼 담배 연기를 내뱉곤 했다. 그때는 그 말뜻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해가 가능해졌다. '열정과 능력 사이의 불협화음'은 비단 문인들만 겪는 게 아니다. 화가가 그렇고, 작곡가가 그렇고, 영화감독 또한 그렇다.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프레드 히치콕과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이코>와 <샤이닝>을 본다고 모든 영화감독 지망생이 그런 작품을 만들 수는 없는 법. 앞서도 말했듯, 능력 없이 열정만으로 쌓을 수 있는 탑의 높이에는 한계가 있다. 안타깝고 불쌍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측은지심'이 느껴지는 영화

총을 든 안성기와 조진웅이 어두운 산속을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영화 <사냥>은 그런 차원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불러일으킨다.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인간의 내면을 영상언어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는 이우철 감독의 열정과 열망을 모를 관객은 없다. 그러나 그 열정과 열망이 작품을 통해 구체화해야 응원과 격려를 보낼 수 있는 법. 하지만 이 감독의 능력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해서 영화는 끊임없이 겉돌고, 허술한 플롯 속에서 휘청대며, 당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요령부득의 함정에서 허우적댄다.

 <사냥>의 모든 비극이 시작되는 장소. 거대한 소나무가 선 언덕.

<사냥>의 모든 비극이 시작되는 장소. 거대한 소나무가 선 언덕.ⓒ 롯데엔터테인먼트


<사냥>의 줄거리는 몹시 빈약해 그것을 요약해도 스포일러라 힐난 받을 일이 없다. 한 노파에 의해 예상치 않은 곳에서 금맥이 발견된다. 그걸 알아차린 비리공무원 등 '성실하지 않고 나쁜' 인간들이 '성실하고 착한' 인간들을 제거하고 금을 차지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총질이 오가고 여러 명이 억울하게 죽는다. 이게 끝이다.

영화 속에 정밀한 심리 묘사와 인간이라는 개별존재에 관한 탐구가 담겼다면, 스토리라인이 간명하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우철의 <사냥>은 이 중 어느 것도 담아내지 못했다. 그래서다. 마구잡이 총질에는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일차원적이고 단세포적인 악다구니만이 보일 뿐이고, 그조차도 설득력이 떨어져 관객들의 푸념과 실소를 부른다.

문제의식 부재, 집중력 없는 연출, 상투적인 결말

외화, 한국영화 할 것 없이 요즘엔 2시간 이상 상영되는 영화가 흔하다. 반면 <사냥>은 상영시간 93분의 비교적 짧은 작품. 그럼에도 기자는 그 시간이 지겨워 언제 객석에서 일어설지를 보는 내내 고민했다. 너무나 상투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것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치밀하지 못한 연출 탓일까? <사냥>의 연기자들도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치밀하지 못한 연출 탓일까? <사냥>의 연기자들도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연기에 관해서라면 여간해선 비판할 틈을 보이지 않는 배우 안성기. 그럼에도 <사냥>은 '저 상황에서 저 대사가 어울리나?' 혹은, '저 행동은 설득력이 떨어지잖아'라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만든다. 주도면밀하고 세련된 연출 아래서라면 그런 연기를 선보일 이유가 없는 배우가 안성기 아닌가. 그러니 조진웅과 한예리, 조연들의 연기는 또 어떻게 보였겠는가? 더 이야기하면 비참해질 뿐이다.

이우철의 <사냥>을 보고 나오니 대낮임에도 캄캄해진 하늘에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 우울한 장마철 풍경을 쓸쓸하게 바라보며 '열정과 능력의 괴리'를 이야기하던 사촌 형을 떠올렸다. 그 형은 이미 오래전 문학을 포기하고 딴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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